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으로 지켜낸 유권자 권리
독립적 권한 쥔 선관위는 오만
국민의 한 표 가벼이 여겨선 안 돼
흔히 쓰는 영어 단어 ‘싱(Thing)’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뜻밖에도 북유럽 바이킹과 마주치게 된다. 1000년 전 바이킹 사회는 의외로 열려 있었다. 그들은 공동체의 대소사를 ‘팅(Thing)’이라 불리는 민회에서 결정했다. 바이킹의 기준으로 보자면, 머리를 맞대고 논해야 할 중대한 안건은 섬싱(Some-thing)이요, 그럴 가치조차 없는 일은 노싱(No-thing)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바이킹의 후예들이 세운 아이슬란드의 국회는 지금도 ‘알팅(Alþingi, All Thing)’이라 불린다. 말 그대로 ‘모두의 회의’다. 930년 싱벨리어 협곡에서 시작된 알팅은 1000년이 넘는 의회 전통을 자랑한다. 그러나 이름과 달리 1000년 전 그곳에 발을 들일 수 있었던 사람은 ‘모두’가 아니었다. 의결권은 고다르라 불린 족장들에게만 있었다. 자유민 남성은 누구나 모임에 참여해 발언할 수 있었지만 투표할 수는 없었다. 노예는 참석조차 할 수 없었다.
사정은 다른 문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은 시민 참여를 강조했지만, 여성과 노예, 외국인은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영국의 명예혁명(1688), 미국의 독립혁명(1776), 프랑스 대혁명(1789)을 거치며 주권재민의 이상이 확산되었지만, 투표권은 여전히 재산을 가진 남성에게만 허용되었다. 당시 지배층은 재산이 없는 사람은 독립적인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차별에 맞서 노동자 대중이 들고일어난 것이 1838년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오랫동안 여성은 정치 공동체 밖에 머물러야 했다. 프랑스는 1944년, 스위스는 1971년에 이르러서야 여성 참정권을 보장했다.
인종주의의 장벽 또한 험악했다.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인 1870년 흑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했지만, 인두세와 문해력 시험 등으로 투표 참여를 가로막았다. 흑인 유권자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기까지는 다시 10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마틴 루서 킹의 민권운동이 결실을 본 1965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던 일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가 종식된 1994년에 와서야 모든 인종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보통선거를 실시할 수 있었다. 정치에 참여할 권리, 참정권은 결코 당연한 권리가 아니었다.
지난 6월10일, 전국 18개 대학 총학생회가 일제히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국민적 공분이 들끓는 가운데 청년들이 가장 뜨겁게 들고일어났다. “선배들이 피땀 흘려 지켜낸 참정권의 가치가 무참히 훼손된 현실을 마주하며 무너진 원칙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서울대), “이한열의 이름으로, 6월의 정신으로 참정권을 지키겠다”(연세대), “40년 전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피 흘려 부르짖던 그대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 권력의 정점에 서서 기득권이 되어 보니 국민의 권리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까”(고려대).
주권 훼손에 맞서 한국인이 집단적 분노를 폭발시킨 최초의 기억은 6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 3·15 부정선거다. 자유당 정권은 3인조 5인조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민의를 왜곡했다. 조작이 도를 넘은 나머지 어떤 지역에서는 부통령 후보의 득표율이 100%를 초과하는 황당한 결과가 나왔다. 국민은 들불처럼 일어났다. 시위 중 실종된 열여섯 살 김주열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그의 죽음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듬해, 부정선거를 총지휘한 최인규 당시 내무부 장관은 사형 확정 15일 만에 처형됐다.
비극은 교훈을 남겼다. 선거 관리를 정부 손에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탄생한 기관이 오늘날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다. 그 지위를 헌법기관으로 격상하고 독립적 권한을 쥐여 준 것은, 국민의 참정권만큼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지켜내라는 엄중한 명령이었다. 스스로가 신성불가침이 되어 자녀를 특혜 채용하는 ‘아빠 찬스’의 온상으로 삼으라는 뜻이 아니었다.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부부 동반 외유 출장을 다니고 성과급 파티를 벌이라는 뜻은 더더욱 아니었다.
‘독립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감사원 감사마저 거부하던 오만함. 사명감은커녕 최소한의 직업의식마저 저버린 성벽 안에서 선관위는 썩어 들어 갔다. 그 안일함의 끝에서 투표용지가 없다며 주권자를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고 돌아서게 했다. 개표 결과를 잘못 입력해 1104명의 표를 증발시키고도 당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망언을 내뱉었다. 누가 이 괴물을 만들었는가.
선관위원장직 겸임으로 사실상 선관위와 한 몸이 된 사법부,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의 칼날 앞에 엎드려 감시와 견제를 방기한 정치권, 도대체 선관위와 정파성이 어떻게 뒤얽히길래 민주주의의 열렬한 수호자를 자처하던 한쪽 진영의 이 이상한 침묵. 비겁과 야합과 침묵의 카르텔이 결국 통제 불능의 괴물을 키워냈다.
우리의 참정권이 어떤 권리인가. 그것은 김주열의 눈에 박힌 최루탄이었고, 박종철의 고문실이었으며, 이한열이 흘린 피였다. 그래서 국민은 분노한다. 이 무거운 권리가 이렇게 허망하게 내팽개쳐지는 광경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감히, 참정권이다.
김동기 강원대 초빙교수·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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