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샤워볼·슬리퍼도 피부 트러블 원인 될 수 있어
락스와 산성세제 섞으면 염소가스 발생 위험 커져
“샤워기 물로 입 헹궜는데…”
직장인 김모(41) 씨는 두 달 넘게 기침과 가래가 이어졌다. 감기약을 먹어도 증상이 가라앉지 않자 병원을 찾았고, 진료 과정에서 평소 생활습관을 되짚어보게 됐다. 그는 아침마다 샤워기 물로 입을 헹군 뒤 양치질을 마무리하곤 했다.
깨끗해야 할 욕실도 관리가 소홀하면 호흡기와 피부 건강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샤워기 헤드, 젖은 샤워볼, 환기 안 된 청소 냄새가 반복되면 세균과 곰팡이가 머물기 쉬운 조건이 만들어진다.
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청구자료를 분석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비결핵마이코박테리아(NTM) 질환의 조유병률은 2010년 인구 10만명당 11.4명에서 2021년 56.7명으로 늘어 약 10년 새 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결핵 유병률은 감소해 2021년 처음으로 NTM이 결핵을 앞질렀다.
NTM 폐질환은 결핵처럼 의무 신고 체계로 환자 현황이 집계되는 질환은 아니다. 통계에 잘 드러나지 않는 만큼 일상 속 노출 환경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샤워기 물때가 만드는 ‘바이오필름’
NTM은 결핵균과 나균을 제외한 마이코박테리아를 통칭한다. 흙, 강, 호수 같은 자연환경뿐 아니라 수돗물, 가습기, 실내 수영장, 샤워기 헤드처럼 물이 닿는 생활공간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문제는 오래 쓴 샤워기 안쪽이다. 헤드와 호스 내부에는 시간이 지나며 끈적끈적한 물때가 낀다. 이 물때가 바이오필름, 즉 생물막이다. NTM은 이 막에 달라붙어 살아남기 쉽고, 일반적인 물 세척만으로 완전히 제거되기 어렵다.
샤워기를 틀면 미세한 물방울이 공기 중으로 퍼진다. 이때 균이 포함된 미세 물방울을 들이마시면 호흡기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건강한 성인은 대개 큰 문제없이 지나간다.
그러나 기관지확장증, 만성폐쇄성폐질환, 과거 결핵으로 폐 손상이 남은 사람,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양치 후 입을 헹굴 때는 샤워기 물보다 세면대 수돗물을 쓰는 편이 낫다. 오래된 샤워기 헤드는 분리해 세척하고, 물때가 심하거나 교체시기를 알 수 없다면 새 제품으로 바꾸는 것이 안전하다.
◆감기처럼 시작해 오래 가는 기침
NTM 폐질환이 까다로운 이유는 초기에 티가 잘 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감기나 기관지염처럼 느껴진다. 기침이 오래가고 가래가 늘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다.
기침이 수개월 이어지거나 가래가 계속 늘면 확인이 필요하다. 피 섞인 가래, 객혈, 미열, 식욕 저하, 체중 감소, 밤에 땀이 나는 증상이 함께 나타나면 호흡기내과 진료를 받는 편이 안전하다.
NTM은 결핵처럼 기침이나 대화로 쉽게 옮는 질환으로 보지 않는다. 감염 위험은 사람보다 환경 노출에 더 가깝다. 욕실, 가습기, 실내 수영장처럼 물을 자주 사용하는 공간의 위생 관리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NTM은 일상 환경에 널리 있는 균이라 한 번 검출됐다고 곧바로 병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며 “기저 폐 질환자가 오래 가는 기침과 체중 감소를 겪는다면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젖은 샤워볼, 피부 트러블의 시작
욕실 위생 문제는 호흡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몸에 직접 닿는 샤워볼도 자주 놓치는 물건이다. 샤워볼은 거품을 내기 편하지만 사용 뒤 물기가 남기 쉽다.
여기에 각질과 비누 성분이 묻으면 세균과 곰팡이가 자라기 좋은 조건이 된다. 등 여드름, 모낭염, 가려움이 반복된다면 바디워시 성분만 따질 일이 아니다. 욕실에 걸린 젖은 샤워볼부터 확인해야 한다.
사용 후에는 물기를 최대한 짜고 바람이 통하는 곳에 말려야 한다. 색이 변했거나 냄새가 나거나 촉감이 끈적끈적해졌다면 계속 쓰지 않는 게 좋다.
욕실 슬리퍼도 마찬가지다. 바닥 물때와 세제 잔여물이 닿는 물건이라 홈 사이에 오염물이 쌓이기 쉽다. 냄새가 나거나 표면이 끈적끈적해졌다면 세척 뒤 햇볕에 말리고, 낡은 제품은 교체하는 게 좋다.
PVC 슬리퍼라고 해서 오래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환경호르몬 노출 위험이 커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품에 사용된 소재와 보관·사용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화학 냄새가 강하게 나거나 표면이 갈라지고 마모가 심한 제품이라면 위생과 안전을 위해 교체를 고려할 만하다.
◆락스는 섞지 말고, 환기부터
오염을 없애려는 청소 습관이 또 다른 위험을 만들기도 한다. 욕실 청소에 많이 쓰는 락스가 대표적이다.
락스는 살균력이 강하지만 잘못 쓰면 눈, 코, 목 점막을 자극할 수 있다. 특히 식초, 구연산, 산성 세제와 섞으면 염소가스가 발생할 수 있다. 찌든 때를 빨리 벗기겠다며 뜨거운 물에 희석하는 행동도 피해야 한다.
락스는 다른 세제와 섞지 말고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찬물이나 미지근한 물에 희석해 쓰고, 청소 전에는 창문을 열거나 환풍기를 틀어 환기가 잘되도록 해야 한다. 고무장갑을 착용하고, 청소가 끝난 뒤에는 물로 여러 번 헹궈 잔여물이 남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집에 영유아나 고령자, 천식·폐 질환자가 있다면 냄새가 강한 청소는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짧게 끝내고 충분히 환기하는 편이 낫다.
전문가들은 “욕실은 청결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습기와 물때가 반복되면 세균과 곰팡이가 증식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며 “기침이나 피부 트러블이 반복된다면 약만 찾기보다 생활환경을 함께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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