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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의 한국인 탈무드] 신라가 놓친 ‘장보고’라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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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인재로 바꾸는 언행에 리더십도 탁월
혁신의 동력 내친 신라 조정, 패망의 길로

끝내 등을 돌렸던 라이벌이 몰락하여 찾아왔을 때, 장보고는 어떻게 그를 기꺼이 맞아들일 수 있었을까. 세종 때 편찬된 책 ‘치평요람’ 속 장보고(張保皐) 대목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한국 고대사에서 장보고만큼 학문적 연구와 대중적 관심을 함께 받은 인물도 드물다. 263편에 이르는 논저와 소설 ‘해신’, KBS 드라마를 통해 그는 끊임없이 재소환되어 왔다. 디아스포라의 상징이자 동아시아 해상 네트워크를 구축한 인물로도 평가되곤 한다. 그런데 내게 더 강하게 다가온 것은 ‘적을 인재로 바꾸는’ 그의 언행이었다. 그것은 본능을 거스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리더의 선택이기에 더욱 놀라웠다.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용맹과 기개로 보면 장보고는 정년에 미치지 못했다. 장보고는 나이로, 정년은 기예로 맞서며 끝내 서로 승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함께 당나라로 건너가 군 지휘관이 되었고, 말타기와 창쓰기에 뛰어나 감히 맞설 자가 드물었다. 이후 장보고는 귀국해 청해진대사에 올랐으나, 정년은 벼슬길에서 밀려나 중국에서 떠돌았다. 굶주림에 지친 그가 청해진을 찾아오자 장보고는 크게 환대했다. 더 나아가 신라 국왕이 시해되는 등 정국이 혼미해지자, 그에게 군사 5000을 맡기며 “그대가 아니면 이 화란을 평정할 수 없다”고 했다. 묵은 감정에 붙잡혀 외면하거나 경멸하기는커녕, 공을 세울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 대목은 중국의 시인 두목(杜牧)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 듯하다. 그는 ‘번천문집’에서 “분노를 품으면 상대의 본마음을 읽지 못하고 단점만 보게 되며, 결국 그의 재능을 놓치게 된다”고 했다. ‘성현도 주저하다가 종종 실패하는’ 이 어려운 일을 동이(東夷)의 장보고가 해냈다고 칭송하면서 두목은 곽자의를 언급했다. 당나라의 명장 곽자의는 평소 이광필과 사이가 매우 나빠서 한 상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서로 눈길을 피했다. 그런데 ‘안녹산의 난’ 발발 후 곽자의가 토벌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자 이광필은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쥔 그를 찾아갔다. 가족의 목숨만이라도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그에게 곽자의는 “지금 나라가 위태로운데 어찌 사사로운 원한을 따지겠는가”라며 그를 안심시키고, 오히려 중책을 맡겨 주었다. 두목은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논평했다. “사람의 마음에는 인의(仁義)와 잡스러운 감정[雜情 잡정]이 함께 깃들어 있다. 장보고와 곽자의 두 사람은 잡스러운 감정을 인의로 이겨내고 또 실천했기에 마침내 공을 이루었다.”

장보고 이야기를 읽으며 아쉬움도 남는다. 자신의 딸을 둘째 아내로 들이겠다는 왕의 제안을 끝내 거절하지 못한 점이다. 그의 도움으로 즉위한 새 왕의 혼인 추진에 대해 신라 귀족들은 ‘섬사람’의 딸을 차비로 들일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의 공로는 인정하면서도 중앙 권력 진입만큼은 단호히 막아선 것이다. 결국 국왕은 귀족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장보고는 자객 염장에 의해 생을 마쳤다. 흔히 염장의 인물됨을 알아보지 못한 그의 감식안을 탓하지만, 내가 보기에 정략혼이라는 ‘잡스러운 감정’이 마음을 사로잡은 순간 그는 이미 위태로워졌다.

더 안타까운 것은 신라 조정의 선택이다. 그들은 왜 ‘가장 강력한 혁신의 동력’이 될 수 있었던 그의 힘을 국가의 재생으로 이어가지 못했는가. 스스로를 새롭게 할 기회를 놓친 경주의 기득권층을 떠올리면, 문득 장자 속 한 대목이 겹쳐진다. 어떤 이가 박씨를 심어 큰 열매를 얻었으나, 너무 커서 물을 담기에는 무겁고, 쪼개어 바가지로 쓰기에는 얕아 쓸모가 없다고 여겨 끝내 부숴버렸다. 이 말을 들은 장자가 말했다. “그대는 큰 것을 쓰는 데 참으로 졸렬하다[拙於用大 졸어용대]. 어찌하여 그것으로 배를 만들어 강 위에 띄워 노닐 생각은 하지 않았는가.” 신라 조정은 장보고라는 ‘큰 그릇’을 쓰지 못했고, 끝내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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