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참신한 아이디어 채택해 ‘신선’
공공기관 경직된 이미지 벗고 PR 새 영역 구축
요즘 기업들은 더 이상 제품의 기능이나 가격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 안으로 소비자를 초대하는 방식이 새로운 마케팅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세계관 마케팅’이다. 세계관 마케팅은 브랜드와 제품을 하나의 서사 구조 속에 배치해 소비자가 그 세계의 일부가 된 듯한 경험을 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를 넘어, 이야기와 캐릭터, 설정을 함께 소비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콘텐츠 중심의 소비 성향을 보이는 MZ세대에게 효과적인 전략으로 평가돼 기업에서는 젊은 세대와의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도입되고 있다.
“훈민정음으로 온 백성의 소통을 열었고, 붓을 들어 조선 최고의 예술을 펼쳤고, 열두 척의 배로 나라를 지켰지만, 현실은 우리를 외면하는구나.”
이러한 추세 속에서 공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조폐공사가 세계관 마케팅을 도입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조폐공사는 최근 스마트폰 하나로 현금 없는 세상에서 잊혀가던 화폐 속 인물 세종대왕과 신사임당, 이순신 장군이 조폐공사 세계관 마케팅 ‘조팸스(JOFAMS)’를 구축했다고 발표했다.
우리 화폐 속의 세종대왕과 신사임당, 이순신 장군 등 위인이 잊혀 가고 있는 점을 감안해 화폐 속 인물들이 디지털 시대를 맞아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스토리라인 ‘원니버스(Wonniverse)’ 세계관을 도입했다. 이번에 공개된 캐릭터 3종은 화폐 속 인물을 영혼 형태로 구현하여 신비로움을 강조했다. 각 캐릭터는 한국조폐공사의 주요 사업 영역과 연결되어 전문성을 발휘할 예정이다. 세종대왕을 모티브로 한 ‘훈민’은 문화사업, 이순신 장군에서 착안한 ‘순식’은 메달 및 주화 사업, 신사임당을 바탕으로 한 ‘다임’은 보안인쇄 사업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활약하게 된다.
제품이 아닌 ‘이야기’를 파는 시대적 흐름에서 기업에 이어 공공기관에서도 브랜드에 서사를 입히며 국민과 접점을 넓히기 시작한 것이다. 조폐공사는 최근 소비자들이 제품에 담긴 스토리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만큼, 홈페이지와 쇼핑몰 콘텐츠는 물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널을 통해 캐릭터가 공사의 제품과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하며 소비자와의 소통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번 조폐공사 세계관 마케팅 프로젝트는 특히 조폐공사의 업무 특성을 연구해온 국민대 학생들의 제안으로 이뤄져 신선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민대 권리아(글로벌커뮤니케이션영어전공 4학년)씨는 “조폐공사는 세계관 마케팅을 적용하기에 적합한 요소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고 여겼다. 화폐 인물, 역사적 배경, 보안인쇄 기술, 화폐 디자인 등은 모두 스토리화가 가능한 소재이며, 이를 캐릭터와 세계관으로 확장할 경우 젊은 세대에게 흥미로운 콘텐츠로 전달될 수 있다. 특히 화폐라는 상징적 소재는 가치, 역사, 문화적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어 세계관 구축에 유리하며, 이를 활용한 콘텐츠는 브랜드 인지도와 공공기관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세계관 마케팅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을 지도한 국민대 미디어광고학부 김성수 교수는 “화폐 속 위인들의 역사적 서사와 예술적 미학을 재미와 스토리로 풀어낸 결과물”이라며 “조폐공사가 가진 문화적 자원을 바탕으로 세계관 마케팅을 공공 분야에서 사실상 처음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서 공공 PR의 새로운 유형을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주요 기업은 이미 세계관 마케팅을 도입해 효과를 제대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빙그레의 ‘빙그레 왕국’ 세계관이다. 빙그레는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라는 왕자 캐릭터를 중심으로 바나나맛우유, 투게더, 메로나 등 자사 제품을 왕국의 인물로 설정하고,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한 가상의 서사를 구성했다. 이 세계관은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장됐고, 캐릭터 간 관계 설정과 이야기 전개를 통해 소비자들의 몰입을 유도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이 댓글과 2차 창작을 통해 자발적으로 세계관에 참여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브랜드 계정 팔로워 증가와 높은 콘텐츠 확산 효과로 이어졌다.
또 다른 사례는 롯데칠성음료의 소주 브랜드 새로의 세계관 캐릭터 ‘새로구미’다. 단순한 마스코트가 아닌 하나의 세계관 속 인물로 설정되어 콘텐츠 중심으로 확장된 사례다. 새로구미는 제품 홍보 중심이 아닌 캐릭터 중심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작하며 소비자와의 친밀도를 높였다. 일상적인 상황을 활용한 콘텐츠, 밈 형태의 이미지, SNS 중심의 짧은 스토리 등이 반복적으로 게시되면서 캐릭터 자체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고 있다. 광고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기보다 캐릭터에 대한 관심을 먼저 형성한 뒤 브랜드로 연결하는 세계관 마케팅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SM엔터테인먼트는 ‘SMCU(SM Culture Universe)’라는 통합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 중심 공간을 ‘광야(KWANGYA)’라는 가상의 영역으로 설정했다. 광야는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한 디지털 공간이자, 여러 아티스트의 스토리가 연결되는 핵심 무대로 활용된다. 이 세계관은 단일 그룹이 아닌 SM 소속 아티스트 전체를 하나의 서사로 묶는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콘텐츠·뮤직비디오·공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걸그룹 aespa는 이 세계관의 핵심 서사를 담당하는 그룹으로 등장한다. aespa는 현실의 멤버와 데이터 기반 아바타 ‘æ’가 공존하는 설정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연결되는 가상 공간과 사건들이 광야에서 전개된다. 세계관 속에서 악역 ‘블랙맘바’가 현실과 가상 세계의 연결을 방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aespa가 광야로 이동하는 스토리가 주요 서사로 구성돼 있다.
광야 세계관의 특징은 하나의 그룹이 아닌 여러 아티스트를 동일한 서사 안에 연결한다는 점이. SM엔터테인먼트는 EXO의 초능력 설정, NCT의 다차원 이동 개념, aespa의 아바타 시스템 등을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통합하며, 이를 통해 ‘공유 유니버스’ 형태의 콘텐츠 전략을 구축했다. 이러한 방식은 영화의 마블 유니버스처럼 다양한 IP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는 전략으로 평가되며, 음악뿐 아니라 영상 콘텐츠, 공연, 브랜드 협업까지 확장 가능한 구조로 설계됐다. 이 세계관 전략은 단순한 콘셉트 수준을 넘어 팬들이 스토리를 해석하고 확장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세계관 마케팅의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팬들은 뮤직비디오와 가사, 티저 영상 속 단서를 분석하며 세계관을 해석하고 공유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콘텐츠 확산과 팬덤 참여로 이어진다.
조폐공사 성창훈 사장은 공공기관 첫 세계관 마케팅 도입과 관련해 “화폐는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국가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문화자산이나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결제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되면서 지갑 속 지폐와 동전은 낯선 물건이 되어가고 있다”며 ‘조팸스’ 캐릭터 3종 스토리를 통해 세종대왕의 혁신 정신, 신사임당의 예술적 안목, 이순신 장군의 도전 정신이 오늘의 MZ세대와 만나 살아 숨 쉬게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공공기관의 경직된 이미지를 벗고 국민에게 영감을 주는 ‘K-컬처 문화 콘텐츠 기업'으로 거듭나는 조폐공사의 도전을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조폐공사 사례를 두고 “세계관 마케팅이 더는 민간 기업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공공기관 역시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해진 환경에서, 딱딱한 정보 전달을 넘어 감성과 재미를 결합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제품의 기능을 넘어 경험과 의미를 소비하는 시대, 기업은 물론 공공기관까지도 브랜드에 서사를 입히며 소비자는 물론 국민과 접점을 넓히는 세계관 마케팅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이번 조폐공사의 시도는 공공기관이 어떻게 시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향후 유사한 움직임이 더욱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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