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변경은 단순한 디자인 교체 아닌 미래 전략과 정체성의 선언
지난 40여년간 써오던 태극 로고를 최근 바꾼 대한항공은 “저가 항공사 같다”는 등의 비판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받았다. 로고를 바꾼 기아(KIA)도 ‘KN’이라거나 ‘즐’이라는 은어까지 나오는 조롱의 대상이 됐다. 로고를 포함한 기업 정체성(CI)에 변화를 줬다가 소비자의 반발을 산 사례다. 설빙 등 국내 디저트 프랜차이즈도 로고를 바꿨다가 비슷한 비판을 받았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불만을 살 수 있는데도,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업들이 정체성과 로고를 바꾸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봤다.
◆ 41년 태극마크 지운 대한항공…통합 시대 앞둔 리브랜딩
대한항공이 올해 3월11일 CI 개편 과정에서 그간 사용해 온 태극 문양 로고와 이별하면서 기존 로고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바뀐 로고는 ‘대한항공 다크 블루’라는 단색의 선으로 이루어진 태극 문양 심볼과 고딕 계열 폰트의 ‘KOREAN AIR(대한항공)’ 글자로 구성했다. 대한항공은 태극 문양 선을 상모놀이에서 영감을 받아 표현했다고 밝혔다.
태극 문양 사이 프로펠러 모양이 들어간 기존의 로고가 항공사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수십 년간 전통과 상징으로 자리 잡았던 만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반응은 엇갈렸다. “내가 보기엔 멋지다”라거나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등 의견도 있지만 “40년간 써온 전통과 태극 문양이란 상징성을 줄이는 건 근본을 버린 거다”라거나 “2025년보다 40년 전 디자인이 더 낫다니” 등 혹평도 이어졌다.
최세림 호남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는 소비자의 감정과 기억이 브랜드 로고에 강하게 연결된 사례라고 짚었다. 최 교수는 “대한항공의 기존 태극마크는 단순 항공사 로고를 넘어 대한민국 대표 항공사의 이미지로 소비자 기억 속에 자리 잡아왔다”며 “로고가 바뀌면 소비자들은 단순한 시각 변화보다 ‘내가 알고 있던 브랜드가 달라졌다’는 감정적 거리감을 먼저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기업의 로고 교체 이유로는 “CI·BI는 단순한 그래픽 요소가 아니라 기업의 철학과 비전, 시장 전략이 압축된 시각 언어”라며 “로고 변경은 앞으로 어떤 브랜드가 될 것인지를 소비자에게 보여주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라고 언급했다.
올해 12월 아시아나항공과의 최종 합병과 내년 ‘통합 대한항공’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대한항공의 로고 교체는 기업이 향후 나아갈 방향과 정체성으로 볼 수 있다. 지난 2월에는 60년 넘게 유지해 온 영문 브랜드명 ‘칼(KAL)’을 지우고 항공편명에 붙는 ‘KE’를 전면에 내세울 계획을 발표했다. 항공기 도색과 유니폼 디자인 개편 등 리브랜딩 작업도 순차 진행한다.
국내 항공업계의 역사적 사건으로 꼽히는 두 항공사의 합병을 앞두고 대한항공은 글로벌 항공사로서의 비전과 가치를 새 로고에 담아 브랜드 정체성 재정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대한항공은 “브랜드의 방향성과 이미지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고, 대한항공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을 담아 고객과의 다양한 접점에서 세련되고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CI를 새롭게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 ‘KN’·‘즐’ 조롱에도…역대급 실적으로 세련된 이미지 장착
기아는 27년간 사용해 온 빨간 타원형 로고를 글자 중심의 새로운 로고로 2021년에 교체했다. 사명 ‘기아 자동차(KIA MOTORS)’에서도 ‘자동차(MOTORS)’가 빠졌으며, ‘The Power to Surprise’였던 슬로건도 16년 만에 ‘Movement that inspires’로 바뀌었다. 기존 로고는 타원형 테두리 안에 ‘KIA’ 글자가 배치된 형태로 옛 기아그룹 시절인 1994년부터 사용됐다. 새 로고는 획이 이어진 형태의 ‘KIA’ 마크를 적용해 간결하고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
기아의 새로운 로고 발표 때도 소비자의 평가는 엇갈렸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기아가 아니라 KN 같다”, “KN 아니고 즐이다”는 지적과 “훨씬 세련된 듯하다”, “구 로고를 벗어난 것 자체가 이미 성공이다”라는 호평이 나뉘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로고를 착각해 ‘KN’이라는 브랜드가 다수 검색되기도 했다. 기아는 자동차 제조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벗고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나아가고자 새로운 로고와 슬로건을 제시했다. 전기차 시대에 맞춰 글로벌 시장에서의 브랜드 가치를 더 높이려는 취지다.
기아는 친환경과 기술·서비스 중심의 모빌리티 사업을 펼쳤다. 2021년부터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기반 라인업 확대에 본격 착수했으며, 브랜드 최초의 전기차 전용 모델 EV6를 출시해 기초를 다졌다. 목적기반차량(PBV) 전략도 미래 사업 구조 변화의 주요 축이었다. 전기차 기반 모듈형 플랫폼을 활용해 물류, 배송 등 산업 목적에 최적화된 차량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얼굴을 바꾼 기아의 선택은 실적 측면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기아는 브랜드 방향 전환을 이루고 친환경차와 레저용 차량 중심으로 지난해 114조1409억원이라는 역대 최대의 연간 매출을 기록했다. 미래 종합 모빌리티 기업을 지향한 기아는 로고 변경을 통해 그 방향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이후 친환경차와 전동화 전략을 강화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소비자들도 초기에는 익숙하지 않은 변화에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5년이 지난 현재는 “처음엔 이상했는데 요즘 차랑 잘 어울리게 디자인 깔끔한 것 같다” 등 긍정적 반응이 상대적으로 더 눈에 띈다. 기아는 로고와 브랜드 정체성 변화를 두고 “새로운 로고와 함께 미래를 향한 담대한 도전과 약속을 선언했다”며 “로고에는 자동차를 넘어 새로운 이동 경험을 제시하는 기아의 방향성과 그 방향을 일관되게 실천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 로고는 기업의 미래를 담는 얼굴이다
로고 변경은 기업의 단순 간판 교체가 아닌 체질 개선 선언이자 수많은 비용이 드는 대형 투자다. 로고가 기업의 미래 전략과 방향성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인 만큼, 비용과 소비자 거부감을 기꺼이 감수한다. 변화의 영향은 항공·자동차 등 소비자가 신중하게 구매를 결정하는 고관여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외식·디저트 분야에서도 로고는 친숙함과 감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인 까닭에 기업의 고민거리 중 하나로 작용한다.
디저트 브랜드 설빙은 지난해 붓글씨체의 로고를 동그란 형태로 변경하면서 브랜드 이미지 재정비에 나섰다. 소비자 사이에서는 설빙 특유의 전통적이고 친숙한 감성이 옅어졌다는 반응이 나왔지만, 외국인에게 읽히기 힘들었던 점이 개선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빽다방은 올해 론칭 2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BI 개편을 추진 중이다. 더본코리아가 지난달 14일 특허청에 낸 신규 로고 2종에서는 백종원 대표의 얼굴이 빠지고 웃는 얼굴의 캐릭터와 빵·커피잔이 들어갔다. 지난해 각종 논란 이후 매출 부진과 주가 하락이 이어지면서, 더본코리아가 핵심 브랜드 변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백 대표 개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브랜드 자체의 힘을 키우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이미지를 변경해도 이름이 바뀌거나 폐업하지 않는 이상 안 갈 듯”, “귀여운데 다들 왜 그러냐” 등 반응이 엇갈린다. 더본코리아 측은 해당 로고가 시안 중 하나일 뿐 최종안이 아니라고 밝혔으며, 당초 소비자가 디자인을 투표하기로 했던 방식도 결국 가맹점과 본사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 교수는 “저관여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친숙함과 감성적 접근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며 “특히 F&B 브랜드는 ‘맛의 기억’과 ‘브랜드 이미지’가 자주 연결돼 소비자들이 메뉴뿐 아니라 브랜드의 분위기와 익숙한 이미지를 함께 소비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관여 브랜드는 ‘미래 전략과 신뢰 강화’에, 저관여 브랜드는 ‘친숙함과 감성 유지’에 초점을 맞춰 리브랜딩 전략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계속해서 “대부분의 로고 리뉴얼은 초기에 낯설고 어색하다는 반응을 얻지만, 시간이 지나 새로운 브랜드 경험이 축적되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소비자는 로고 자체보다도 브랜드가 이후 어떤 경험과 신뢰를 제공하느냐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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