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심문이 열린다. 어부 피터 그라임스가 책임지는 견습 어부가 사망한 사건 때문이다. 사고사로 결론 지어지지만 그를 둘러싼 오해와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간다. 피터는 성공과 인정만이 자신을 둘러싼 편견과 의심을 거둘 수 있다고 믿으며 새로운 소년 견습 어부를 들인다. 그러나 또다시 피터가 소년을 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영국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 대표작 ‘피터 그라임스’가 국립오페라단 무대에서 국내 초연된다. 1945년 초연 당시 “영국 오페라를 부활시켰다”는 찬사를 받으며 31세였던 브리튼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다. 집단 심리를 꿰뚫는 서사뿐 아니라 음악 자체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20세기 영어 오페라의 정점’으로 극 중 ‘바다 간주곡’은 독립적으로 자주 연주되는 관현악 명곡이기도 하다.
연주는 국립심포니, 지휘봉은 영국 태생의 알렉산더 조엘이 잡는다. 빈 국립음악대학교에서 지휘를 전공한 그는 빈 국립오페라극장·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코번트 가든·드레스덴 젬퍼오퍼 등 유럽 주요 극장을 두루 거친 지휘자다. 악보 속 뉘앙스와 긴장 관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해석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연출은 2024년 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를 성공적으로 이끈 스위스 출신 줄리앙 샤바가 맡는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리얼리즘과 추상성 사이의 긴장감을 무대 위에 구현하며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폭력을 날카롭게 포착할 계획이다.
앰버 판덴훅의 무대 디자인 역시 강렬하다. 회전 무대 위에 해체되고 녹슨 거대한 배가 놓인다. 이 배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마을 공동체의 공간이자 피터 그라임스의 내면세계를 상징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각도와 움직임에 따라 선술집·바닷가·피터의 집 등 다양한 공간으로 변모하며 불안정한 정서를 시각화한다.
세버린 베송의 의상은 낡고 거친 질감과 빈티지한 분위기를 살렸으며 우비·조업복·워크웨어 등을 반영해 어부의 생활감을 살렸다. 합창단은 그라데이션 염색 의상을 착용해 집단적 이미지로 관객에게 각인되도록 했다.
타이틀 롤에는 세계적인 헬덴테너 크리스토퍼 벤트리스가 선다. 영국 출신인 그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파르지팔 역을 100회 이상 소화한 바그너 전문 테너다. 베를린 도이체 오퍼와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서 이미 피터 그라임스 역을 맡은 바 있다. 국립오페라단과는 2013년 ‘파르지팔’에서 인연을 맺은 바 있다. 또 다른 피터 그라임스 역에는 현재 독일 올덴부르크 주립극장 전속 가수이자 빈 폭스오퍼 주역가수로 활동 중인 테너 김재석이 나선다. 유럽 극장 실전 경력 20년을 넘긴 그가 한국 오페라 무대에 서는 것은 25년 만이다.
피터의 유일한 이해자 엘렌 오포드 역에는 이졸데·투란도트 등 드라마틱 레퍼토리를 두루 소화해온 소프라노 문수진과 국립오페라단 솔리스트 오예은이 번갈아 출연한다. 바리톤 양준모와 이동환이 피터에게 쓴 진실을 건네는 발스트로드 선장을 맡는다.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6월 18∼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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