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비서방 실용외교 ‘이중 트랙’
정책 자율성 무기 우회협력 가능
이란 항구개발 인도 참여 대표적
글로벌사우스기업·北 법인 결합 땐
원산 트럼프타워 구상 먼 일 아냐
“외화 목마른 北, 현실적인 선택지”
자원·표 대결 영향력 갈수록 증대
韓, 남미 FTA 등 협력 확대 속도
“외교 레버리지로 남북 진전돼야”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비서구권, 개발도상국 또는 제3세계 국가)가 국제정치의 변수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이란 간 전쟁 등으로 서방, 반서방 진영의 대립이 뚜렷해짐에 따라 비동맹·실용 외교를 바탕으로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는 이들의 향배가 세계정세를 가늠하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한반도에도 적지 않은 함의를 던진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글로벌사우스는 제재와 대화가 공존하는 완충지대이자 협상 재개의 외교적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중재자로 주목받는다. 에너지·자원과 집단적 표심을 기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서방 중심 질서의 균열 속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점 역시 글로벌사우스의 위상을 높인다는 분석이다.
◆외교적 유연성, ‘중재자’ 글로벌사우스
지난해 8월 미국 워싱턴을 찾아 첫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이재명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에 평화를 원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며 미국을 고리로 남북한 교류·협력의 물꼬가 트이길 기대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의미심장하다. 이 대통령은 “북한에 트럼프타워를 짓게 되길 농담처럼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한에 ‘트럼프타워’를 짓는다는 건 상징적 제안에 가까운 게 현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핵무기 개발에 따른 경제제재 아래서도 경제협력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환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는 서방국, 반서방국을 동시에 상대하는 ‘이중 트랙’을 구사하며 상대적으로 큰 ‘외교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글로벌사우스를 매개로 한 우회적 협력, 단계적 교류의 가능성에 맞닿아 있어 주목된다. 핵무기 개발에 따라 북한에 적용되고 있는 경제제재에 직접적으로 얽매이지 않거나, 일정 수준의 정책 자율성을 확보한 국가들이 북한에 투자를 하고, 이것이 본격적인 교류, 협의 확대로 이어지는 것도 기대해볼 만하다.
제재가 유연하게 작동할 때 제재 대상국이 외부와 협력하고, 보다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 사례가 미국과의 핵협상이 진행될 무렵의 이란이다.
이란 남동부 차바하르 항구 개발 사업에는 글로벌사우스의 핵심으로 꼽히는 인도가 참여했다. 인도는 2016년 차바하르 사업 참여를 시작했는데 미국은 2018년 이란에 대한 제재를 복원했지만 아프가니스탄 지원과 인도와의 협력 필요성을 이유로 차바하르 항구 인프라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했다. 이는 제재가 외교적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프랑스 아코르 그룹이 운영하는 테헤란 소재 노보텔 호텔은 2015년 이란핵합의 체결 이후 서방 자본이 이란 시장에 진입한 대표적 사례다. 당시 세컨더리 제재가 대폭 완화된 상황에서 아코르는 직접 투자 대신 현지 기업과의 관리·운영 계약 방식을 택해 리스크를 분산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핵합의에서 탈퇴하면서, 노보텔 테헤란 호텔은 ‘렉산’으로 이름을 바꾼 채 운영되고 있다.
짧지만 2016∼2018년 시기는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까지 대상으로 하는 세컨더리 제재(2차 제재)가 완화될 경우 추진 가능한 사업 모델을 보여준 압축된 시기였다. 김혁 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는 “미국 보잉은 이란핵합의 이후인 2016년 이란 에어(Iran Air)와 166억달러 규모의 항공기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며 “당시 보잉은 이란 키시섬 내 부지 확보와 부품 공장 설립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북한판 트럼프타워’, 가능할까
이란이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제재 완화, 복원이 반복되며 특정 사업에 대한 예외가 인정돼 왔다는 점에서 포괄적이고 강도 높은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과 차이가 분명하다. 하지만 제재 유예를 통한 제한적 프로젝트를 그려볼 여지는 있다.
이런 경우를 상정할 때 종종 거론되는 것이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에 외국 브랜드호텔을 유치하거나, 글로벌사우스의 기업과 북한 현지 법인이 결합하는 방식의 사업 모델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원산 ‘트럼프 타워’ 구상은 원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며 “특히 관광 분야는 상대적으로 제재 적용이 느슨한 영역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외화 유입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지”라고 분석했다.
원산 앞바다의 려도·신도 역시 일정 조건이 충족될 경우 외자 유치를 위한 특수경제공간으로 활용될 잠재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이란의 케슘섬과 키시섬을 자유무역·관광 특구로 지정해 비자 완화와 세제 혜택, 규제 완화를 통해 외자를 끌어들인 이란 사례와 비교될 수 있다. 북한 역시 관광을 통한 외화 확보가 절실한 상황인 만큼, 섬 지역을 활용한 ‘부분 개방’ 모델을 검토할 유인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다만 북한과의 합작투자를 제한하는 대북 제재가 일정 부분 완화돼야 한다는 전제는 따른다.
지난해 평양을 방문했던 리난 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 30일 서울에서 열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콘퍼런스에서 “북한의 관광 산업과 정보 산업 발전은 외부 자본과 기술, 관광객 유입과 분리될 수 없다”며 “향후 5년간 북한의 대외 경제 관계는 제한적 다변화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표와 자원’, 강화되는 국제적 위상
비동맹·실용 외교를 앞세운 글로벌사우스는 서방, 반서방을 넘나들며 국제질서 흐름에 영향을 주는 위상을 키워가고 있다. 이런 상황은 국제질서의 규칙 자체를 흔들기도 한다. 이는 한반도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 응원을 이끌어내는 데 글로벌사우스가 결정적인 지렛대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편, 국제통화기금(IMF) 지분 구조 조정 논의에서 인도와 브라질, 나이지리아 등이 대표성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글로벌사우스 위상 강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국가는 유엔, IMF의 현재 구조가 경제 규모, 인구 비중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글로벌사우스 내부에서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 지역 대표성 강화, 순환 의석 확대 등을 포함한 다양한 개편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단순한 제도 개선을 넘어 기존 강대국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국제기구에서 작동하는 ‘표의 논리’라는 측면에서도 글로벌사우스의 영향력 확대 여지는 적지 않다. 카리브해 연안의 소규모 국가들처럼 인구가 100만명에 못 미치더라도 유엔총회에서는 국가별로 동일하게 한 표를 행사한다. 국가 규모와 무관하게 집단적 표심이 형성될 경우 상당한 외교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하마, 바베이도스, 도미니카 등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은 집단 표심을 형성하는 경향이 강하다. 주요 7개국(G7) 등 선진국들이 원조, 인프라 투자, 기후 대응 협력 등을 매개로 글로벌사우스와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것도 이러한 ‘표의 힘’을 의식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자원 변수까지 더하면 글로벌사우스의 중요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남미, 카리브해 국가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가이아나와 수리남에서는 해상 유전이 잇따라 발견되며 신흥 산유국으로 부상하고 있고, 트리니다드토바고 역시 기존 가스 생산에 더해 심해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가이아나는 단기간 내 원유 생산량이 급증하며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존재감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의 지난달 국빈 방한은 글로벌사우스를 바라보는 이재명정부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브라질은 글로벌사우스를 대표하는 국가다. 이 대통령은 ‘소년공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강조하며 룰라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신뢰, 우정 구축에 공을 들였고,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시키기로 했다. 두 정상은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의 자유무역협정 협력 필요성에도 공감했다. 메르코수르는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우루과이가 참여하는 남미 최대 경제 블록으로, 식량·에너지·광물 자원을 기반으로 글로벌 공급망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교가에서는 글로벌사우스와의 협력을 경제·자원 확보 차원을 넘어 외교적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반도 문제를 포함한 주요 외교 현안에서 글로벌사우스와의 연계 여부가 정책 성과를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반세기 만의 유인 달 탐사](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02/128/20260402520494.jpg
)
![[기자가만난세상] 노동신문 ‘혈세 논쟁’을 끝내자](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02/128/20260402520485.jpg
)
![[삶과문화] 인생의 작용과 반작용](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02/128/20260402520364.jpg
)
![[박일호의미술여행] 고단한 삶을 품은 풍경화](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02/128/20260402520408.jpg
)

![‘파운데이션 장군’ 안 돼… 드라마 외모까지 규제 나선 中 [차이나우]](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04/300/20260404505998.jpg
)






![[포토] 박하선 '벚꽃 미모'](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02/300/20260402520703.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