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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는 기술’ 최고, ‘부수는 기술’ 최악… 설계도 대신 경험만 있었다 [서소문 고가 붕괴사고]

입력 : 수정 :
채명준·유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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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계산 없이 경험 의존 참사 되풀이
철거공사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

‘광주 학동’ 이후 대책 마련 무색
5년간 사고 1191건·사망 106명
건물 올리는 기술에만 치중해
안전하게 허무는 해체공학 외면
‘맨눈’ 안전진단 관행도 문제
“위험시 드론 이용·하부보강 필요”

건물을 올리는 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정작 이를 안전하게 허무는 ‘해체 공학’은 여전히 과거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는 후진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6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는 이처럼 ‘세우는’ 기술에 치중하고 ‘부수는’ 기술은 외면한 비대칭적 성장이 불러온 예고된 참사라는 평가다. 구조물 해체의 역학적 특성을 예측하는 ‘해체 공학’ 전문성 부재가 철거 현장을 ‘안전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해체 공학 시스템 구축과 철거 안전규정 쇄신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경찰 현장조사 27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 현장에서 소방과 경찰 관계자들이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경찰 현장조사 27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 현장에서 소방과 경찰 관계자들이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반복되는 철거 사고들

 

27일 국토교통부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CSI)에 따르면 2021년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 참사 이후 정부가 대대적인 대책을 내놓았음에도 철거 현장의 위험 지표는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2021년 194건(32명)이던 토목·건축물 해체 및 철거공사 사고는 2022년 207건(16명), 2023년 231건(22명), 2024년 261건(14명), 2025년 248건(19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4월까지 토목과 건축 공사 종류의 해체 및 철거공사에서 총 50건의 사고로 3명이 숨졌다.

 

최근 5년여간 누적된 철거 사고만 1191건으로, 106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11월 울산 남구 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에서 보일러 타워 해체 중 발생한 붕괴 사고(7명 사망·2명 부상)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서울 중심가에서 국가 기간 철도망을 마비시키는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철거 현장에서 비극이 반복되는 원인으로는 해체 공학 전문성 부재가 꼽힌다.

 

정부와 업계가 해체 공정을 단지 시공의 부수적인 ‘단순 노무’로 치부하면서 학문적·기술적 발전이 멈췄다는 지적이다.

철거공사는 건물을 지을 때와 다른 역학이 작용한다. 특정 부재를 잘라내는 순간, 남아 있는 기둥과 보로 수십t의 무게중심이 실시간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현장은 이러한 동적 변수를 정밀 계산하는 공학적 시뮬레이션 없이 여전히 “위에서부터 대충 조심히 부수면 된다”는 과거의 경험칙에 의존한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 증언이다.

 

이번 붕괴 사고에서도 공학적 공백이 여실히 드러났다.

 

초기 구조 검토 단계부터 해체 시 하중 변화 예측에 실패했다. 당시 무너진 거더(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보)에는 작업자들이 오르내리던 파이프 비계와 철로 낙하물 방지망의 무게까지 불균형하게 집중돼 붕괴 확률을 높였다. 이번 사고 발생 불과 5분 전 KTX가, 1분 전에는 무궁화호가 각각 서소문 고가도로 아래를 통과한 것을 고려하면 초기 구조 검토 착오가 자칫 대형 인명 피해로까지 번질 수 있었던 셈이다. 

 

사고 뒤 여러 전문가가 고가 아래 지지대 미설치 문제를 지적하자, 서울시 측은 “지지대(잭서포트 등)의 경우 설계도 구조 계산상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27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사고현장 수습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27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사고현장 수습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안전하지 않은 안전진단, 틀 바꿔야

 

해체 공학 전문성 부재는 ‘안전하지 않은 안전진단’으로 이어진다. 객관적인 안전 기준 자체가 정립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고 당일 새벽 이미 상판이 어긋나는 이상 조짐(2.9㎝ 단차)이 포착됐지만, 드론 등 비대면 장비를 활용하지 않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다 사고가 났다. 건설업력 30년이라는 이모(66)씨는 “공사 중 안전 문제가 있어 보이면 사람이 먼저 올라타서 보고 그다음에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 확인하고 보강 방법을 제시하는 게 관행”이라고 말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붕괴 위험성이 예고된 상황이라면 하부를 먼저 견고하게 보강(잭서포트 설치)한 뒤 사람이 올라가거나 드론 등을 이용했어야 했다”며 “문제가 생기면 사람이 먼저 올라타 상태를 보고 보강책을 찾던 현장의 비과학적인 관행과 패러다임이 결국 참사로 연결됐다”고 지적했다.

27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사고현장 수습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27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사고현장 수습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철거 제도의 틀을 선진국 수준으로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감리가 시공사와 발주처 눈치를 보지 않고 위험 현장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권한을 보장하고 이를 수행할 전문가를 양성하는 게 시급하다.

 

2016년 건설업법을 개정해 해체공사를 일반 시공과 완전히 분리된 별도 독립 업종으로 규정한 일본이 좋은 이정표다. 일본의 해체 감리는 현장 작업 순서가 역학적으로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즉시 공사를 강제로 멈출 수 있는 실질적인 ‘작업 중단 권한’을 갖는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해체 감리사의 현장 상주를 의무화하고, 일본처럼 감리의 독립성과 실질적인 작업 중단 권한을 법제화해야 한다”며 “한국기술사회에서 매달 해체감리사 교육을 하지만 현재 40시간 교육 과정엔 시험도 없다”며 해체 감리 전문성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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