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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상발전소(VPP) 기술, 차세대 전력망 인프라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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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동구 교수 / POSTECH 산업경영공학과
사진=최동구 교수 / POSTECH 산업경영공학과

공항에서 활주로를 세 배로 늘리면 항공편도 세 배로 뜰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항공기가 이착륙하려면 관제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활주로가 늘어도 관제 역량이 부족하면 혼잡은 오히려 심해진다. 해결책은 인프라 확장이 아니라 그것을 운영할 관제 시스템에 있다.

 

전력망도 다르지 않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 보급을 목표로 설정했다. 현재 약 34GW 수준인 설비를 5년 안에 세 배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설비를 늘리는 것과 그 설비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별개다. 운영 기술이 뒤따르지 않으면 발전소는 세 배가 늘어도 실제로 쓸 수 있는 전기는 그에 못 미친다.

 

신호는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횟수는 2024년 27회에서 2025년 82회로 3배 늘었다. 출력제어량은 12.4GWh에서 109.4GWh로 급증했다. 일사량이 높고 바람이 잦은 봄·가을일수록 발전소가 멈춰서는 모순이 일상이 됐다. 변동성을 계통이 흡수하지 못하면 출력제어가 늘고 사업자 수익이 줄어든다. 이는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며 결국 설비 확대의 속도도 꺾인다.

 

지난해 4월 스페인·포르투갈에서 발생한 대정전은 준비되지 않은 계통에 재생에너지가 과도하게 투입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여준 사례다. 유럽 전력 송전 시스템 운영자 네트워크(ENTSO-E)의 분석보고서는 사고의 근본 원인이 재생에너지 자체가 아니라, 인버터 기반 자원(IBR·Inverter-Based Resource) 특성에 계통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한 데 있다고 결론 내렸다. 활주로는 늘었는데 관제 시스템은 그대로였다는 뜻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국내 전력 시스템 역시 이와 유사한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 문제의 기술적 해법이 AI 기반 가상발전소(VPP·Virtual Power Plant)다. 여러 분산 발전 자원을 AI 기술로 연계해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고 전력 시장에 참여하는 플랫폼 기술이다. 발전량 예측·에너지저장장치(ESS) 운영을 통한 수급 밸런싱 등 운영 기술 수준에 따라 계통 안정성 기여도는 크게 달라진다. 정부도 같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올해 2월 '차세대 분산 전력망 추진 계획'을 통해 VPP 기술 기반의 배전망 운영 혁신과 시장제도 개편을 발표했다.

 

현재 시장제도에서는 기술 격차가 VPP 사업자들의 수익 격차로 연결되지 않는다.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변동성에 빠르게 대응해도 경제적 인센티브가 크지 않다. 기술 고도화에 투자할 유인이 부족한 구조다.

 

프로 스포츠 리그를 떠올려보자. 구단들이 선수 영입과 훈련 시스템에 투자하는 것은 성적이 수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같은 보상을 모두에게 나눠줬다면 리그 수준은 올라가지 않는다. 전력 시장도 같다. 기술 우위가 수익 우위로 연결될 때, VPP 사업자의 기술 투자가 전력망 선진화로 이어진다.

 

향후 단계적으로 개편되는 시장제도에서는 기술 우위를 가진 VPP 사업자에 대한 차등 보상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예측이 정확할수록, 변동성에 빠르게 대응할수록 그에 상응하는 수익이 따라오는 구조다. 이 체계가 자리를 잡을 때 VPP 기술이 실질적 계통 안정성 향상과 출력제어 감축에 기여할 수 있다.

 

필자는 에이치에너지와 산학협력을 통해 한국 전력시장 제도에 맞춘 가상발전소 운영 기술을 함께 연구 개발해왔다. 연구는 국제 학술지에 게재되며 학술적 검증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현재 국내 시장제도의 한계와 해외 선진 시장과의 차이를 직접 확인했다.

 

재생에너지 100GW는 설비 목표다. 그 목표가 실질적 에너지 전환으로 이어지려면 운영 기술이 시장에서 정당하게 보상받아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구조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글: 최동구 교수 / POSTECH 산업경영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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