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여파로 변동성이 높아진 코스피에 삼성전자가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삼성전자는 ‘분기 매출 100조원·영업이익 50조원’ 시대를 열며 장중 ‘20만전자’를 터치했으며, 반도체 가치사슬에 있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들도 함께 들썩였다.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중동사태로 한국 경제 전반의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경고가 나왔다. 국제유가 급등과 공급망 불안이 물가와 소비, 투자, 수출 전반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은행의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은 4%대로 치솟아 21년 만에 최고 수준이 됐고, 카드론 잔액도 역대 최대 수준에 가까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삼전 장중 ‘20만전자’ 탈환…소부장도 웃었다
7일 오전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 133조원,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잠정)을 기록했다고 밝히자 시장과 주주들은 환호했다.
키움증권은 “이날 발표한 삼성전자 잠정 실적은 시장 컨센서스와 전망치 상단을 큰 폭으로 상회하는 슈퍼 서프라이즈”라고 평가했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전일보다 4.61% 오른 20만2000원에 출발하며 20만전자를 탈환했다. 장중 20만9500원까지 오른 주가는 이후 소폭 내려앉아 전일 대비 1.8% 상승한 19만6500원에 마감했다. 주가가 오르면서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1163조2089억원을 찍으며 6년 만에 코스피 전체 시총 비중(25.7%) 최고치를 차지했다.
20만전자 유지엔 실패했지만 증권가는 계속해서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올려 잡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30만원으로 유지하며 “연일 주가 변동성이 높지만 중장기적으로 삼성전자 비중 확대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실적 상승 추세는 올해 2분기에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번 역대급 실적은 고스란히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관련 종목들의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날 △리노공업(3.98%) △원익IPS(1.69%) △이오테크닉스(4.30%) 등 주요 반도체 소부장 종목들은 강세를 보이며 상승 마감했다.
이제 시장은 SK하이닉스로 눈을 돌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달 말 1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SK하이닉스가 1분기 매출액 47조원, 영업이익 32조원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래에셋증권은 1분기 매출액 54조원, 영억이입 39조원을 내다보며 시장 기대치를 상회할 것으로 분석했다. 신한투자증권은 매출액 50조원, 영업이익 36조원을 전망했다.
SK하이닉스 실적 기대감이 올라가며 이날 주가는 전일 대비 3.4% 상승한 91만6000원에 마감했다. 증권가의 목표주가도 중동전쟁 등 외부변수와는 상관없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주요 증권사(△신한투자증권 150만원 △미래에셋증권 154만원 △하나증권 160만원 △KB증권 170만원)들은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150만~170만원 사이로 제시했다.
다만 중동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삼성전자발 호재를 일부 희석시켰다. 이날 코스피는 전장 대비 101.86포인트(1.87%) 오른 5552.19로 출발해 장 초반 5594.90까지 올랐으나 이후 상승폭을 줄여 5494.78에 마감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4090억원 순매수하며 지수를 끌어올렸다. 반면 개인과 기관은 각각 3427억원, 4141억원 매도 우위를 보이며 지수 상단을 제한했다.
◆유가·공급망 충격파…韓, 물가·소비·투자·수출 전방위 경고음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날 ‘KDI 경제동향 4월호’에서 “3월 들어 중동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으로 경기 하방 위험이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KDI는 중동사태에 관해 “대외 불확실성 확대”,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이번에는 “경기 하방 위험 확대”를 직접적으로 명시하며 위험 신호의 수위를 높였다.
아직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의 성장세가 유지되고, 내수도 완만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KDI의 진단이다. 수출의 경우 중동사태 이후에도 인공지능(AI) 관련 수요가 지속되며 높은 증가세를 이어갔다. 3월에는 반도체(이하 전년 대비, 140.5%)와 컴퓨터(176.6%)를 중심으로 일평균 수출액이 41.9% 증가했다. 내수 지표인 소매판매액은 1∼2월 평균이 2.7% 증가했고, 이 기간 서비스업 생산도 3.3% 개선됐다. 설비투자 역시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1∼2월 평균 9.3% 성장했다. 건설업의 부진은 지속되고 있지만, 감소세는 완화하는 있다는 진단이다.
다만 3월 들어 소비자물가가 반등하기 시작하며 산업 전반에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2%로 물가안정목표치(2.0%)에 근접한 수준이지만, 중동사태의 영향이 파급되면서 향후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것으로 KDI는 내다봤다.
이미 소비심리는 악화하고 있다. 3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7.0으로 여전히 기준치(100)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월(112.1)보다 5.1포인트 떨어져 비상계엄 이후 1년3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보였다. 설비투자 역시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회복세가 제약될 것으로 전망했고, 건설의 경우 중동사태에 따른 비용 상승이 하방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를 지탱하고 있는 수출 역시 수요가 축소될 경우 여건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미 우리 국민의 경제심리는 11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위축됐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월간 뉴스심리지수는 101.08로, 전월(116.13)보다 15.05포인트 하락했다. 미국 관세 충격이 있던 지난해 4월(97.67)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달 뉴스심리지수 하락 폭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가 고조됐던 2022년 6월(-19.39포인트) 이후 3년9개월 만에 가장 컸다. 뉴스심리지수는 한은이 경제 분야 언론기사에 나타난 경제 심리를 지수화한 것이다.
◆은행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 21년 만에 ‘최고’
한국은행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1월 국내 일반은행의 신용카드 대출 연체율은 4.1%로 지난해 말(3.2%)보다 0.9%포인트 상승했다. 2002∼2003년 카드대란 이후 연체율이 정점에 달했던 2005년 5월(5.0%) 이후 20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신용카드 대출은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으로 나뉘며 서민의 급전 창구로 인식된다.
카드 대출 연체율은 2005년 이후 대체로 1~2% 선을 유지하다 2024년 3%대로 상승했고, 지난해 5월 3.8% 수준까지 오르더니 올 들어 4%대를 넘어섰다. 높아진 은행권 대출 문턱에 저축은행에서도 돈을 빌리기 어려워진 차주들이 고금리를 감수하며 카드 대출까지 당겨쓴 뒤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강화로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765조7290억원으로 전월 대비 1364억원 감소했고,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도 지난 2월 가계대출이 1000억원 줄어 감소세로 전환했다.
반면 급전 수요에 더해 빚 내서 투자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카드론 잔액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9개 카드사(롯데·BC·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NH농협)의 2월 말 카드론 잔액은 42조9022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3171억원 늘어나며 역대 최대(2025년 2월 42조9888억원) 수준에 근접했다.
지난해부터 감소세를 보이던 카드론 대환대출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카드론 대환대출은 기존 카드론 상환을 위해 다시 카드론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빚을 빚으로 갚는 돌려막기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8개 전업 카드사의 카드론 대환대출 잔액은 지난해 9월 1조3214억원에서 올해 2월 1조5001억원으로 6개월 만에 약 13.5% 증가했다.
카드사들은 지난해 2월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로 기본 수입원이 줄어든 데 이어 중동사태 이후 더욱 커진 자금 조달 부담, 카드론 잔액 증가와 연체율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건전성 악화 적신호까지 겹악재를 맞고 있다. 대출이 급한 중저신용자들이 풍선효과에 따라 카드론으로 몰리며 연체가 늘면 카드사는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고, 이는 당기순이익 감소로 직결된다. 이는 카드 대출 한도 감소나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연체가 더 폭발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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