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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데이미언 허스트 “죽음은 삶의 일부, 예술은 결국 삶에 관한 것” [김용출의 미술의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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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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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형태의 시신을 차례로 바라보다가 한동안 하나의 시신에 눈길을 빼앗겼다. 그것은 목이 잘려 나간 남자의 머리였다. 남자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얇은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공포스러웠고, 무서웠다.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1991.   연합뉴스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1991.   연합뉴스

친구를 따라 영국 리즈의 한 시체 안치소를 찾았던 열여섯 살 소년 데이미언 허스트는, 그럼에도 몸이 잘린 남성의 머리 옆에서 포즈를 취했다. 친구는 이때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주었는데, 사진 속의 허스트는 얼굴엔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이었다. “속으론 공포에 질려 있었다”고, 그는 나중에 회고했다. 허스트의 마음에 죽음이 깊게 새겨진 순간이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은 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뉴스나 통계처럼 실감 나지 않는 것으로만 존재하는 것일까. 미술가가 된 그는 이후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천착했고, 죽음을 ‘물리적’으로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의 유명 컬렉터인 찰스 사치에게서 5만 파운드의 제작비 지원과 함께 작품 의뢰를 받았다. 그는 이에 호주 어부로부터 4m의 타이거 상어를 6000파운드에 구매한 뒤 상어를 포름알데히드 수용액이 채워진 대형 유리 수조에 넣어 부패를 막고 영원히 살아있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했다. 바로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이른바 「상어」였다.

 

1991년 첫 개인전에서 오래 전 시체안치소에서 찍은 사진을 확대한 작품 「죽은 자의 머리와 함께」를 공개한 허스트는, 이듬해 사치갤러리에서 찰스 사치의 의뢰로 제작한 작품 「상어」를 일반에 공개했다.

 

금방이라도 유리를 깨고 나와 관람객을 덮칠 듯 짝 벌린 입, 쏘는 듯한 날카로운 눈, 빠른 속도로 바다 속을 가르고 나가는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 영원히 박제된 죽음의 공포....

 

「신의 사랑을 위하여」, 2007.   연합뉴스
「신의 사랑을 위하여」, 2007.   연합뉴스

작품은 죽음의 불안과 공포를 박제해 예술적 영원성으로 창조했다며 큰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진짜 상어의 사체를 재료로 사용했다며 도덕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시간이 지나서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변색되고 상어가 부패해 2006년 새 상어로 교체하는 과정에선 ‘예술 작품의 원본성은 무엇인가’라는 논쟁이 일기도 했다.

 

문제작 「상어」를 비롯해 죽음과 욕망을 강렬하게 비틀며 오랫동안 상찬과 논란의 중심에 서왔던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61)의 개인전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가 20일부터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국현 서울관 3·4·5 전시실과 개방형 전시공간 등에서 이뤄지는 이번 전시는 아시아에서 열리는 허스트의 첫 대규모 개인전으로, 10대 시절 완성한 작품부터 현대 미술 시장에 이름을 아로새긴 논란의 작품, 최근에 발표한 「벚꽃」 연작까지 40여 년에 걸친 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작품 50여점이 전시된다.

 

전시의 첫 섹션 ‘모든 질문에는 의심이 따른다’에는 허스트가 기획자이자 작가로 주목받은 초기작이 주로 소개된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 자신에게 맞는 조형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시도한 콜라주 작품들과, 첫 개인전에 출품된 10대 시절의 사진작품, 대표적 연작인 「스팟 페인팅」의 초기 버전이 소개된다. 그의 작품 세계에 일관되게 흐르는 죽음에 대한 관심과 그의 예술적 개념과 형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죽은 자의 머리와 함께」, 1991.   연합뉴스
「죽은 자의 머리와 함께」, 1991.   연합뉴스

두 번째 섹션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에선 이른바 「상어」를 비롯해 유리 진열장을 사용한 거대 설치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오랫동안 주목을 받은 작품 「상어」는 2012년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 전시한 이후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미국의 한 수집가가 소장한 작품으로, 오랜 준비를 거쳐 전시장에 나왔다. 이사빈 학예연구관은 “상어와 수조를 따로 운송해 와서 설치했는데, 물리적으로도 만만치 않았다”며 “이번 전시가 아니면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잘린 소의 머리와 파리 유충, 살충기 등을 통해 삶과 죽음의 순환을 날 것 그대로 시각화한 1990년 작품 「천년」도 전시돼 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천년」에 대해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회고전에서 이 작품을 처음 봤는데, 지금까지 봤던 현대 미술 작품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세 번째 섹션 ‘침묵의 사치’에선 과학과 종교, 예술과 복잡한 관계를 다룬 작품들이 주로 소개된다. 실제 인간의 두개골을 백금으로 주조하고 여기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가 섹션의 정중앙에서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삶의 무상함을 대비시킨 작품은 런던 화이트 큐브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 제작비로만 이미 당시 생존 작가의 작품 가운데 역대 최고가였고, 전시장 주변 블록을 한 바퀴 도는 긴 줄이 이어질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익명의 투자자 집단에 5000만 파운드(약 994억원)에 판매됐다고 알려졌지만, 허스트가 여전히 소장 중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작품 가격을 올리기 위한 ‘거짓 마케팅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아울러 수천 마리의 나비 날개를 사용해 제작한 삼면화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2008)와, 그가 1998년 런던에 오픈해 6년간 운영한 ‘약국’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을 전시장 안에 일부 재현해 놓기도 했다.

 

개방형 전시공간에는 런던에 있는 허스트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온 ‘작가의 스튜디오: 진행중인 작업들’이 전시된다. 3년째 작업 중이라는 미완성 회화 연작 「리버 페인팅」을 비롯해 미완의 미공개 회화 작품과, 붓과 페인트, 작업복과 신발, 허름한 소파 등 작가의 사유와 행위를 엿볼 수 있는 창작 공간이 생생하게 공개된다. 이와 관련,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며 “‘이렇게 유명한 작가도 기초에서 시작하고, 중간에 실수하네. 이런 사람도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겠다’ 하는 긍정적인 가능성의 메시지와 영감을 한국 관람객에게 던져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사랑의 취약성」, 2000.    연합뉴스
「사랑의 취약성」, 2000.    연합뉴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지난 18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동시대 현대 미술의 흐름을 이끌어온 국제적인 작가 허스트의 혁신적 실험과 작품들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려 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현대 사회의 가치와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의 장을 마련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소개했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현대 미술계의 ‘스타’ 혹은 ‘악동’으로 평가돼 왔다. 1965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리즈에서 성장한 그는 반항심 가득한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그림을 유일한 탈출구로 삼았다.

 

런던으로 이사해 미술을 공부했고, 골드스미스대 재학 시절인 1988년 동문들이 참여한 그룹전 ‘프리즈(Freeze)’를 기획해 주목받았다. 낡은 부두 창고를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기업 후원을 이끌어낸 이 전시는, 현대 미술의 세대교체를 주도한 ‘젊은 영국 미술가 그룹(YBA, Young British Artists)’의 시작을 알렸다.

 

곧 강렬한 작업으로도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는 죽은 소의 머리와 파리 유충을 이용한 「천년」(1990), 포름알데히드 용액 속 상어를 통해 죽음을 시각화한 「상어」(1991) 등으로 현대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뒤 1995년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 미술상인 ‘터너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돈벌이를 위한 상업적 전략이라는 악평도 뒤따랐다. 그의 작품은 수백억 원에 거래되는데, 몸값을 올리기 위해 신작을 경매장에서 직접 판매하거나 심지어 자전거래 했다는 의혹을 낳기도 했다.

 

허스트는 1987년부터 세계 각지에서 개인전을 90회 이상 개최했고, 300회가 넘는 단체전에도 참여했다. 그는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종교, 과학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탐구해 왔다. 특히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둘러싼 인간의 태도에 관심을 쏟았다. 젊은 시절에는 대규모 설치 작품들을 통해 생과 사를 보여줬다면, 최근에는 회화로 방향을 선회해 삶과 죽음의 순환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아이 같은 상태로 답을 찾는 중”이라는 그의 노래가 들려올 지도.

 

“젊어서는 무한한 삶을 살 것 같았고 그런 생각으로 작업을 했는데, 이제는 제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매일 바뀌지요. 다만 과거보다는 두려움이 덜한 것 같습니다. 머리가 희끗해지면서 그런 것 같아요.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은, 죽음의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술은 삶에 관한 것이지요. 죽음은 삶의 일부이고, 둘 중 하나만 가질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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