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는 가정의 필수품인 ‘일회용 플라스틱 물약통’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중동 사태로 석유화학 원재료 공급이 흔들리면서, 소아과 인근 약국마다 약통을 구하지 못해 지급 수량을 제한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2일 오전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 거주하는 김모(42)씨는 딸의 소아과 진료를 마친 뒤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평소 여유 있게 챙겨주던 약국에서 “중동 사태 이후 플라스틱 약통 수급이 어려워져 1개만 드릴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아이 감기약은 계속 먹여야 하는데 약통이 부족할까 봐 걱정된다”며 “전쟁 여파가 여기까지 미칠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 나프타 가동률 절반 뚝… 현장은 사실상 ‘약통 배급제’
일상의 소중한 소모품인 약통이 귀해진 배경에는 국제 정세 불안에 따른 ‘나프타’ 부족 사태가 있다.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률이 50%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플라스틱 원료 공급이 사실상 배급제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공급망 붕괴 현상은 의료 현장 최일선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소아과 인근 약국들은 약통 지급 수량을 1인당 1개로 엄격히 제한하는 등 고육지책을 내놨다. 평소 50원쯤에 유상으로 추가 구매가 가능했던 곳들조차 당분간 외부 판매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약국 내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단골 환자들에게 줄 물량조차 확보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 제조업체·쇼핑몰도 ‘비명’… 주사기 등 의료용품 전반 확산
제조업계와 온라인 유통 시장의 상황은 더 처참하다. 한 의료용 플라스틱 제조업체 관계자는 “나프타분해시설 가동률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원료를 배급받듯 가져오고 있다”며 “원료가 턱없이 부족해 공장을 돌려도 주문 물량의 절반도 못 맞추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의료소모품 전문 온라인 쇼핑몰들 역시 전날 긴급 공지문을 띄웠다. 국제 정세 불안에 따른 원부자재 가격 상승과 유가 폭등으로 일부 제품의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다. 경기도 김포의 한 플라스틱 업체는 원료 수급이 정상화될 때까지 약통 판매를 일시 중단한다고 안내하며 사실상 개별 판매 포기를 선언했다.
문제는 약통뿐만이 아니다. 약 포장지부터 라텍스 장갑, 주사기 등 의료 필수 소모품 전반이 일제히 영향을 받고 있다. 대학병원 역시 수액 백, 변 봉투, 의료용 가운 등 의료용품 전반에서 공급 불안을 체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정부 수급 점검 회의… 공급망 안정화가 관건
정부는 2일 업종별 석유화학 제품 수급 상황을 점검하는 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 의료와 생활필수품 등 중요 품목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면밀히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의료 소모품 수급 불안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당분간은 가정 내에서도 일회용 약통을 깨끗이 세척해 재사용하는 등 효율적인 관리가 필요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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