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전시공간·박물관 등 역할에도
건축적 표현·명칭 놓고 논란 일어
질서정연한 배치 탓 군대 ‘닮은 꼴’
권위적 인상에 다양한 해석 어려워
현대에도 여전히 상존하는 ‘전쟁’
“어떻게 살 것인가” 질문 기억해야
몇 년간 이어진 지구촌 곳곳의 전쟁이 끝나지 않고 있다. 어떤 전문가들은 제3차 세계대전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섬뜩한 진단을 내놓기도 한다. 현재까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100만명,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4만명, 미국-이란 전쟁에서 1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정확한 집계도 아닌 추정치의 사망자 수를 보며, 전쟁의 몰인간성을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된다.
전쟁은 국가와 국가 간의 충돌이다. 그래서 전쟁에서 개인의 인격성은 극도로 작아져 끝내 소멸한다. 전쟁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개념만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죽음이 오직 숫자로만 기록되는 이유다. 하지만 100만이라는 건조한 숫자 속에는 100만 개의 집과 100만 개의 저녁 식사가 들어 있다.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쓰러지는 참혹한 순간에도, 내 죽음의 의미가 옆에 있는 타인의 것과 같을 수는 없다. 결국 전쟁의 실재성(Reality)은 집단이라는 익명성 뒤에 숨겨진, 개별적인 죽음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개인의 아픔에 있다.
이런 ‘전쟁’을 ‘기념하겠다’는 시설이 있다. 바로 서울 한가운데 자리한 ‘용산 전쟁기념관’이다. ‘전쟁기념관 건립 현상설계 공모지침’(1989)에 따르면 용산 전쟁기념관의 건립 목적은 “전쟁에 관련된 유무형의 자료들을 발굴, 수집하여 영구히 보존, 전시하고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의 의지를 더욱 굳건히 다진다”이다. 그런데 전쟁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 보존하고 전시한다고 해서 전쟁이 ‘기념’될 수 있을까?
기념(記念)의 사전적 정의는 “뜻깊은 일이나 사건을 잊지 않고 마음에 되새김”이다. 많은 이들이 ‘전쟁기념관’이라는 명칭을 보며 “전쟁은 그 자체로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다. 이에 대해 설계자 이성관은 기능적으로는 추모와 전시 목적의 ‘기념관으로서의 박물관’이고, 입지적으로는 향후 조성될 용산 ‘공원 속의 박물관’인데, ‘전쟁추모기념관’이자 ‘전사박물관’이라고 일일이 자상하게 구분해 부를 수 없어서 ‘전쟁기념관’으로 잠정 확정했을 뿐이라고 답했다.(월간 플러스 1994년 12월) 즉, ‘전쟁기념관’은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추모관이자 전쟁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으는 박물관이며, 이를 전시하는 전시관이고 전쟁 없는 평온한 삶을 체감하는 공공공간을 모두 함축하는 명칭인 셈이다.
전쟁기념관을 바라보는 또 다른 비평적 시각은 시설의 추진 주체와 시기에 있다. 전쟁기념관 건립 사업은 노태우정부 때 시작되어 문민정부 첫해인 1993년 12월, 옛 육군본부가 있던 자리에 준공됐다. 시기적으로 보면 30년 군사통치 시대가 끝나면서 군사정권이 문민정부에 넘긴 마지막 유산인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 군사정권에 대한 기억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건축가 정기용은 전쟁기념관에 대해 “군이 문민보다 우월함을 역사적으로 기리는 장소이며, 백성에 대한 군의 초월적 힘을 간접적으로 과시하며 교육하는 장”이라고 평했다.(월간 플러스 1994년 7월) 실제로 이 시설을 물려받은 김영삼정부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며 오갈 데 없어진 국립중앙박물관을 이곳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전쟁기념관에 대한 비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건축물이 취하고 있는 태도(Gesture)다. 설계자는 건축이 그 자체로 전쟁의 의미를 구현하거나 형상화할 수 없고 이런 역할은 전시물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전쟁을 암시하는 상징적 은유를 가급적 절제하고, 책의 표지를 디자인하듯 건물의 외관을 설계했다고 한다.
하지만 건축가의 의도와 달리 전쟁기념관은 남북 방향의 축을 따른 질서정연한 배치, 강한 대칭성과 돌이라는 무거운 소재로 인해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인상을 풍긴다. 정문에서 6·25전쟁 조형물을 지나 평화광장을 통과해 전시관 입구까지 이르는 과정, 그리고 상징영역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호국관이 방문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또한 명확하다. 정해진 목표를 향해 곧바로 나아가는 행위와 정해진 답 외에는 다른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 공간 구조는, 마치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라는 조직을 닮았다. 더욱이 전쟁기념관이 전쟁과 관련된 추모관, 박물관, 전시관, 공공공간을 모두 포괄하는 시설이라면 그 형태와 태도는 방문자의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했어야 했다. 그러나 현재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건 엄숙함과 장엄함의 범주 정도다.
전쟁을 평범한 일상과는 대척점에 있는 비일상적인 시간이자 행위로 보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전쟁은 특정한 날에 시작해 승리나 패배로 종결되는 유한한 사건이었다. 그런 시대에 전쟁을 위한 기념비는 영웅적이고 거대하며 웅장했다. 사람들은 승전비나 개선문 같은 기념비 앞에서 전쟁 영웅들을 되새긴다는 의미 외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용산 전쟁기념관도 전시 내용을 보면 한국전쟁에 대한 기념비성 건축물이다.
하지만 현대의 전쟁은 일상 속에 존재한다. 국가 간의 전면전은 줄었으나 국지적인 충돌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삶의 공간이 한순간에 전쟁터로 바뀌기도 한다. 개전과 종전의 시점은 이제 예측할 수 없고 정할 수도 없다. 정부와 언론은 이를 테러나 특별군사작전이라 부르며 전쟁과 구분하려 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폭력 앞에 사람이 죽고 그 공포를 잊지 못한다는 건 전쟁, 테러, 특별군사작전 모두 마찬가지다.
그래서 현대의 전쟁을 기념하려는 공간은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을 우리 사회가 잊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해야 한다. 또한, 상실감과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언제든 찾아와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결국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특정한 시간이 아니어도 우리가 전쟁기념관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는 전쟁에서 승리했다”라는 명징한 구호보다 “우리는 이 아픔과 상실을 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특히 종전이 아닌 휴전이라는 불안한 조건 속에서 사는 우리에게, 전쟁이라는 상존하는 불안이 정쟁의 도구나 통치의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이 질문은 더욱 단단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전쟁기념관이 여러 비평 속에서도 현재 우리의 삶에 의미 있는 장소가 되려면 위 질문을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특히 건축가가 예기치 못한 비일상의 조우를 의도했다는 ‘평화의 광장’은, 역설적으로 현재의 우리를 투영하여 평범한 일상의 무게를 자각하게 하는 ‘환기(喚起)의 장치’가 되어야 한다. ‘평화의 광장’이 이름 그대로 평화라는 조건이 얼마나 유약하고 귀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상에서 공감할 수 없는 전쟁의 실재성은 비일상의 공간 안에서 그저 정교한 시뮬레이션 게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개별적 죽음의 무게를 잊는 순간, 평화라는 조건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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