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견제하면서 ‘평양행’도 추진
이재명 정부 외교 중요한 시험대
한·미, 한·일 동맹 속 지평 넓혀야
최근 베이징에 주요 강대국 지도자의 발길이 잦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지 나흘 만인 지난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이징을 국빈 방문했다. 8개월 만에 중국을 다시 찾은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새로운 국제 질서 구축, 전략 파트너십 강화, 호혜적 협력 등을 논의했다.
중·러 정상의 이번 회동은 양국 간 ‘선린·우호·협력 조약’ 체결 25주년과 전략적 협력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하고 향후 양국 간 우호·협력 증진을 재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베이징과 모스크바는 양국 관계가 역사상 최고라고 평가한다. 양국은 2022년 2월에 ‘한계 없는 협력’을 약속한 바 있다. 이번 회담에서는 ‘진일보한 전면적 전략 협조’ 관계를 천명했다.
이번 정상 회담에서 양국 지도자는 국제 질서의 ‘다극화’를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행한 연설에서 “일극 체제는 이제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세계 질서의 다극화를 확인하고 양국이 신형 국제 관계를 함께 열어갈 것을 다짐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양국은 미국의 우주 기반 다층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골든돔’ 구상이 전략적 안정을 해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 밖에 양국 지도자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양국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미국·이란 전쟁에 대해 상호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열렸던 미·중 정상회담과는 달리 중·러 정상회담에서는 경제 협력, 교역, 기술, 원자력,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에 관한 40여개의 합의 문건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획기적인 진전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예컨대, 이번 회담에서 러시아는 지난 수년간 논의되어 온 ‘시베리아의 힘-2’ 프로젝트의 성사에 큰 기대를 걸었다. 이 사업은 러시아 야말반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몽골을 경유해 중국으로 운송하는 프로젝트이다. 그러나 공급가에 대한 양국 간 견해 차이가 워낙 커서 최종 타결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국제 질서 재편 과정에 일익을 담당하는 강대국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일정한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양자 관계에서 더 아쉬운 쪽은 러시아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이후 러시아와 유럽 간 에너지 협력을 비롯한 교역과 경제 협력은 크게 감소했다. 이는 러시아의 대중국 의존도를 가파르게 증대시켰다. 중국은 반도체 등 초소형 전자제품, 정밀 기계, 드론 부품 그리고 기타 군수산업에 전용이 가능한, 이른바 ‘이중용도’ 제품 등의 주요 공급자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은 러시아와의 격상된 파트너십을 천명함으로써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도움이 되는 핵심적인 우군을 확보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대등한 초강대국 지위를 선언한 중국은 이웃한 강대국 러시아와 끈끈한 유대감을 과시함으로써 자국이 세계 정치 무대의 중심이라는 이미지를 창출하고자 했다.
중·러 정상회담이 끝나자 북·중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시 주석이 7년 만에 평양을 방문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근년에 러시아와 급속히 밀착해 온 북한과의 관계 재설정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중국은 미국이 북한과 본격적으로 접촉하기 이전에 평양과의 전략적 공조를 다지려 한다. 트럼프 2기의 미국이 기존 동맹국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은 각각 북한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번 중·러 정상회담에서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재가동이 논의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 사안은 중국의 동해 출해권과 연관이 있는 만큼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동맹보다 자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노선, 중·러 연대의 심화 그리고 러시아, 중국 각각의 대북한 접근 정책 등은 대한민국의 외교·안보에 만만찮은 도전 요소다. 한국은 한·미 동맹, 한·일 협력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러시아 및 중국과 교류·협력의 지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난해한 고차방정식이 주어진 셈이다. 바야흐로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가 중대한 시험대에 서 있다.
장덕준 국민대 명예교수·유라시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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