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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조원 증발, 단 하루면 충분했다”…코스피 무너뜨린 ‘반도체 쏠림’ [숫자 뒤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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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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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기관 8조7000억원 순매도…개인은 8조6000억원 받아내
삼성전자·SK하이닉스 12%대 급락…금융위기 이후 최대 하락률
두 종목 흔들리자 코스피 910포인트 추락…쏠림 위험 고스란히

객장의 모니터가 온종일 파랗게 물들었다. 프로그램 매도호가의 효력을 일시 정지하는 사이드카가 발동된 데 이어 거래를 20분간 멈추는 서킷브레이커까지 작동했다. 올해 들어 네 번째 서킷브레이커였다. 매도세는 장 마감까지 이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란히 12% 넘게 급락하면서 두 회사의 보통주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약 514조원 줄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란히 12% 넘게 급락하면서 두 회사의 보통주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약 514조원 줄었다. 연합뉴스

국내 증시를 끌어올렸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나란히 12% 넘게 주저앉았다. 전날 종가와 발행주식 수를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두 회사의 보통주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약 514조원 줄었다.

 

시장 전체에서도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4조1691억원, 4조5490억원을 순매도했다. 합계 8조7181억원이다. 개인이 8조5913억원을 순매수하며 물량을 받아냈지만 코스피 급락을 막지는 못했다.

 

이번 하락을 미국 증시 탓으로만 돌리기도 어렵다. 간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와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올랐다. 국내 반도체 대형주에 집중됐던 수급이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매도로 흔들리면서 충격이 커졌다.

 

◆금융위기 이후 최대…두 대장주 나란히 12% 급락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2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전 거래일보다 12.47% 내린 255만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2008년 12월 24일 12.73% 하락한 이후 17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률이다.

 

주가는 전장보다 0.72% 내린 289만8000원으로 출발했다. 장 초반 294만3000원까지 오르며 상승 전환했지만 이후 매물이 쏟아지면서 급격히 밀렸다. 장중에는 253만6000원까지 떨어졌다.

 

삼성전자도 12.31% 내린 31만원에 마감했다. 2008년 10월 24일 13.76% 떨어진 이후 17년 8개월 만의 최대 하락률이다.

 

장 초반 한때 35만3000원까지 낙폭을 줄였지만 오후 들어 다시 하락 폭을 키웠다. 종가는 장중 최저가와 같았다.

 

23일 코스피는 반도체 쏠림 현상에 외국인의 차익실현 매도세가 더해지면서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에 이어 서킷브레이커(매매중단조치)가 발동됐다. 뉴스1
23일 코스피는 반도체 쏠림 현상에 외국인의 차익실현 매도세가 더해지면서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에 이어 서킷브레이커(매매중단조치)가 발동됐다. 뉴스1

시가총액 1위 경쟁도 장중 여러 차례 뒤집혔다. SK하이닉스는 22일 25년 7개월 만에 삼성전자 보통주를 제치고 코스피 시총 1위에 올랐다. 23일에는 삼성전자보다 낙폭이 커지면서 장중 한때 1위 자리를 내줬다.

 

종가 기준으로는 SK하이닉스가 1위를 지켰다.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은 1820조9545억원, 삼성전자 보통주는 1812조3464억원으로 집계됐다. 격차는 8조6081억원이다. 삼성전자 우선주까지 더한 기업 전체 시가총액은 삼성전자가 계속 앞서 있다.

 

◆외국인·기관, 전기·전자에서만 7조3000억원 매도

 

매도 물량은 반도체 대형주가 포함된 전기·전자 업종에 몰렸다. 이 업종에서 외국인은 3조2555억원, 기관은 4조542억원을 순매도했다. 합계 7조3097억원이다. 개인은 같은 업종에서 7조2452억원을 순매수했다.

 

반도체주가 단기간에 가파르게 오른 가운데 외국인과 기관의 매물이 동시에 쏟아졌다. 주가 상승을 뒷받침해 온 기대가 높아진 만큼 작은 재료에도 매도 물량이 빠르게 불어났다. 증권가에서는 차익실현과 기술적 조정이 겹친 것으로 보고 있다.

 

25일 새벽 예정된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실적 발표도 경계심을 키웠다. 실적 자체보다 높아진 시장 기대치를 충족할 수 있느냐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 심사 결과가 예상보다 늦어진 점과 한국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관찰대상국 등재가 무산된 점도 투자심리를 누른 재료로 거론됐다.

 

반도체 종목과 연계된 레버리지 상품이 늘어난 점도 투자자의 손실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됐다. 기초자산 수익률의 두 배를 추종하는 상품은 상승장에서 수익을 키우지만 하락장에서는 손실도 그만큼 빠르게 불어난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를 폭락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실현과 대형주에 집중된 수급, 주요 일정을 앞둔 경계심이 한꺼번에 겹쳤다.

 

◆미국 반도체지수는 올랐는데…국내 낙폭만 커졌다

 

간밤 뉴욕증시는 혼조세로 마감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0.29% 올랐고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도 2.04% 상승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0.37%, 나스닥 종합지수는 1.33% 내렸다.

 

미국 반도체지수가 오른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 대장주는 12% 넘게 빠졌다. 미국 시장의 약세가 그대로 국내 증시로 옮겨왔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국내에서 낙폭이 유독 커진 배경에는 반도체 대형주에 대한 시가총액 쏠림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두 종목이 오를 때는 지수를 빠르게 끌어올렸지만 동시에 밀리자 시장 전체가 급격히 흔들렸다.

 

두 회사가 포함된 전기·전자 업종에서 외국인과 기관이 7조원이 넘는 주식을 팔아치운 것도 같은 흐름이다. 일부 대형주에 몰린 매도가 코스피 전체의 투매로 번졌다.

 

◆코스피 910포인트 추락…쏠림 위험 드러나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910.71포인트, 9.99% 내린 8203.84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사상 최고치인 9114.55를 기록했던 지수가 하루 만에 9000선과 8500선을 잇달아 내줬다. 910.71포인트 하락은 종가 기준 역대 최대 낙폭이다.

 

코스닥지수도 76.88포인트, 7.94% 떨어진 891.52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1원 오른 1539.1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과 기관의 대규모 매도에 코스피가 910.71포인트 떨어지며 종가 기준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ChatGPT 생성 이미지
외국인과 기관의 대규모 매도에 코스피가 910.71포인트 떨어지며 종가 기준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ChatGPT 생성 이미지

증권가에서는 이번 급락을 반도체 업황이 꺾였다는 신호로 해석하기에는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로운 업황 악재가 확인됐다기보다 마이크론 실적 발표를 앞둔 경계감과 차익실현, 기술적 조정이 겹쳤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급락은 반도체 업황 자체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시가총액과 수급이 지나치게 몰린 국내 증시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준 사례”라며 “두 종목이 지수를 끌어올린 폭이 컸던 만큼 매물이 한꺼번에 나오자 시장 전체의 변동성도 크게 확대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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