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소지섭, 30년 전 수영 포기하고 기숙사 나선 이유…故 김성재가 바꾼 인생

관련이슈 스타's , 이슈플러스

입력 : 수정 :
김수진 기자 sjkim@segye.com

인쇄 메일 url 공유 - +

10년의 물살을 가르던 수영 선수는 어떻게 30년 정상의 배우가 되었나, 결핍을 루틴으로 증명해 온 기록

1995년 대학 입학을 앞둔 국가대표 상비군 수영 선수는 고민할 틈도 없이 기숙사 짐을 쌌다. 막연한 동경이 아닌 생존이 목적이었던 그에게 찾아온 故 김성재의 백업 모델 오디션은 눈부신 조명이 아닌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갑작스러운 비극 속에서 준비되지 않은 채 메인 모델의 자리를 짊어진 그날의 선택은, 이후 소지섭이라는 인물이 결핍을 루틴으로 이겨내며 30년을 정상의 자리에서 버텨온 분투의 시작점이었다. 태릉 선수촌에서 단 0.01초의 기록을 줄이기 위해 물살을 가르던 집념은, 오늘날 소지섭이 흐트러짐 없이 자신을 지탱하는 엄격한 자기 관리의 기반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수영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살았다. 하루 7시간, 방학 기간에는 10시간 이상 물속에서 자신의 한계치를 시험하며 보낸 세월은 소지섭이라는 존재의 뼈대를 만든 근간이다. 톱스타라는 수식어 이면에 놓인 그의 철저한 일상은 바로 이 지독할 만큼 반복적인 훈련의 시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1995년 화려한 조명 너머 생존의 가치를 먼저 마주했던 20대 소지섭의 시간들. 세계일보 자료사진
1995년 화려한 조명 너머 생존의 가치를 먼저 마주했던 20대 소지섭의 시간들. 세계일보 자료사진

당시 그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현실의 굴레를 짊어지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지원했던 백업 모델 오디션에서 소지섭만이 발탁되었고, 이어진 김성재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그를 준비할 겨를도 없이 송승헌과 함께 메인 모델의 자리로 이끌었다. 운동과 연예 활동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에게 교수는 양자택일을 강요했고 그는 고민할 틈도 없이 기숙사 짐을 쌌다. 막막한 미래를 앞에 두고 내린 그 결단은 단순히 배우라는 직업을 택한 사건이 아니라, 선수라는 과거의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걷기로 한 주체적인 변곡점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데뷔라는 파도를 헤쳐 온 뒤 자신만의 보폭으로 연기자의 길을 걸어온 수십 년의 기록. SBS 제공
준비되지 않은 데뷔라는 파도를 헤쳐 온 뒤 자신만의 보폭으로 연기자의 길을 걸어온 수십 년의 기록. SBS 제공

이후 마주한 현실은 냉혹했다. 무명 모델 시절 그는 언제 잊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매일 이어지는 대본 분석과 캐릭터 구현으로 걷어냈다. 작업을 시작한 뒤에는 모델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2002년 드라마 ‘유리구두’부터 2004년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차무혁 역을 맡기까지 그는 주연으로서 쏟아지는 수많은 평가와 비판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그때마다 수영 선수 시절 레인을 꾸준히 오가던 근성대로 오직 자신의 표현에 몰두하며 내실을 다졌다.

 

그의 이러한 정신은 촬영지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준비 과정에서 대본의 모든 페이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단순히 대사를 외우는 차원이 아니었다. 상대 배우의 동선과 카메라의 위치까지 미리 계산해 작업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 강행군이 이어지던 공간에서 졸고 있는 스태프들을 위해 조용히 간식을 챙기거나 정리를 돕는 행위는 동료들에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작품의 완성도를 함께 책임지려는 태도는 수영장에서 자신을 단련했던 시간의 기록이 현장으로 옮겨온 것이었다.

카메라 앞보다 현장의 질서를 우선했던, 동료들에게 각인된 배우의 품격. SBS 제공
카메라 앞보다 현장의 질서를 우선했던, 동료들에게 각인된 배우의 품격. SBS 제공

촬영 중 부상을 당하거나 컨디션이 저하되는 상황에서도 단 한 번도 지각하거나 대사를 숙지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특히 극심한 고열에 시달리던 현장에서 병원 대신 촬영장을 지켰던 그는 휴식을 권하는 스태프들에게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약속을 깨고 싶지 않다고 답하며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고집스러울 정도의 책임감은 그를 단순한 연기자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작업 전체의 맥락을 읽는 동료이자 버팀목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2018년 ‘내 뒤에 테리우스’로 MBC 연기대상을 받기까지 24년의 궤적은 단순한 성취를 넘어 흐트러짐 없이 자신을 통제해 온 시간의 산물이었다. ‘영화는 영화다’, ‘회사원’ 등 거친 장르물에서도 그가 배역의 중심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촬영 전 스스로 세운 과제를 1%도 어기지 않는 고집스러운 루틴 때문이었다. 최근 소속사 피프티원케이를 설립해 영화 수입과 투자에 뛰어든 행보는 활동 반경을 넓혀 좋은 콘텐츠를 스스로 발굴하겠다는 주도적 확장의 연장선이다. 직접 판을 짜고 현장의 흐름을 만드는 제작자의 시각을 갖게 된 과정이기도 하다.

익숙한 연기자의 영역을 벗어나 직접 콘텐츠의 가치를 구축해 나가는 새로운 이정표. 피프티원케이 제공
익숙한 연기자의 영역을 벗어나 직접 콘텐츠의 가치를 구축해 나가는 새로운 이정표. 피프티원케이 제공

故 박용하와의 우정은 그가 타인을 대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결정적 단면이다. 동료가 떠난 장례 당시 며칠씩 빈소를 지키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이후에도 매년 고인을 기리며 잊지 않고 챙기는 모습은 연예계에서 의리를 상징하는 일화로 남았다. 공적 영역에서의 철저한 자기 관리와 사적 영역에서의 변치 않는 의리, 이 두 가지는 그가 지난 세월 동안 무너지지 않고 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핵심 동력으로 귀결된다.

30년의 궤적을 지나 성실함이라는 이름의 결실을 맺은 배우, 소지섭의 오늘. 넷플릭스 제공
30년의 궤적을 지나 성실함이라는 이름의 결실을 맺은 배우, 소지섭의 오늘. 넷플릭스 제공

소지섭은 이제 SBS 드라마 ‘김부장’을 통해 다시 한번 변주를 시도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30년 전 짐 가방을 들고 기숙사를 나섰던 청년은 결핍을 채우는 방식으로 매일 자신만의 루틴을 지켜온 주역이 되어 돌아왔다. 시청자는 ‘김부장’이라는 인물에서 수십 년간 삶을 통제해 온 소지섭의 진면목을 발견한다. 새벽을 깨우며 대본을 살피고 현장의 약속을 엄수하며 겉치레보다 본질을 챙겼던 그의 세월은 전문 직업인의 품격을 다시금 정의하게 하는 방증이다.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매 순간을 채워온 기록, 그것이 소지섭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다.


오피니언

포토

모모, 인형 비주얼
  • 모모, 인형 비주얼
  • 장원영, 침대 위에 여신이 내려왔네…빛나는 미모
  • ‘있지’ 유나, 빛나는 미모
  • 판빙빙, 14억분의 1 미모…판타스틱하게 빛난 '대륙의 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