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발성 폐섬유증 대체 약 비급여
月 200만원 약값 부담… 치료 막막”
중증연 “급여 우선 정책 뒤흔들어”
7월 토론회서 찬반 논쟁 불가피
호흡곤란 등을 동반하는 특발성 폐섬유증(IPF)을 앓는 70대 김종호씨는 최근 정부가 청년을 위해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박탈감을 느꼈다. 원인을 알 수 없이 폐가 서서히 굳어가는 IPF는 국내에서 최근 수년간 희귀질환 중 사망자 수와 진료비가 가장 높은 질환으로 알려졌다. 그간 일상에 크게 지장이 없었던 김씨는 2년 전부터 증상이 급격히 악화해 호흡곤란과 이로 인한 일상생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는 당초 급여가 적용된 피르페니돈을 복용했지만 구토, 체중 감소 등 심한 부작용을 겪었다. 결국 해당 약을 중단한 뒤 대체 치료제인 오페브를 먹고 있으나 비급여인 탓에 매달 170만∼200만원을 더 부담하고 있다. 김씨는 “현재 유일한 선택지인 약이 건보 적용이 안 돼 비싼 약값을 감당하고 있다. 청년에게 탈모도 고민이 크겠지만 생명과 바로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지 않나”라며 “나 같은 환자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탈모약을 급여화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중증·희귀질환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건보 제도에서 원칙으로 작용하는 의학적 필수성과 급여 우선순위를 훼손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16일 국회전자청원·청원24 등 주요 전자청원 홈페이지를 분석한 결과 최근 1년간 희귀·중증질환 치료제의 급여화를 요구하는 청원은 43건이었다. 주로 희귀·중증질환 환자 및 가족들이 치료비 부담을 호소하며 치료제 급여화 지정 및 연장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아버지가 수술이 불가능한 소세포폐암 확장기 환자로 3차 치료제인 임델트라(성분명 탈라타맙)를 복용해야 한다는 청원인은 건강보험 적용을 촉구하며 “이 약은 기존 치료에 실패한 환자에게 사실상 마지막 치료 방법이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1회 투여 비용이 5000만원에 달해 환자와 가족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해당 청원은 5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심사에 오를 예정이다. 이외에도 ‘폐동맥고혈압 치료제 윈레브에어의 신속한 건강보험 적용 촉구’, ‘희귀·난치성 혈액암 치료제 레블로질 등 신약의 신속 급여화 건의’ 등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암 환자 및 가족들이 모인 온라인커뮤니티에서도 탈모 급여화 시도에 대한 반발이 쏟아진다. ‘암 환자 보조는 줄이면서 무슨 탈모를’이라는 게시글에는 “탈모는 복제약을 먹을 수 있어서 비용도 얼마 들지 않는다. 비급여 항암이나 보조해주자”는 반응이 이어졌다.
환자단체는 “표심을 앞세운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규탄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탈모약 급여화 검토 지시 이후 복지부가 호응하면서 건보 적용의 절차적 정당성도 훼손됐다는 지적이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성명에서 “탈모 급여 확대는 건강보험의 근간인 의학적 필수성과 급여 우선순위를 정면으로 흔드는 정책”이라며 “신약이 개발돼도 건보 급여 등재가 지연돼 수많은 중증 희귀난치질환 환자와 말기 암 환자들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하는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포기하고 있다. 생명과 직결된 중증질환 치료제 급여화는 재정 부족을 이유로 미루면서 생명에 지장이 없는 질환에 재정을 우선 투입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처사”라고 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건보공단 등에 전문성을 갖고 형평성을 고려하며 급여화 여부를 심사하는 기구가 있다”며 “청년 탈모 문제를 대통령이 언급한 뒤 해당 사안을 우선 논의하는 건 급여화를 기다리는 다른 환자와 가족들에게 공정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청년 탈모는 ‘생존 문제’이며, 건보를 적용할 경우 탈모약 가격 관리에도 효과적이라는 시각도 있어 찬반 논쟁은 불가피하다.
정부는 탈모약 급여화를 주제로 다음 달 4일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현재 탈모 치료 시 자가면역질환에 해당하는 원형 탈모나 지루성피부염 등에만 급여가 적용되며 유전성 탈모 등의 치료는 비급여 항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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