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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월드컵을 오래 사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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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경기력과 안전 동시에 흔들어
세계인 축제 꾸준히 즐기려면
지구의 온도부터 함께 생각을

월드컵이 시작되면 평소 축구를 챙겨 보지 않던 사람도 어느새 경기 시간을 확인한다. 공 하나를 놓고 전 세계가 같은 장면을 바라보는 순간은 흔치 않다.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거대한 문화이고 월드컵은 그 문화가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축제다. 그런데 이제 그 뜨거움은 은유만이 아니다. 기후변화의 시대에 월드컵은 말 그대로 더운 대회가 되고 있다.

축구는 90분 동안 계속 달리고 멈추고 다시 폭발적으로 뛰는 운동이다. 선수들은 상대 수비수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더위와 습도, 강한 햇빛과 바람, 잔디 상태와도 싸운다. 기온이 높고 습도가 높으면 몸은 열을 밖으로 내보내기 어렵다. 땀은 나지만 잘 마르지 않고, 심장은 체온을 낮추기 위해 피부 쪽으로 더 많은 피를 보낸다. 그러면 근육으로 가야 할 혈액과 산소가 줄어든다. 스프린트가 줄고 판단이 늦어지고 패스와 슈팅의 정확도도 떨어질 수 있다. 더위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경기력과 안전을 동시에 흔드는 조건이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그래서 스포츠 과학에서 ‘습구흑구온도’는 중요한 지표다. 단순한 기온이 아니라 습도, 햇빛, 바람까지 함께 따져 몸이 실제로 받는 열 스트레스를 평가한다. 같은 30도라도 그늘지고 바람 부는 30도와 습하고 햇빛이 강한 30도는 완전히 다르다. 기후변화는 이런 위험한 30도를 더 자주, 더 오래 만들고 있다. 앞으로 월드컵에서 낮 경기를 줄이고 저녁이나 밤 경기로 옮기며 쿨링 브레이크와 수분 보충 시간은 기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언젠가는 “월드컵은 여름에 한다”는 상식 자체가 바뀔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기후가 축구를 바꾸는 것처럼 축구 역시 기후를 바꾸고 있다. 월드컵의 탄소 배출을 생각하면 사람들은 흔히 경기장 조명, 전광판, 에어컨을 떠올린다. 그러나 진짜 큰 덩어리는 따로 있다. 이동이다. 특히 비행기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세 나라에서 열린다. 기존 경기장을 많이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이전 월드컵보다 나아 보인다. 새 경기장을 짓는 데 드는 콘크리트와 철근, 냉방 설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륙 규모로 펼쳐지는 대회에는 다른 문제가 있다. 밴쿠버에서 멕시코시티로,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토론토에서 마이애미로 이동하는 것은 사실상 대륙 횡단이다. 선수단, 취재진, 운영 인력, 관중이 계속 하늘길에 오른다. 기존 시설을 쓴다고 해도 대회의 규모와 이동거리가 커지면 탄소 배출은 크게 늘 수밖에 없다.

그 이동의 비효율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이란 대표팀이다. 이란은 조별 예선 세 경기를 모두 미국에서 치른다. 그런데도 미국의 체류 제한 탓에 경기 때마다 멕시코와 미국 국경을 넘나들어야 한다. 한쪽에서는 친환경 월드컵을 말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불필요한 이동을 만들어낸다.

장거리 왕복 비행 한 번이 개인의 연간 탄소 예산 가운데 상당 부분을 써버린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지구온난화를 1.5도 근처에서 막으려면 인류가 앞으로 배출할 수 있는 탄소량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런데 북미까지 날아가 몇 경기를 보고 돌아오는 여행은 한 사람이 1년 동안 조심스럽게 아껴야 할 탄소의 큰 몫을 한꺼번에 써버릴 수 있다.

월드컵을 보지 말자는 게 아니다. 축구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소중한 문화다.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오래 즐기기 위해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개인 팬은 꼭 보고 싶은 경기만 고르고 현지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일회용품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은 대회 운영자에게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개최국, 후원 기업은 같은 조 경기를 가까운 지역에 묶고 철도와 대중교통을 연결하며 경기장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바꾸고 물과 폐기물 관리까지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축구팬이 기후를 말하는 것은 축구를 미워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축구를 오래 사랑하기 위해서다. 더 뜨거워진 지구에서는 선수의 몸도, 잔디의 상태도, 관중의 응원도 안전하게 지키기 어렵다. 월드컵을 지키는 일은 이제 기후를 지키는 일과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가 앞으로도 4년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 하나를 바라보고 싶다면 그 공이 굴러가는 지구의 온도부터 함께 생각해야 한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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