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까지 얽힌 ‘다층 전장’ 서해
향후 10년, 위기관리가 승부 가른다
3월 27일, 연평해전·천안함 피격·연평도 포격전 장병을 기리는 제11회 서해수호의 날이다.
매년 3월이 다가오면 서해를 지켜낸 장병들의 헌신을 되새기는 행사가 이어진다. 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했던 그 바다는 여전히 충돌 직전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2002년 제2연평해전,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전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다. 현재에도 진행중인 위기의 출발점이다. 남북간 대치와 도발 국면에서 미·중 전략경쟁이 더해지는 복합적 형태의 위기다.
서해수호의 날이 단순한 기념식이 아닌 미래에도 서해를 지킬 수 있는 역량과 전략을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NLL 두고 남북 대치
서해가 갈등과 대립의 바다로 바뀐 것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직후다.
정전협정에서 유엔군과 공산군측은 지상에 군사분계선(MDL)을 설정했으나, 해상 군사분계선은 규정하지 못했다.
유엔군사령관은 정전협정 이행 차원에서 1953년 NLL을 설정했다.
북한은 6·25 전쟁 당시 무너졌던 해군력을 어느 정도 재건한 1973년부터 서해 NLL 무력화를 노리고 적대행위를 지속, 서해에선 남북간 긴장과 충돌이 반복되어왔다.
북한 도발에 맞서 군은 연평해전·대청해전·천안함 피격·연평도 포격전 등을 통해 서해 NLL과 서북도서를 피로써 사수했다.
올해도 해군은 24∼27일 동·서해에서 기동훈련을 실시했다. 지난해 12월엔 서북도서에 해병대를 신속히 파견하는 역할을 수행할 고속전투주정 ‘청새치’가 진수됐다.
북한 도발에 군이 단호히 대응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본 국민들은 서해 NLL을 단순한 해상경계선이 아닌 영토선에 가까운 개념으로 인식하게 됐다. 남북 관계에서 NLL 관련 여론이 다른 이슈보다 훨씬 예민하게 다뤄지는 이유다.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내세우는 김정은 체제에서 서해 NLL은 새로운 정치·군사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NLL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과거와 같지만, ‘국경선’ 개념을 언급하면서 대형함정과 최신 유도무기를 앞세우는 모양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국가의 남쪽 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 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한달 뒤엔 신형 지대함미사일 ‘바다수리-6형’ 시험발사를 공개했다. 지난해 10월엔 김 위원장이 새로 만든 구축함 최현호를 둘러보면서 함교의 전자해도에 NLL과 서북도서 일대가 표시된 장면이 등장하기도 했다. 최현호는 수차례 순항미사일 시험발사가 이뤄졌다.
대형함정과 정밀유도무기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과거 제1·2연평해전처럼 남북 함정 간 근접전보다 위협 수준이 훨씬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유사시 NLL과 멀리 떨어진 해역이나 내륙에서도 서북도서와 NLL 일대의 해군함정을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한반도 정전체제의 특수성과 역사성을 부정하고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내세우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남북 관계가 국가 관계로 전환되면, 양측 간 해상경계선은 국제해양법 원칙을 따르게 될 가능성이 있다.
국제해양법상 영해(12해리)와 배타적 경제수역(EEZ·200해리)의 범위를 그대로 적용하면, NLL은 무력화되고 북한이 황해도 연안에서 서해로 진출하는 길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이는 서북도서와 수도권 서부 지역은 물론 서울의 관문인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의 항로 안전을 위협한다.
NLL을 ‘절대 사수해야 할 영토선’처럼 생각하는 국민 여론도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남북 관계가 실질적 의미의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전까지 NLL은 실질적인 남북 해상경계선으로서 굳게 지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특히 북한이 노동당 9차 대회를 계기로 NLL 무력화를 위한 정치·군사적 공세를 취할 가능성에 대비, 실효성 있는 법적 근거를 꾸준히 축적하고 해상방위력을 꾸준히 증강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해를 둘러싼 다층 전장
미·중 전략경쟁은 서해 갈등과 대립 구도를 한층 복잡하게 한다.
지난달 18일 벌어진 주한미군 F-16 전투기 비행은 서해가 미·중 대립의 현장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잘 드러낸다.
당시 주한미군 F-16이 중국방공식별구역(CAIZ)에 접근하면서 중국도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본래 주한미군 F-16은 대북 억제에 주력하던 전력이다.
그런 전력이 서해 먼 바다까지 진출해서 중국 전투기와 한때나마 대치했다는 것은 서해에서의 중국군 활동을 견제하려는 의지 표현과 더불어 중국군 대응을 떠보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중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중국군은 기존 수동적 추적과 달리 ‘조기경보-식별-동반 비행-이탈 유도’로 이어지는 절차에 따라 대응했다. J-16, J-11B 전투기가 출격해 가시거리에서 동반 비행하며 무선 경고를 실시했다고 한다.
미군으로선 중국군 레이더와 주파수 대역, 조종사와 지상 관제사간 교신내용, 방공작전체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이와 별도로 중국군은 서해에서 적극적인 군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중국군은 지난해 11월 서해 중·남부 해역에서 실탄 사격훈련을 실시했다.
중부 해역에서 진행된 훈련 장소는 한·중 배타적경제수역(EEZ)이 겹치는 구역과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본과 주한·주일미군에 전략적 압력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지난 1월 공개한 국방전략(NDS)에서 “제1도련선(오키나와∼대만∼필리핀∼믈라카해협)을 따라 강력한 거부형 방어를 구축하고, 배치하며,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군은 서해에 주일미군 P-8A 해상초계기, RC-135 전자정찰기와 주한미군 BD-700 전자정찰기를 잇따라 투입하고 있다.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를 이륙한 RC-135가 서해 한·중 중간선을 따라 북상해서 휴전선 일대를 지나 동해로 진출하는 사례도 있다. 주한미군 BD-700도 중국과 가까운 서해 남부 해상까지 비행하고 있다.
중국 연안의 레이더 특성, 함정 동향, 전자파 스펙트럼 등의 수집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중국을 압박하는 의도도 있다는 해석이다.
제1도련선을 돌파해서 태평양으로 나아가려는 중국, 그런 중국을 제1도련선에 가두려는 미국의 의도가 부딪히는 곳이 서해다. 서해에서 양측 간 군사적 신경전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꽂게철 중국 어선의 서해 불법 조업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9∼10월 서해 NLL 인근 해상에는 하루 평균 190여척의 불법 중국어선이 출몰했다. 2024년보다 늘어난 숫자다.
서해 NLL 해역은 남북 접경 해역이라 해경이 도주하는 중국 어선을 단속할 시간이 짧다. 이를 노린 불법 조업이 지속되는 모양새다.
◆향후 10년, 서해 위기관리가 중요
남북과 미국, 중국이 뒤얽힌 상황에서 정치·군사·경제적 이해관계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서해를 둘러싼 위기관리 전략도 새롭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서해 NLL에서의 북한 도발을 억제하면서 우발적 충돌 방지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국경선’을 최대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설정하고자 서해 NLL 무력화를 꾀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위해 NLL 너머로 선박을 들여보내는 행위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남북 해군 함정이 충돌할 위험도 있다. 군으로서는 북한의 NLL 무력화에 단호하게 대처하면서도 우발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고난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서북도서의 전력 증강도 서둘러야 한다. 북한 황해도 해안과 내륙을 감시할 무인정찰기, 내륙 지역 표적을 정밀타격할 한국형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 북한 무인기와 전투기를 요격할 지능형 40㎜ 무인방공체계 등의 전력화가 요구된다.
중장기적으론 NLL 유지 논리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면서도 북한과의 협상이 재개될 경우에 대비, 북한에 제시할 수 있는 옵션 및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의 수준을 사전에 설정할 필요가 있다.
미·중 전략경쟁 국면에서 서해에서의 긴장 완화를 위해 주변국들을 중심으로 한 해양관리체제를 구축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정치적으론 서해수호의 날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면서, 서해의 중요성과 의미를 국민에게 인식시키는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해를 둘러싼 환경은 천안함 피격·연평도 포격전 당시보다 훨씬 복잡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해결할 범정부 차원의 장기 전략 논의는 없는 실정이다.
미·중 전략경쟁과 남북 대립 구도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국면에 놓였다.
10년 뒤에도 서해수호의 날을 같은 방식을 맞을 것인지, 다른 구조를 만들어서 위험을 완화할 것인지. 그에 대한 답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서해와 대한민국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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