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출범한 유로비전(Eurovision) 가요제가 올해 70주년을 맞았다. 유럽방송연맹(EBU)이 주관하는 이 경연 대회는 유럽 국가들이 저마다 대표팀을 출전시켜 노래 시합을 벌인 뒤 배심원단 투표와 일반 시청자 인기 투표 등을 거쳐 우승자를 가리는 것이 핵심이다. 중동의 이스라엘은 비록 지리적으로는 유럽 대륙에 속하지 않으나, 공영 방송사 KAN이 EBU에 회원으로 가입하며 1973년부터 유로비전 가요제에 참여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노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음악 문외한인 필자로선 잘 모르겠지만 이스라엘은 이제껏 4차례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1등을 한번도 하지 못한 나라가 부지기수란 점을 감안하면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 모두 자랑스럽게 여길 일임이 분명하다.
2025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제69회 유로비전 가요제는 오스트리아 대표팀이 우승했다. 그런데 대중의 시선은 준우승자인 이스라엘 출신 가수 유발 라파엘(25)에게 더 쏠렸다. 당시 중동 가자 지구에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무력 충돌이 한창이었다. 이 전쟁은 하마스의 잔혹한 기습 작전으로 시작한 것이 분명했으나, 이스라엘이 반격에 나선 뒤 가자 지구의 무고한 민간인들까지 희생되며 국제사회의 여론이 바뀌었다. 라파엘의 공연 도중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시민들이 이스라엘 가수의 출전 및 입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며 하마터면 대회 운영이 차질을 빚을 뻔했다.
지난 대회 우승국이 다음 대회를 개최하는 오랜 전통에 따라 올해 70회 유로비전 가요제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렸다. 그런데 경연 대회를 앞두고 EBU 내부에서 사상 유례 없는 분열과 갈등이 발생했다. 일부 회원국이 가자 지구에서의 민간인 학살을 성토하며 이스라엘의 유로비전 퇴출을 촉구한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70회 경연 대회를 보이콧하겠다’는 엄포가 뒤따랐다. 좌파 정권이 집권 중인 스페인이 특히 강경했다. 반면 이스라엘의 맹방인 독일은 “만약 이스라엘이 배제된다면 우리가 먼저 유로비전을 보이콧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2025년 11월 열린 EBU 총회에서 ‘이스라엘의 유로비전 퇴출’ 안건은 회원국 다수의 반대로 부결됐다.
17일 오스트리아가 주최한 유로비전 가요제 결승전에서 동유럽 불가리아 인기 가수 다라(Dara)가 1등을 차지했다. 사상 처음 유로비전 우승의 영예를 안은 불가리아는 오는 2027년 경연 대회를 자국 수도 소피아에서 개최할 권한을 얻었다. 그런데 올해도 1위보다는 2위에 오른 이스라엘 가수 노암 베탄(28)에게 더욱 눈길이 쏠리는 모습이다. 이번 대회는 스페인, 아일랜드,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슬로베니아 5개국이 이스라엘의 출전에 반대하며 경연 참가를 거부한 가운데 열렸다. 실제로 베탄의 공연 도중 관중석에선 그를 야유하며 반(反)이스라엘 구호를 외치는 이들이 목격됐다. 많은 이들이 ‘정치와 예술의 분리’를 강조하지만 현실에선 참으로 어려운 일이란 점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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