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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유의스포츠속이야기] K컬처 뿌리는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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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3년 만에 돌아온 방탄소년단(BTS)의 복귀 공연을 지켜보며 그 압도적 위상을 다시금 실감했다. 나는 절정에 달한 K팝의 성공의 원인을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 개최라고 분석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화적 풍요는 38년 전 잠실벌에 울려 퍼졌던 ‘손에 손잡고’의 메아리가 남긴 소중한 유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80년대만 하더라도 대중가수들의 주무대는 대형 유흥주점이었다. 필자 역시 과거 명동의 한 클럽에서 나훈아의 공연을 지켜봤던 기억이 선명하다. 88올림픽은 대회가 끝난 뒤 가수들에게 제대로 된 ‘공연장’을 선사하며 풍경을 바꿔놓았다.

 

송파구 방이동에 조성한 올림픽공원의 체육관은 90년대 이후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성지로 탈바꿈했다. 체조경기장(KSPO DOME)과 핸드볼경기장은 대규모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최적의 인프라를 제공했다. 이는 조용필부터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오늘날의 BTS에 이르기까지 한국 대중음악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다. 그룹 ‘부활’의 보컬 이승철은 연간 80회 이상의 공연으로 ‘공연의 대가’라는 별칭을 얻었다. 수입이 보장된 K팝은 비로소 대형화와 산업화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술집 공연은 더 이상 찾기 힘들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소프트웨어를 키워낸 자본의 흐름이다. 올림픽 잉여금으로 조성한 ‘국민체육진흥기금’은 이후 ‘문화체육진흥기금’으로 탈바꿈했고 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영화와 공연 예술계에 집중적으로 투입되었다. 자본의 불모지였던 문화 현장에 체계적 지원이 더해지며 한국 영화도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결국 뮤지컬과 콘서트 시장까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88올림픽의 경제적 성과가 한국 콘텐츠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든든한 젖줄 역할을 한 셈이다.

 

올림픽은 또한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변방의 개발도상국에서 세계의 중심부로 진입했던 그 경험은 우리 대중문화가 지역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Global) 스탠더드를 지향하게 만든 심리적 기폭제가 되었다. 결국 지금의 K컬처는 88올림픽이 마련한 물리적 인프라, 재정적 토대, 그리고 개방적 시민의식이 긴 시간 숙성되어 나타난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이제 우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전 세계를 밝히는 K컬처의 화려한 불꽃을 바라보며, 대한민국 체육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차기 정책은 무엇인지 궁금해 진다. 지속 가능성.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한국에 던진 과제다.


성백유 대한장애인수영연맹 회장·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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