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여성이 안전과 위로를 찾아 친정으로 돌아오지만, 결국 다시 남편의 집으로 돌아가도록 설득되거나 압박받았다. 그녀들의 처지와 고통을 공감하면서도 사람들은 선뜻 나서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오래되고 거대한 사회 시스템과 문화가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낙인과, 소문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경제적 부담….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변호사인 바누 무슈타크(Banu Mushtaq)는 인도 카르나타카주 하산(Hassan)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이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목도했다. 법원 복도에서, 사적인 대화 속에서, 그리고 자신의 고통을 설명하려 애쓰지만 끝내 말로 다 하지 못한 채 남겨진 여성들의 침묵 속에서.
오랜 시간 마주해 온 경험들은 그의 가슴에 켜켜이 쌓여갔다. 돌아간 곳이 더 이상 자기 집처럼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완전히 안전하다고 느낄 곳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자신의 내면 한 곳에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던 기억과 감정도 보였다.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세상에서 목소리도 존엄도 설 자리가 없다는 듯한 고립감과 무력감이…. 그리하여 켜켜이 쌓인 경험과 여울진 마음은 단편소설 「하트 램프」로 피어올랐다.
“온 가족이 잠시 정지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메룬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를 아홉 달 동안 품었고 애지중지 키워 준 어머니는 ‘왔구나, 어서 들어오렴.’ 하지 않았고, 자신의 넓은 가슴에 뛰어드는 어린 딸을 그렇게 예뻐했던 아버지는 환영의 뜻으로 가벼운 미소조차 보이지 않았다. 메룬을 자랑스럽게 ‘나의 요정, 나의 천사’라고 불렀던 큰오빠도, 그녀를 대학에 보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둘째 오빠도 그녀를 반기지 않았다. 그들의 아내들은 마치 메룬이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148쪽)
자신만을 사랑하겠다는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 뒤 친정으로 돌아온 메룬이지만, 가족 어느 누구도 그녀를 환대하거나 위로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참고 견디라고 말하며 그녀를 타박했다. 그녀는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외로워졌고, 세상은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하여 그녀는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내리려 하는데.
“이 이야기는 어떤 한 사건에서 출발한 게 아닙니다. 오랜 시간 제가 마주해 온 수많은 조용한 경험들이 쌓여 만들어졌지요. 소설에 담긴 모습은 제가 살아온 세계에서 자주 목격해 온 현실이기도 합니다. 가부장제는 남성들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게 아니에요. 가족들 역시 그 구조를 지탱하고 있지요. 제가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 지점입니다. 가족 간의 사랑조차도 사회적 압력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고 변형되는지 말입니다.”
「하트 램프」를 비롯해 인도 작가 바누 무슈타크의 단편 12편을 엮은 소설집 『하트 램프(Heart Ramp)』(김석희 옮김, 열림원)가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무슈타크가 1990년부터 2023년까지 30여 년 동안 인도 공용어 칸나다어로 발표한 여섯 권의 단편집에 실린 단편소설 50편 가운데 추려 엮은 소설집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지난해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이 아닌 소설집으로 부커상을 수상한 것도 이례적이었고, 칸나다어 작품이 부커상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소설집에는 남인도 이슬람 문화권을 배경으로 가부장 체제의 모순과 이 체제에 저항하는 다양한 인도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작품 속 여성들은 온전한 개인이 아닌 딸이나 아내, 며느리, 어머니로서 전통적 역할을 강요받는다. 작가는 사랑과 빈곤, 재산권, 조혼, 교육 문제 등을 다루면서 여성들을 단순히 피해자가 아닌 불평등과 소외에 맞선 인물로 그려낸다.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분명히 드러내고, 이들의 억압과 소외의 일상은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문장으로 그려진다.
문제적 작가 바누 무슈타크는 왜 남인도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고통 받으면서도 꺾이지 않는 여성들을 그려야 했을까. 그가 묘파한 남인도 가부장제 사회와 저항하는 여성들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작가 무슈타크를 최근 이메일로 만났다.
―표제작 「하트 램프」에서 친정으로 돌아온 메룬에게 가족들은 왜 이 같이 냉대한 것일까. 그들에겐 어떤 생각과 가치관, 사회적 기대나 압박이 자리하고 있는지.
“메룬 가족들의 반응은 단지 잔인함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 기저에는 두려움이 있다. 가족들의 반응 뒤에는 명예, 사회적 체면, 경제적 불안에 대한 깊은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인도 남부를 비롯해 많은 인도 가정에서 딸의 결혼은 일종의 ‘최종적인 자리 잡기’로 여겨진다. 일단 결혼을 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참고 적응하며 결혼 생활을 지켜야 한다는 기대가 따른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고통은 종종 가족의 체면보다 하찮은 것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부모의 꾸지람은 무관심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여성이 인내하는 데서 덕성을 찾도록 만드는 사회적 믿음의 반영이기도 한다. 저에게 「하트 램프」는 단지 결혼 생활을 배신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여성이 품고 살아가는 위태로운 소속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르려던 메룬은 딸이 막아서자 용서를 비는데, 이때 메룬의 심리 상태는 어떠했을까. 이 장면은 어떤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을까.
“몸에 불을 지르려는 메룬이 딸 살마의 발 앞에 무너져 내려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제 개인적인 기억과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때 제게는 견디기 힘든 절망을 깊이 느끼던 시기가 있었다.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세상에서 제 목소리도 존엄도 설 자리가 없다는 듯한 고립감과 무력감이었다. 그 기억과 감정은 오랫동안 제 안에 남아 있었다. 메룬이라는 인물을 쓸 때 저는 바로 그 내면의 풍경에서 출발했다. 그녀가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르려는 충동은 그저 죽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삶 속에서,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삶을 붙잡아 보려는 절박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 순간 메룬은 오랜 시간 쌓여 온 피로와 굴욕, 깊은 외로움을 짊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집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느끼고, 자신의 삶에서도 목소리를 잃은 채 살아왔다고 느낀다. 불은 그 고통이 도달한 가장 극단적인 표현이며, 절망이 마침내 마지막 외침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하지만 살마가 그녀의 발 앞에 무너져 내려 멈춰 달라고 애원하는 순간, 메룬의 마음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 딸의 간절한 호소가 그 어둠을 가로막는다. 그 순간 메룬은 더 이상 고통에 짓눌린 한 사람만이 아니라, 동시에 한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두려움과 사랑이 뒤섞인 딸의 모습은 그 어떤 것보다 깊이 그녀에게 가닿는다. 메룬은 두 가지 강렬한 감정 사이에 서 있다. 하나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딸과 자신을 이어 주는 깊은 유대이다. 그리고 그 유대가 그녀를 벼랑 끝에서 다시 끌어당긴다. 이 장면을 쓰면서 저는 고통 속에서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동시에 때로는 단 한 사람과의 관계가 비극적인 끝을 막아 내기도 한다는 사실도. 메룬의 선택은 영웅적인 결단의 순간이 아니다. 그것은 잠시 멈춰 서는 순간, 사랑이 절망의 흐름을 끊어 내고 삶이 다시 이어질 수 있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소설집을 여는 「샤이스타마할을 위한 석판들」은 모든 것을 다해줄 것처럼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는 사랑의 위선을 폭로한다. ‘나’는 어느 날 남편 무자히드와 함께 초대를 받아 이프티카르―샤이스타 부부의 집을 방문한다. 이프티카르는 아내 샤이스타를 위한 타지마할을 짓겠다고 허풍을 떨지만, 아내가 죽자 40일 만에 재혼한다.
“‘그럼 저 여자는 누구죠?’ 나는 가차 없이 물었다. ‘샤이스타가 죽은 지 40일째 되는 날 의식을 치르고, 바로 그 이튿날 저 여자랑 결혼했어. 저 여자는 가난한 집 출신이야. 어쨌든 나는 아이들을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해. 그게 이유야.’ ‘아아, 물론… 저 여자는… 저 여자는 아이들을 잘 돌봐 주고 있어요. 그건 분명해요. 형부가 무엇을 하든, 그건 다 좋아요. 하지만 형부가 언니에게 했던 사랑의 맹세를 여자한테도 되풀이하지 마세요. 형부가 샤이스타마할을 짓지 않는다 해도, 샤이스타의 무덤 주위에 둘러칠 석판을 준비하지 않는다 해도 괜찮아요. 하지만 형부의 영원하고 강렬한 사랑이 언니가 있는 곳에 다다르면, 그래서 샤이스타가 깨어나 여기로 돌아오면, 형부는 난처해질 거예요.’ 막판에는 어떤 말까지 하게 될지 두려워서, 나는 밖으로 달려 나왔다.”(32쪽)
―첫 단편 「샤이스타마할을 위한 석판들」의 인물과 이야기는 어디에서 왔는지.
“남자 주인공은 아내에게 다정하고 세심하며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인물이지만, 아내가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망설임 없이 재혼을 한다. 이 인물을 악인으로 그리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한 여성이 사랑받을지언정, 가족이라는 구조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대체 가능한 존재로 여겨지는 사회적 인식을 보여 주는 인물이다. 그의 슬픔은 진실하지만, 삶은 계속돼야 한다는 기대 역시 마찬가지로 진실하다. 이 생각 역시 특정한 개인적 경험에서만 나온 건 아니다. 작가이자 변호사로 살아오면서 오랜 시간 사회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저는 종종 남성들이 공개적으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변치 않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사회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권장하기까지 하기에 비교적 빠르게 재혼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아 왔다. 여성에게 과부로서의 삶은 도덕적 기대와 다양한 의례 속에 둘러싸여 있지만, 남성에게는 그저 일시적이고 곧 다시 결혼해 정리해야 할 상황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조용한 불균형을 탐색하고,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헌신은 곧 평등을 의미하는가? 죽은 여성에 대한 기억보다, 남성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구조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이 존재할 수 있는가? 따라서 이 작품에서 말하는 남편은 단지 한 개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더 넓은 사회적 패턴을 반영하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온화하지만 자신이 지닌 특권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 인물을 통해 이야기는 사회가 종종 결혼 안에 존재하는 권력 관계를 성찰하지 않은 채, 사랑을 낭만화한다는 점을 보여 주려 했다. 이런 점에서 저에게 문학은 누군가를 고발하는 일이 아니다. 문학은 관계 속에서 사랑과 권력이 어떤 긴장 속에서 함께 작동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단편 「불의 비」에선 아버지의 재산에 대한 몫을 달라는 여동생의 요청을 묵살하는 종교인 우스만의 위선을 묘파한다. 재산을 관리하는 우스만은 지난 밤 아버지의 재산 일부를 자신의 몫으로 달라고 요구하는 여동생 자밀라를 떠올리곤 분노의 감정이 타오른다. 여기에 과부가 된 조카 사키나는 도와달라고 손을 벌리고, 사브잔 노인 역시 딸의 결혼식에 쓸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하는데.
“‘뭐? 지금 뭐라고 했니? 누가 아프다고? 언제부터? 무슨 병이래?’ 그가 연달아 묻자 소녀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안사르는 보름 전부터 고열에 시달렸잖아요? 의사 말이 뇌에 무슨 병이 있대요. 뇌수막염이라는 병인 것 같아요.’ 딸은 걷잡을 수 없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물잔이 무타왈리의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목소리들이 다시 천천히 그의 귓속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오빠, 재산에서 내 몫을 주세요. 오빠, 이 가엾은 과부를 도와주세요. 무타왈리, 내 딸 결혼식에 쓸 돈을 좀 빌려주게. 하크다르 타르세 토흐 앙가르 카 누흐 바르세…불의 비…까마귀들, 검은색, 회색… 그들 안에 있는 무지개….”(60쪽)
―「불의 비」는 마지막에 무타왈리 우스만의 심리적 붕괴가 인상적인데, 우스만을 통해 무엇을 탐구하고자 했는지.
“「불의 비」에서 무타왈리 우스만은 그저 한 남성이 아니다. 제가 현실에서 자주 목격해 온 어떤 모습을 대표하며, 책임이 따르지 않는 권위가 어떻게 왜곡되어 가는지를 보여 주는 존재이다. 저는 이 인물을 통해 정의감 없이 행사되는 권력이 한 사람의 내면을 어떻게 서서히 좀먹어 가는지 탐구하고 싶었다. 우스만은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여동생이 아버지의 재산에 대한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순간, 그는 회피적인 태도를 보인다. 시간을 끌고,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우고, 여동생의 법적인 몫을 내주지 않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논리를 동원한다. 스스로 재산과 체면, 그리고 남성으로서의 권위를 지키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도덕적 기반을 스스로 허물고 있을 뿐이다. 아내와 아이들로부터 그가 정서적으로 멀어져 있는 모습 또한 바로 그 같은 균열과 이어져 있다. 저는 종종 정의란 인간관계마다 나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 관계에서 공정하기를 거부하면, 그 균열은 다른 관계들로도 서서히 번져 간다. 여동생의 존엄을 부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정 안에서도 정직함과 다정함을 오래 지켜 내기 어렵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우스만이 붕괴되는 모습은 외부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그가 스스로 만들어 온 모순들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 인물에 대한 생각은 제가 변호사로 일하면서 겪은 경험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저는 여성들의 법적 상속 지분이 여러 절차적 장치를 통해, 사실상 부정되는 재산 분쟁을 많이 보아 왔다. 절차와 논리가 때로는 공정을 가리는 방패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법은 제도 안에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옳다고 알고 있는 일을 계속해 회피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졌다. 그 질문이 오랫동안 제 안에 남아 있었고, 결국 「불의 비」라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머지 단편 가운데 특별한 에피소드나 사연이 담겨 있는 작품이 있다면.
“남은 작품들 역시 제 삶과 분리해 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고르긴 어렵다. 많은 작품들이 감정적 층위에서는 자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야기 속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지만, 제가 살아오면서 겪고, 지켜보고, 때로는 조용히 견뎌야 했던 순간들에서 출발했다. 이 이야기들은 더 이상 제 안에 가두어 둘 수 없게 된 감정들, 끝내 침묵하기를 거부한 감정들에 이끌려 쓰였다. 여성의 삶에는 사회가 조용히 삼켜 버리기를 요구하는 경험들이 있다. 모욕, 부당함, 도덕적 타협, 배신, 고독 같은 것 말이다. 이러한 순간들은 오랫동안 말해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질서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묵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이 이야기들을 쓰는 일은 제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감정들에 목소리를 주는 과정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던 감정들에 대한 제 조용한 외침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개인적인 고통은 비로소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경험이 되었다. 독자들이 이 작품들에서 어떤 강렬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이 이야기들이 상처를 멀리서 바라보며 쓰인 것이 아니라 그 상처 속에서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 속 화자들의 유머 감각도 인상적인데, 왜 유머를 서사 전략으로 선택했는지. 혹시 이런 종류의 유머를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지.
“제 소설에 등장하는 유머는 독자를 웃기기 위해 넣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방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 저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구조와 가족과 공동체 안에 스며있는 조용한 폭력,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도덕적 모순에 대해 쓴다. 이런 현실을 오직 분노나 고발의 언어로만 다루면 글은 지나치게 거칠어지고, 독자는 오히려 이야기를 외면하게 될 수도 있다. 유머는 진실을 부드럽게 말하는 게 아니라, 더 날카롭게 말하기 위한 방식이 되었다. 일상에서 저는 대체로 진지한 편이다. 특히 공적인 자리에선 사람들이 제게 쉽게 말을 걸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제가 평소 다소 엄숙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머는 오래전부터 제 안의 일부였다. 큰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종류라기보다는, 권력을 바라볼 때 생겨나는 미묘한 아이러니에 가깝다. 저는 그 아이러니를 통해 권력이 지닌 취약함을 드러내고자 한다. 사회적 권력이나 종교적 권위, 가부장적 권력을 이야기할 때 저는 그것을 노골적인 대립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것이 시처럼 느껴지기를 바란다. 겉으로는 부드럽거나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분명한 날카로움이 숨어 있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즉각적으로 방어하지 못한 채 진실이 주는 불편함과 마주하게 된다. 유머는 바로 그런 효과를 만들어 낸다. 사람들의 방어심을 누그러뜨리고 자연스럽게 그 경계를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의미가 서서히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유머는 노골적인 비판보다 더 강력할 때도 있다. 정면으로 비판하면 곧바로 반발이 따르지만, 유머를 통해 던진 말은 오래 남아 독자를 조용히 흔들어 놓는다. 누군가의 위선을 직접 설명하는 대신, 독자가 스스로 그것을 발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남인도의 가부장적 문화를 다룬 『하트램프』 발표 이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는지.
“제 소설 가운데 많은 작품이 남인도의 가부장적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바로 그 사회적 토양 속에서 이야기들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를 돌아보면, 분명하고도 측정 가능한 변화가 있었다고 느낀다. 오늘날 많은 소녀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금메달을 받으며, 과거에는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전문 직업 분야에도 진출하고 있다. 여섯 자릿수 연봉을 받으며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여성들도 많아졌고, 한 세대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방식으로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저는 하나의 역설을 본다. 여성들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많은 공동체의 문화적 관습은 그만큼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면에선 오히려 더 엄격해지기도 했다.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경제적 독립을 이루기 시작할수록 통제의 방식은 더 미묘하면서도 강해지는 경우가 많다. 감시는 더욱 촘촘해지고, ‘명예’에 대한 기대 또한 더 날카로워졌다. 전통과 성취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부담 역시 여전히 대부분 여성에게 지워진다. 기회는 분명 늘어났지만, 여성들에게 허용된 정서적·문화적 공간은 그만큼 확장되지 않았다.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순종, 결혼, 가족에 대한 의무라는 엄격한 규범 속에 묶여 있다. 그들의 성공은 공개적으로 칭찬받지만, 정작 그들의 자율성은 여전히 사적인 영역에서 제한되곤 한다. 분명 변화는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진보라고 보긴 어렵다. 교육과 기회의 측면에서는 분명 더 많은 성취를 이루고 있지만, 여성의 궁극적인 가치는 여전히 ‘순응’에 있다고 여기는 깊은 인식이 사회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질서의 이러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진보는 계속해서 불균등한 상태로 남을 것이다.”
요컨대 소설집 『하트 램프』는 강고한 가부장 체제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여성들의 회복력과 생의 의지, 연대 의식을 놀랍도록 서늘하고 유머러스한 필치로 묘파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인도의 저항문학을 넘어서 현대 세계의 새로운 고전으로도 결코 손색이 없어 보인다.
“제 딸을, 이 학교의 칸나다어 과정에 입학시켜 주십시오.” 어느 날, 아버지는 딸과 함께 근처 기독교 수녀들이 운영하는 콘벤트 학교를 찾아갔다. 당시 많은 무슬림 소녀들처럼, 무슈타크는 인도의 주요 언어인 우르두어 학교에 입학했지만, 두 해가 지나도록 제대로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친구 점성가로부터 “이 아이는 언젠가 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에 간직해온 아버지는, 딸의 모습을 적잖이 걱정했고 마침내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처음 학교 수녀들은 무슈타크의 입학을 거절했다. 무슬림 소녀가 인도의 고대어이자 남부 지역 언어인 칸나다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고 여러 차례 학교 측을 설득했다. 학교는 마침내 조건을 하나 내걸고 그의 입학을 받아들였다. “만약 아이가 여섯 달 안에 학업에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면, 전학시키겠습니다.”
이때였다. 소녀 무슈타크의 안에서 어떤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읽고 쓰고 배우는 일에 거의 집착하듯 몰두했고, 어느 순간 그의 입과 언어가 트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글쓰기는 공책이 아니라 집 벽과 바닥에서 이뤄졌다. 언어는 처음으로 그에게 자유를 느끼게 해 준 공간이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전근이 잦았다. 여러 도시를 전전해야 했다. 아버지는 딸이 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열두 살 무렵, 소녀 무슈타크는 공책 한 권에 첫 장편소설을 썼다. 잦은 이사 속에 원고는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 부모들은 이것이 훗날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눈치 채지 못했음에도, ‘작가 무슈타크’의 씨가 뿌려지던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무슈타크는 이후 틈이 날 때마다 어디서든 글을 썼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글쓰기를 좀 더 진지하게 이어갔다. 그의 단편소설 가운데 하나가 칸나다어 잡지에 실렸다. 이 경험은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한동안 인도 공영방송 ‘올 인디아 라디오’에서 아나운서로 일했고, 고등학교 교사로도 근무했다. 결혼 이후 글쓰기는 사실상 멈추게 됐다. 세 딸의 어머니로 살아가면서 그는 점점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자신을 표현할 공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딸을 낳은 뒤, 무슈타크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당시 P. 랑케시가 이끌던 영향력 있는 주간지 『랑케시 파트리케(Lankesh Patrike)』에 에세이 한 편을 투고했는데, 랑케시는 곧바로 그의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그는 랑케시가 이끄는 하산 지역의 지역 기자로 일하게 됐고, 사회와 정치 현장을 취재하며 글을 썼다. 랑케시는 탐사보도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 경험은 그에게 관찰력과 용기,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한층 단단하게 만들었다. 언론 활동과 함께 그는 다시 창작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단편소설과 에세이, 시를 쓰기 시작했고, 번역 작업도 몰두했다. 그는 이후 줄곧 글을 써 왔고, 다시는 글쓰기의 세계를 떠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제 삶에 어떤 극적인 전환점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언어의 장벽과 사회적 기대, 가정 안에서 강요되던 침묵에 맞서는 작은 저항들이 차곡차곡 쌓여 왔지요. 문학은 제가 처음부터 계획하고 선택한 길이 아니었어요. 글쓰기는 제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잦은 이사와 사라져버린 원고들, 삶의 여러 단절은 오히려 글을 써야 한다는 확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지요. 어쩌면 아버지의 믿음, 점성가의 예언, 조건부로 허락되었던 콘벤트 학교 입학, 『랑케시 파트리케』의 뉴스룸, 어머니로 살아온 시간,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은 수많은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제게 문학은 야망이 아니라 생존이었고 책임이었으며, 결국은 운명이었습니다.”
1948년 인도 서남부 지역 카르나타카주에서 비교적 부유하고 지적으로 열린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바누 무슈타크는 1970~80년대 남인도 진보적 저항문학 진영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이래 6권의 단편소설집과, 소설과 에세이집, 시집 각 1권씩을 칸나다어로 발표했다.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비롯해 카르나타카문학 아카데미상과 다나 친타마니 아티마베상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단편소설 「검은 코브라(Black Cobra)」는 저명한 기리시 카사라발리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고, 이 영화는 2004년 인도에서 10여개의 상을 수상했다.
―소설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방법이 있는지.
“제가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감정의 진실성이다. 이야기는 상상에서 시작될 수 있고 인물 역시 작가의 구성 속에서 만들어지지만, 그 중심에 놓인 감정만큼은 반드시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물이 울거나, 저항하거나, 용서하거나, 혹은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작가의 계산이나 장치가 아니라 인물의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한다. 저는 메시지를 먼저 정해 두고 글을 시작하지 않는다. 대신 제 안에서 오래 떠나지 않는 상처나 침묵, 혹은 하나의 질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설은 늘 그 지점에서 자라난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하나의 원칙은 인물의 존엄이다. 저는 결함이 있는 사람들, 억압적인 남편, 침묵하는 어머니, 혼란스러운 딸 같은 인물들을 그릴 때에도 그들을 단순한 틀 안에 가두고 싶지 않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순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한 순간에는 다정하지만 또 다른 순간에는 잔인할 수도 있다. 저는 그 복잡성을 그대로 남겨 두고 싶다. 문학은 누군가를 단죄하는 법정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언어 역시 매우 중요하다. 저는 칸나다어로 글을 쓰기 때문에 문장의 리듬과 호흡을 늘 의식한다. 산문을 쓰더라도 그 안에서 시적인 울림이 살아 있기를 바란다. 문장은 무게를 지니되 자연스럽게 흘러야 하고, 그 언어가 자라난 문화적 토양과도 이어져 있어야 한다. 불필요한 장식은 피하려 하지만, 한 번 읽은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기를 바란다. 침묵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때로는 말해진 것보다 말해지지 않은 것이 더 깊은 울림을 남기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내면을 다룰 때에는 망설임과 침묵, 억눌린 생각들이 강력한 서사의 힘이 된다. 글을 쓸 때 저는 엄격한 구조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그들의 말투와 몸짓, 두려움 같은 것들을. 이야기들은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시작된다. 우연히 들은 한마디 말, 아무 생각 없이 반복되는 의례, 혹은 모두가 너무 익숙해져 버린 작은 부당함 같은 것들이다. 저는 그런 장면들을 오래 마음에 붙들고 있다가 그것이 서서히 이야기로 익어 갈 때까지 기다린다. 무엇보다 저는 제가 속한 사회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 제 글쓰기는 제 윤리적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다. 아이러니와 유머, 혹은 절제된 표현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이야기가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제게 소설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과 마주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알고리즘의 인공지능(AI)가 인간의 감수성을 위협하는 시대에, 문학과 소설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속도를 숭배하고 집중이 쉽게 흩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알고리즘 기반의 인공지능은 우리 욕망을 예측하고, 우리가 말하려는 것을 대신 완성하며, 취향까지 골라 준다. 효율적이고 놀라울 만큼 유용하기도 하다. 하지만 효율이 곧 감수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측이 실제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시대일수록 문학의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문학은 쉽게 단정할 수 없는 것들을 그대로 두는 공간이다. 알고리즘이 패턴을 찾아낸다면, 소설은 인간의 모순과 복잡함을 들여다본다. 기술은 세상을 분류하고 정리하려 하지만, 소설은 그런 단순한 구분으론 설명되지 않는 삶을 보여 준다. 인간의 삶은 하나의 데이터로 환원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안에는 기억과 수치심, 갈망과 침묵, 그리고 도덕적 갈등이 얽혀 있다. 문학은 바로 그 깊이를 지켜 낸다. 특히 소설은 오늘날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독자에게 천천히 읽는 시간을 요구한다. 한 편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몇 시간, 때로는 며칠 동안 타인의 삶을 따라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공감을 배우게 된다. 그것은 구호처럼 말해지는 공감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실제로 가까이서 마주하는 경험이다. 그리고 우리는 낯선 감정과 동기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서는 법을 배우게 된다. 즉각적인 반응이 넘쳐나는 시대에 소설은 우리에게 잠시 멈춰 생각할 시간을 준다. 소설은 세상을 단순하게 규정하려는 시도를 쉽게 따르지 않는다. 사람은 특정 정체성이나 뉴스의 제목, 혹은 해시태그로 환원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소설 속에서는 가족에게 침묵을 강요받던 여성이 마침내 목소리를 얻게 되고, 결함을 지닌 한 남자의 취약함이 드러나며, 한 사회가 숨겨 온 위선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과정은 어떤 알고리즘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저는 인공지능을 적대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계의 논리가 인간 삶의 의미까지 규정하게 되는 상황에는 분명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인간의 내면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의심과 다정함, 상황과 상상력 같은 것들이 계속 살아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계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날 독자들에게 소설은 하나의 쉼터가 된다. 그것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더 깊이 마주하는 공간이다. 외부의 정보와 반응이 쏟아지는 시대에 소설은 우리를 다시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가게 한다. 기계가 언어를 흉내 낼 수는 있을지라도, 살아 낸 경험 자체는 흉내낼 수 없다. 그리고 그 경험, 그 연약함과 도덕적 복잡성을 지닌 경험은 여전히 인간의 것이다.”
절제와 규율에 의해 움직여 왔던 그의 일상은 지난해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 이후 크게 달라졌다. 줄곧 이동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공항까지 네 시간을 이동하고, 공항 라운지에 머물며, 비행기를 타고 가서, 인터뷰와 행사 일정을 소화하는 생활이 계속됐다. 이동 자체가 일상이 돼 버렸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긴 호흡의 소설을 쓰지 못했다. 대신 몇 편의 시만이 불현듯, 거의 무의식적으로 찾아왔을 뿐. 무언가를 기다리는 순간이나 이동 중, 혹은 일정과 일정 사이에 짧은 틈새에서.
부커상 수상 이전, 그의 하루는 기도로 시작했다. 이 고요한 시간이야말로 세상과 마주하기 전 그의 마음을 붙들어 주는 중심이 돼 주었다. 그 뒤에는 법원에 나간다. 법과 법정의 일은 그의 글쓰기와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법원에서 마주하는 갈등과 부당함, 그 속에서도 버텨내는 인간의 모습은 그의 글을 더욱 깊게 만들어 주었다. 저녁에는 사무실로 가서 의뢰인들을 만난다. 각자의 사연과 불안, 고통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의 하루는 늘 인간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그의 글쓰기는 삶과 분리된 별도의 행위가 아니다. 언제나 삶 한가운데에서 자라나는 그 무엇이었다.
작가이자 변호사인 바누 무슈타크는 다시 집중해 글을 쓰기 위해 의식적으로 생활을 정돈 중이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한 침묵이나 특별히 꾸며진 작업실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공항 라운지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호텔 방에서도, 책상 앞에서도 글을 쓸 수 있다. 정해진 시간표를 따르지도 않는다. 엄격한 규칙도 없다. 어떤 생각이 모습을 드러내고 외면할 수 없을 만큼 강하게 다가올 때, 글을 쓴다. 그 자리에서 바로 녹음해 두기도 하고, 그때그때 손에 잡히는 곳에 적어 두기도. 그는 바쁜 일정과 공적 활동 속에서도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시간을 찾으려 한다. 그의 삶은 법정과 공항, 공적인 무대와 고독한 사유의 시간 사이를 오가며 흐르고 있고, 이 움직임 한가운데서 문학은 여전히 숨 쉬고 있다. 꿈이라거나 희망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모두 꺾인 우리 시대의 수많은 메룬들과 함께….
“밤이 깊어질수록 메룬의 가슴을 휘젓는 흥분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이런 외로움을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제 그녀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았다. 그녀의 안부를 물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를 놀리고, 껴안고, 키스해 줄 사람도 없었다. 전에 그런 일을 해 주었던 사람은 이제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삶에는 끝이 없는 것 같았다.”(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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