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슬픔 앞에서
작은 슬픔이 쓰러진다
큰 슬픔이
작은 슬픔을 일으켜 세우고
무릎을 털어준다
큰 슬픔이
작은 슬픔을 등에 업고
먼 길을 간다
그 걸음이 늠름해서
멀리서 본다면
큰 기쁨이 작은 기쁨을 업고
나들이 가는 줄 알 것이다
시를 읽으며 새삼 깨닫는다. 슬픔이 얼마나 힘이 센지. 나를 울게 하는 그 힘으로 또다시 나를 살게 하는 슬픔. 큰 슬픔이 작은 슬픔을 등에 업기도, 작은 슬픔이 큰 슬픔을 달래기도 하는 것. 지금 한창 슬퍼하는 이에게 이런 말은 어쩌면 서글픈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슬픔은 간다, 어떻게든 간다. 시간의 방향을 따라, 사뭇 늠름하게 걸어갈 수 있다.
문득 흰쌀을 씻어 밥을 짓고 싶다. 나는 가끔 새벽에 밥을 짓는데, 밥 냄새를 맡다 보면 자연스레 내일을 기약하게 된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이 밥을 먹게 될 거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제법 괜찮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갓 지은 밥은 얼마나 포근한지. 슬퍼하는 이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넬 자신은 없고, 나는 다만 그에게 밥을 지어보라 권해야겠다. 쌀을 안치고, 쌀이 익는 소리를 듣고, 쌀이 익는 냄새를 맡고, 밥이 다 된 솥을 열어 주걱으로 서너 번 휘저어 보라고. 너 자신을 위한 뜨거운 밥. 그것을 먹고 다시 힘을 내어 슬퍼하자고. 걸어가자고.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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