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남은 가족들은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됐다 [탐사기획-자살예방법, 국가의 책무]

관련이슈 세계명품관 , 세계뉴스룸

입력 : 수정 :
탐사보도1팀=조병욱·배주현·정세진 기자

인쇄 메일 url 공유 - +

(4회) 남겨진 사람들의 회복 <끝>
※ 세계일보 탐사보도팀은 자살예방법이 명시한 권리와 책임을 알리기 위해 이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손지연 서울시 자살 유족 자조모임 자작나무 대표가 지난 4월1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공원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잠시 멈춰 서 있다. 13년 전 큰 아들을 잃은 손 대표는 자조모임을 활성화하고 유족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싶다고 말했다. 유희태 기자
손지연 서울시 자살 유족 자조모임 자작나무 대표가 지난 4월1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공원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잠시 멈춰 서 있다. 13년 전 큰 아들을 잃은 손 대표는 자조모임을 활성화하고 유족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싶다고 말했다. 유희태 기자

지연은 아파트 상가 내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봉지째 쓰레기통에 버렸다. 전날,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찾아간 병원에서 받아 온 것이었다. 한 알을 삼키자 두근거림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몸이 편안해진 그 순간,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들이 죽었는데, 엄마의 몸이 편안해져도 되는 걸까. 상우가 떠난 지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한 달 전 아침에 건넨 마지막 말이 목에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2013년 3월5일 오전 10시, 지연은 옷장 앞에서 둘째의 첫 학부모 총회에 입을 옷을 고르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큰아들 상우였다.

 

“아침부터 어디 가니?” “친구 만나러요.”

 

“멀리 가니?” “네, 좀 멀리요.”

 

“엄마 지금 바빠, 너무 늦게 다니지 마.”

 

상우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 덜컹거리는 전철 소리만 낯설었다. 지연은 다시 걸 생각으로 전화를 끊었다. 학부모 총회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점심 무렵 다시 건 전화에선 신호음만 길게 이어졌다.

 

스물셋 상우는 술도 담배도 즐기지 않았다. 한 해 전 의경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 복학 대신 집 근처 온라인 광고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못마땅해했다. 상우는 집을 나와 회사 근처에 원룸을 얻었다. 그러다 반년도 안 돼 회사를 그만뒀다. 그 뒤로는 경기 양주의 이모 집에서 지냈다. 지연은 부자간의 흔한 갈등 정도로 여겼다.

 

3월6일, 점심이 지나도록 상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연은 양주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모도 상우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세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041’로 시작하는 번호가 휴대폰 화면에 떴다.

 

“선상우군 어머님 되시죠? 보령경찰서입니다.”

 

낯선 목소리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상우가, 또래 세 사람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고 했다. 사망자들의 주소는 서울, 대전, 인천, 전북으로 서로 달랐다. 경찰은 그들이 온라인에서 만난 사이로 추정했다. 처음 약속에는 네 사람이 있었고, 한 사람이 마지막에 마음을 돌렸다. 빈자리에 상우의 답이 닿았다. “몇 분 상관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지연은 형사의 말을 그렇게 기억했다.

상우가 도착한 곳은 충남의 한 바닷가였다. 민박집 주인은 전날 저녁까지 그들을 봤다고 진술했다. 낮 동안은 바닷가에 있었고, 저녁 무렵 함께 방으로 올라갔다고 했다. 다음 날 사회면 기사에 상우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사는 A(23)씨로 기록됐다.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은 그해 시행 1년 차를 맞고 있었다. 상우가 떠난 두 달 뒤 인근 바닷가에서 유사한 죽음이 다시 발생했다. 자살동반자 모집 글 같은 자살유발정보를 처벌하는 제19조 1항이 시행되기까지는, 상우가 떠난 뒤로 6년4개월이 더 흘러야 했다.

 

보령에서 서울로 상우를 데려오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 빈소에 놓을 사진을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이모가 급히 사진을 뽑아 왔다. 상우가 떠나기 일주일 전, 생전 처음 파마를 한 날이었다. 이모가 귀엽다며 무심코 찍어 둔 그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영정 속 검은 각진 뿔테 안경을 쓴 청년은 수줍은 듯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장례식을 치르고 며칠 지나지 않아 지연은 상우의 가장 친한 친구를 찾아갔다. “휴대폰을 한 번 들여다보고 싶은데 어디 가서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친구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머니, 사실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어요.”

 

친구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상우가 보령으로 향한 그날 저녁, 친구는 카톡 한 통을 받았다. 지금 자살하려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경찰에 대신 신고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친구는 그저 장난인 줄 알았다. 마지막 카톡은 짧았다. 같이 있는 사람들이 눈치챌 것 같다고, 누군가 발견하겠지. 그것이 상우의 마지막이었다.

 

1년 전 상우는 집에서 가까운 수서경찰서에서 의경으로 복무했다. 송파구 경찰병원에 안과 진료를 나가는 날이면 로비에서 면회 온 엄마와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수다는 늘 같은 말로 맺어졌다.

 

“엄마, 사랑해.”

 

상우는 제대 후에도 지연을 볼 때마다 표현했다. 그토록 사랑한다고 말하던 아이가 왜 그랬을까. 지연은 그 질문만 붙잡고 울었다. 평소 마시지 못하던 술에도 손을 댔다. 지연은 매일 밤 혼자 소주를 마시고, 토하고, 잠들었다. 가족을 피해 밤 열한 시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 새벽 두세 시까지 혼자 울었다. 남편은 “나도 참고 있으니 너도 참으라”고만 했다. 주변의 시선에 쫓기듯 가족은 얼마 뒤 개포동을 떠나 대치동으로 이사했다.

 

답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심리부검이라는 말을 들은 건 상우가 떠나고 2~3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자살로 세상을 떠난 이의 가족이 전문가 면담을 통해 고인의 마지막 시간을 되짚는 절차다. 통상 사별한 지 3년 이내에 진행하는 것이 권고된다. 지연은 망설였다. 혹시 아들이 엄마를 원망했을까. 분노가 있었을까. 그 답을 듣는 일이 두려웠다. 2022년 지연은 면담실에 앉았다. 상우가 떠난 지 9년이 지난 뒤였다.

 

면담자의 질문이 이어지는 동안, 지연은 자신이 보지 못했던 아들의 시간을 하나씩 들여다봤다. 학교, 군대, 복학하지 않은 뒤의 방, 아들의 망설임이 그제야 보였다. 결국 남은 건 미안함이었다. 그런데도 마지막까지 이해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그렇게 자주 하던 아들이 왜, 혼자 그 먼 바다까지 갔는지.

 

상우가 떠난 지 10년, 기일과 생일이 모두 있는 3월이었다. 지연은 그리운 마음에 아들의 글씨라도 만져 보고 싶어 상우 방에 있던 유품을 꺼냈다. 옷장 구석에는 제대 기념으로 지연이 맞춰준 상우의 양복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노트 사이에 경찰병원 진료증이 눈에 들어왔다. 앞면에는 안과, 뒷면에는 정신건강의학과라고 쓰여 있었다. 손이 떨렸다. 타인의 눈에는 보였던 것이, 엄마의 눈에만 보이지 않았다.

 

문득 제대하고 몇 달이 지나 부대 선임이라는 사람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와 “상우는 잘 지내느냐”고 물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요즘 군대가 참 좋아져서 제대한 사람도 이렇게 신경 써 주는구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전화의 의미를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육군이 아니라 의경을 택했느냐고 물었을 때, 상우는 “집 떠나기 싫어서”라고 대답했다. 지연은 뒤늦게 그 말의 다른 뜻을 읽었다. 집 가까이 있어야만 버틸 수 있는 아이였다는 것을. 아들의 우울증을 알고 나자 원망과 배신감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더 큰 죄책감이 들어앉았다. 지연은 “이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저 표현하지 않았을 뿐인데, 엄마는 몰랐다”고 말했다.

 

상우가 떠났을 때, 동생 경우는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열세 살이었다. 상우는 동생의 실내화를 직접 빨아줬고, 의경 시절 순찰을 하다가도 동생 학교 앞까지 가서 얼굴을 비치던 형이었다.

 

경우가 형의 죽음을 들은 건 중학교 입학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경우는 교실에 앉아 있어도 친구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입만 벙긋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유리창 너머로 형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학교 상담 선생님이 경우를 불렀다. 점심시간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매뉴얼에 따라 질문을 이어갔다. ‘자살 생각이 있느냐, 형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경우는 형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눈물을 쏟았다. 감정을 수습하기도 전에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장소를 옮겼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비슷한 질문의 반복, 이해와 공감이 없는 상담은 경우의 마음을 닫게 만들었다.

 

“앞으로 누구한테도 형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경우는 집에서 소리치듯 외쳤다. 초등학생 시절 영재반에 들고, 반장을 도맡았던 경우는 이후 6년을 ‘엎드린 아이’로 보냈다.

 

집 안에는 다정한 말소리가 끊겼다. 우울함에 잠긴 엄마, 말수가 줄어든 아빠, 방으로 숨어드는 둘째, 셋은 집에 들어오면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거실에는 주인 없는 텔레비전 소리만 가득했다.

 

경우는 스무 살이 되던 해, 엄마에게 말했다. “공부하지 않았으니 대학은 못 갈 것 같아. 하지만 글쓰기는 재미있으니 작가가 돼 형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보고 싶어.” 그러나 무기력이 소설보다 먼저 찾아왔다. 집에서는 문을 걸어 잠그고 게임에만 몰두했다.

 

은둔이 이어지던 어느 날, 경우가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인천에 가서 바다를 보고 싶어.”

 

지연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결국 신용카드를 쥐여 주며, 안전한 곳에서 자고, 끼니를 거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담담한 듯 보냈지만, 돌아서자마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전화를 걸고, 받지 않으면 카톡을 남겼다. 하루 이틀 있다 온다던 경우는 부산까지 갔다가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지연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알았다. 실은 경우도 그때 죽으려고 떠났다는 것을. 마지막 순간, 형을 잃고 힘들어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살아 있는 동안은 견디겠다”고 했다.

 

그 뒤로 경우가 방문을 잠그면 지연은 문을 따고 들어간다. 종일 게임을 하는 아들 앞에 밥을 갖다 놓으며 말한다. “엄마는 네 뒤꿈치만 봐도 돼.” 경우도 엄마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면 안방 문을 벌컥 열었다. 가족이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시댁에서 늘 ‘상우 엄마’로 불리던 지연은 어느새 ‘경우 엄마’가 되어 있었다. 가까운 친구는 “경우를 봐서라도 힘을 내라”고 여러 번 말했다. 배려인 줄은 알았다. 그러나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상우가 떠나고 1년 반쯤 흘렀을 무렵이었다. 지연은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자살 유족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조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다 필요 없다고 밀어냈다. 그러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 속에 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닿았다.

 

어느 화요일 오후 7시 신논현역 인근의 한 스터디 카페. 서울시 단위 자살 유족 자조모임 ‘자작나무’ 월례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지연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작은 회의 공간에 처음 보는 성인 열다섯 명이 둘러앉아 있었다. 이십 대부터 칠십 대까지 연령도 다양했다.

 

이들이 하나씩 털어놓는 저마다의 사연을 들으면서 지연은 처음으로 위로라는 감정을 느꼈다.

 

지연은 그제야 묻어 두었던 아들 이야기를 꺼냈다. 자전거를 무서워하는 엄마를 2인용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여의나루를 달렸던 상우. 못 타겠다고 버티는 엄마에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무슨 걱정이야. 내가 있는데.” 자조모임은 지연이 상우 이야기를 편하게 꺼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지연은 한발 더 나아가 동료지원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아픔을 겪은 유족이, 새로 유족이 된 이들의 첫걸음에 함께 서는 역할이다. 찾아오는 유족들의 질문에는 경험자가 아니면 답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고인의 유품을 버려야 할까, 간직해야 할까. 지연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상우의 양복을 정리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정답은 없어요. 마음이 괜찮을 때 하면 되는 일이에요.”

 

2023년 봄, 지연은 한국생명의전화 전화상담 봉사자가 됐다. 일부러 사람들이 기피하는 심야 시간대를 택했다. 수화기 너머 자살 시도자들의 목소리가, 상우의 또 다른 목소리처럼 들렸다.

 

자정을 넘긴 시각, 20대 여성이 울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놓았다. 아버지의 외도, 그로 인한 엄마의 스트레스, 유독 자신에게만 쏟아지는 짜증. 지연은 엄마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너한테 의지하고 있는 거야. 너를 친구로 보는 건데, 그걸 몰라주니까 투정을 부리고 있는 거야.” 수화기 너머 여성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엄마가 자기를 미워하는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전화를 끊으며 여성이 말했다. “저도 선생님처럼 이런 일을 하고 싶어요.”

 

자살예방센터에서 강연하기 시작하면서, 지연은 유족 프로그램이 정작 유족에게 닿지 않는 구조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지연이 여러 지역에서 목격한 자조모임은 대개 평일 오후에 열렸다. 생업이 있는 유족은 참여할 수 없는 시간대였다.

 

지연 한 사람의 관찰만은 아니었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강남·서초·동작·관악·성북구 5개 구는 자조모임 자체가 없다. 모임이 운영되는 나머지 20개 자치구 중에서도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열리는 곳은 양천·송파구 등 8곳에 그친다.

 

제도 바깥에 놓인 유족은 적지 않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은 자살 사망자 한 명당 5명에서 10명의 유족이 남는다고 추산한다. 2024년 자살 사망자는 1만4872명. 이 비율을 적용하면, 한 해에만 최대 14만명의 유족이 남겨진다.

 

지연은 2024년 여름, 서울에서 열린 청소년 대상 자살예방 토론회를 방청한 적이 있었다. 유명 강사가 아이들 앞에 섰다. 그는 자살한 이들의 원인을 태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가족 탓으로 돌렸다. “자살하는 사람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아느냐. 뱃속에서부터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청중석에 앉아 있던 지연은 강사의 한마디에 상우를 키운 23년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강의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주최 측에 따지듯 물었지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가 알고 있는 자살은 달랐다. “그 사람들은 삶이 싫어서 죽은 게 아니에요. 발버둥을 쳤는데, 살지 못해서 죽음에 잡아먹힌 거예요.”

 

손지연(왼쪽) 자작나무 대표가 4월1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공원에서 배주현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손지연(왼쪽) 자작나무 대표가 4월1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공원에서 배주현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올해 3월, 지연은 출범 18년을 맞은 자살 유족 자조모임 ‘자작나무’의 대표가 됐다. 자조모임의 침묵, 심야 상담실의 울음, 강연장의 서러움이 지연을 그 자리로 떠밀었다. 그는 자치구의 자조모임 운영 시간을 바꾸고, 유족의 언어로 정책을 말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뒤에는 경우가 있었다. 오랜 세월 두 아들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예순셋의 지연은 컴퓨터로 문서 한 장 작성하는 것조차 버겁다. 그런 엄마가 아들에게 물어가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모습을 보여주면, 방 안에 갇힌 경우도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얻지 않을까. 지연의 바람이자 기도였다.

 

대표가 되고 한 달이 흐른 4월24일 오전 10시 서울역. 자주색 후드 점퍼에 검정 바지를 입은 지연이 대절 버스에 올랐다. 1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곳은 경기 양평의 한 연수원. 1박2일 ‘자작나무 우리 함께 봄나들이’ 캠프였다. 자살 유족 40여명이 함께했다.

 

점심을 마친 오후 1시, 지연이 유족들 앞에 섰다. 짧은 인사말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단어 유추 게임 같은 레크리에이션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함께 웃었다. 강가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천천히 이야기를 풀었다. 평소 웃는 것조차 죄스러워하던 이들의 표정이, 잠시 풀리는 날이었다.

 

캠프 한 달 전이었다. 아들의 기일에서 열흘 지난 3월16일, 손지연 자작나무 대표를 대치동의 한 스터디 카페에서 만났다. 4년 전 그가 심리부검 면담을 했던 바로 그 회의실이었다. 창문이 없는 실내에서 손 대표는 담담하게 말했다.

 

“자살 유족에게 회복이란 없어요. 새로운 삶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뿐이에요.”

 

인터뷰를 마친 손 대표가 상가 문을 나섰다. 봄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탐사보도1팀 =조병욱 팀장, 배주현·정세진 기자

사진: 유희태 기자, 편집: 최미숙 기자

미술: 윤대영 기자

 

자살예방법은 자살 위험에 노출된 국민에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를 보장하고, 자살 위험이 높은 사람을 발견한 국민에게는 구조에 나설 의무를 지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는 자살의 사전예방과 사후대응 정책을 수립·시행할 책무를 부과한다. 취재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은 그 권리와 책무 사이의 공백이었다. 여기에 공감한 유족이 용기를 내 그 공백을 증언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손지연 자작나무 대표와 두 아들 선상우·경우씨의 이름은 실명이다. 자살 유족은 통상 가명을 사용하지만, 손 대표는 유족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바뀌기를 바라며 실명 사용에 동의했다. 동생 경우씨도 기사 원고를 읽고 동의했다. <편집자주>

 

※본 시리즈 전 회차와 인터렉티브 기사는 세계일보 홈페이지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47;&#47;segye.com&#47;investigative&#47;suicide-prevention)
※본 시리즈 전 회차와 인터렉티브 기사는 세계일보 홈페이지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segye.com/investigative/suicide-prevention)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또는 자살예방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자살예방 보도준칙 4.0을 준수하였습니다.

오피니언

포토

박은빈 '미소가 원더풀'
  • 박은빈 '미소가 원더풀'
  • 아이유 '대군부인의 우아한 볼콕'
  • 아이브 리즈 '역시 여자의 악마'
  • 장원영, 화사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