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에 발맞춰 법원 판결문 공개를 확대하고 비실명 처리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반면 판결서 공개 확대가 개인정보 침해와 상업 활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대검찰청이 전국 고검장·검사장 화상회의를 열고 보완수사권과 전건송치 등 검찰개혁 과제 논의에 들어갔다. 6·3 지방선거가 끝나면 형사소송법 개정 등 검찰개혁 국면에 본격적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이는 만큼 대검이 주요 쟁점에 대한 전국 검사장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회의를 마련한 것이란 분석이다.
◆“판결서 공개, 다양한 사회·경제적 가치 창출 수단”
사법정책연구원(원장 이승련)은 27일 서울 서초구 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판결문 공개제도의 실무상 쟁점 공동 학술대회’를 열었다.
법원은 인터넷 열람 제도를 통해 2013년 이후 확정된 형사사건, 2015년 이후 확정되거나 2023년 이후 선고된 민사·행정·특허사건의 판결문을 공개하고 있다. 최근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내년 12월31일부터는 미확정 형사판결문도 열람이 가능해진다.
다만 판결서 열람 제도 시행 이전 판결서 등은 여전히 공개가 제한되고 기관 및 기업 이름 등 개인정보 비실명 처리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발제를 맡은 이정현 창원지버 통영지원 부장판사는 “판결서 공개는 우리 사회의 첨예한 갈등을 예방하고 다양한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수단”이라며 “재판공개의 원칙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기여하고 사법 책무를 다하는 길이 된다는 점에서도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장판사는 “비실명 처리 대상이 광범위하고 처리 방식도 단순해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며 법인과 단체 명칭도 전부 비실명 처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해외 사례를 들며 법원은 최소한의 필수 정보를 비실명 처리하고, 그 외의 정보는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추가로 비실명 처리 여부를 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반면 판결서 공개 확대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재남 인천지법 판사는 “개인정보 보호조치 대상을 지나치게 축소하는 것은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만큼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AI가 법관의 판결 패턴과 성향, 양형 등을 분석·예측하는 것이 손쉽게 가능해졌다”며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법관을 찾는 ‘포럼쇼핑’이나 특정 법관에 대해 승소 가능성이 가장 높은 변호사를 찾는 목적 등을 위해 판결서 정보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것은 적절한 제한을 가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AI 학습을 위한 판결서 데이터 공개 방안과 상업적 활용에 대한 토론도 진행됐다.
박철홍 광주지법 순천지원 부장판사는 “선례적 가치가 낮은 판결서 데이터까지 일률적으로 공개하고 상업적 이용의 허용을 전제로 판결서 벌크 데이터(파일 단위 개개 데이터를 모아놓은 것)나 데이터 세트(컴퓨터에 의한 분석에 적합하도록 관련 정보를 집적한 것) 자체를 제공하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는 “판결문 데이터 세트를 공개하면 단지 리걸테크 기업뿐 아니라 국민, 법률가, 연구자, 공공기관 등 모두가 수혜자”라며 “공식적 접근 경로가 부족하면 오히려 자본력 있는 기업만 데이터 경쟁에서 앞서가게 된다”고 했다. 이어 “국내 판결문 데이터가 적절히 공개되지 않으면 한국 법률서비스의 AI 혁신은 제한된 민간 데이터에 종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개인정보 문제는 ‘공개하지 말자’는 결론이 아니라 '어떻게 공개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으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검, 전국 검사장 화상회의 소집
대검은 이날 오후 2시부터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 주재로 서울과 수도권 지역 고검장·검사장이 참여하는 화상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선 검사의 보완수사권 존치와 ‘전건송치’(경찰이 수사한 모든 사건을 검찰에 넘겨 기소 여부를 판단 받게 하는 제도) 재시행 등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견제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대검은 회의 결과를 법무부나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등 관계 부처에 전달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자칫 ‘검사들의 집단행동’으로 비쳐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검 관계자는 “올바른 제도 개편과 형사소송법 개정 방향에 대한 검찰 차원의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현장의 의견을 듣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검은 28일과 29일 이틀간 화상회의를 추가로 열어 이날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검사장들의 의견을 들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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