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용자 위주 대출 구조 타파
통신비 납부 실적 등 평가 참조
1239만 신파일러 평가 오를 듯
인뱅, 저신용자 대출 30% 넘어
구체적인 활용 가이드라인 부재
뜻하지 않는 대출 거절 가능성도
신용평가 체계가 통신요금이나 공공요금 납부 실적 같은 일상의 비금융 정보를 결합한 형태로 개편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연체 이력에만 의존하던 기존 심사 방식을 개선해 금융 이력이 부족한 ‘신파일러’ 소외계층을 제도권 금융으로 포용한다는 구상이다. 일각에선 서민 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 대출 문턱을 완화하는 것이 제2금융권의 건전성 악화로 직결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6일 금융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다음달 포용금융 전략추진단을 출범하고 신용평가 방식 고도화 안을 구체화한다. 하반기 중 7개 시범은행에 소상공인 특화 모델을 우선 적용하고 금융회사 내에 포용금융 최고책임자(CIFO)를 지정하는 방안이 핵심 과제다.
이번 개편 논의는 기존 금융이력 중심 평가 방식이 고신용자 위주의 대출 구조를 고착화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용범 정책실장 등 청와대가 잇달아 중·저신용자의 구조적 배제 문제를 지적하며 심사체계 개편 필요성을 언급하자 금융당국이 후속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통신비·공공요금 실적으로 평가
전통적인 신용평가가 대출 발생이나 연체 이력, 카드 사용 실적 등 과거 금융거래 기록을 중심으로 차주를 심사한다면, 대안신용평가는 통신비나 공공요금 납부 실적, 상거래 이용 패턴 같은 생활 밀착형 비금융 정보를 핵심 기반으로 삼는다. 현재 코리아크레딧뷰로(KCB) 기준 국내 신파일러 규모는 약 1239만명 수준이다. 대안평가는 이들처럼 금융 이력이 부족해 기존 방식으로는 신용등급 산출이 어려웠던 소외계층의 실질 상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대안신용평가를 대출 심사에 도입해 사각지대에 놓인 차주를 발굴하는 사례가 구체화하고 있다. 자체 신용평가모형을 고도화한 토스·카카오·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 3사는 올해 1분기 중·저신용자 대상 대출 비중 30%를 일제히 초과 달성했다. 결제·송금 데이터를 결합한 카카오페이의 대안평가지표 역시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전세대출보증 심사에 채택돼 활용 중이다. 시중은행권에서는 KB국민은행이 대안정보를 반영한 평가 모델을 선제적으로 도입해 올 1분기에만 3068억원의 민간 중금리 대출을 신규 공급했고, NH농협금융도 하반기부터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한 심사 모델을 대출 심사에 적용할 계획이다.
◆건전성 악화 리스크 우려도
다만 도입 확대에는 구조적 제약이 따른다. 현재 대안신용평가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나 구체적인 활용 가이드라인이 부재해 금융사마다 운영 방식이 제각각인 실정이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최근 관련 보고서에서 “대안평가가 포용성과 적시성을 갖췄음에도 축적된 정보의 품질이 고르지 못하고, 인공지능 기반 알고리즘의 심사 기준을 투명하게 입증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모형이 정교해질수록 차주의 부실 리스크를 세밀하게 가려내 대출 거절로 이어지는 역설도 존재한다. 대출 상환 이력은 양호해도 세금이나 통신료 납부 이력이 불규칙하면 위험 차주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부정적 정보까지 수집할 경우 대출 공급 확대라는 취지가 상쇄되는 딜레마도 생긴다.
저축은행을 비롯한 제2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현실적 제약을 들어 대출 확대 기조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경제 여건이 위축된 상황에서 리스크 변별력을 완벽히 확보하지 못한 채 대출 문턱만 낮아질 경우, 개별 금융사의 연체 부담 폭증과 건전성 저하로 직결될 수 있어서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사의 리스크 부담을 덜어주고 제도가 안착하려면, 무작정 대출 문턱을 낮출 것이 아니라 쓸 만한 데이터가 원활하게 융통될 수 있도록 생태계 전반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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