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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어른 정치’는 끝났나…이해찬 이후 ‘중재자’ 사라진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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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빈·이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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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14일 서울 동작구 원불교 소태산기념관 대각전에서 치러진 이해찬 전 국무총리 49재에 참석했다. 이날 49재엔 이재명 대통령을 대신해 김혜경 여사도 자리했다. 전직 총리의 49재에 집권여당 대표와 대통령 영부인이 오고 추도사에서 ‘민주주의 역사’라는 말이 나온 자체가 한국 진보진영에서 이 전 총리가 가지는 위상을 상징한다는 평이다. 

 

공교롭게도 ‘이해찬’이 떠난 현재, 162석 거대여당 민주당이 단일대오에서 흔들리는 모습이다. 지난 10일부터 불거진 이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을 둘러싸고 당 지지층 분열이 깊어지고 있다. 새 정부와 당 지도부가 출범한 지 1년도 안 됐으나 소위 친문(친문재인)으로 불리는 전통적인 민주당 주류 지지층과 ‘뉴이재명’이라 명명된 친명(친이재명) 지지층이 분화하며 양측을 비판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14일 서울 동작구 원불교 소태산기념관 대각전에서 열린 이해찬 전 국무총리 49재에서 분향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14일 서울 동작구 원불교 소태산기념관 대각전에서 열린 이해찬 전 국무총리 49재에서 분향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당내 방향을 누가 정리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전에는 계파를 초월한 조언을 이 전 총리 같은 원로에게 기댔지만 이제는 그런 조정자를 찾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민주당을 오래 지켜본 이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온다.

 

◆“이해찬 같은 무게감, 이제 없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이 전 총리가 베트남 출장 중 현지에서 별세한 다음날인 지난 1월26일 정 대표는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그의 사망을 언급하면서 “민주당의 큰 별이 졌다”며 “민주당의 뿌리가 돼준 이 시대의 큰 어른을 잃었다”고 표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같은 날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 전 총리를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었다”고 말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가 14일 서울 동작구 원불교 소태산기념관 대각전에서 열린 故 이해찬 前 국무총리 49재에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가 14일 서울 동작구 원불교 소태산기념관 대각전에서 열린 故 이해찬 前 국무총리 49재에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 전 총리는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 유신 체제 때부터 민주화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7선 국회의원을 거치며 우리나라 거물 정치인이자 민주당의 정체성과 같은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고인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는 민주당 인사들은 그가 까칠한 성격이지만 그가 가진 권위에 의문을 가질 이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16일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정책·정무적으로 판단이 다 탁월해서 실제 나이보다 훨씬 높은 나이대의 권위와 영향력을 가진 거목이었다”며 “이 전 총리가 상징하는 무게를 현재 남은 국회의원이나 민주당 안팎 인사 중 비견할 수 있는 사람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전 총리는 전략기획통이자 선거 전략가로 꼽힌다. 이 전 총리도 자신의 정치 여정을 돌아본 ‘이해찬 회고록’에서 1988년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 출마하며 당시 자신이 처음으로 여론조사 개념을 선거 준비에 도입하고 숫자와 데이터를 활용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당적으로 정부를 구성한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대통령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모두 관여했다. 

 

◆‘중재자’ 사라진 민주당

 

이러한 이 전 총리의 권위와 권한은 자연스레 당내 결속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2020년 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하며 유례없는 압승을 거뒀을 때 당대표로 선거를 지휘했던 이 전 총리는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 모두발언에서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했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탄핵 역풍’으로 152석을 차지하고도 당내 분열 등으로 4년 만에 정권을 다시 한나라당에 내줬던 것을 언급하며 긴장감을 불어 넣은 것이다. 

 

2025년 8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국민임명식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악수하는 이해찬 전 총리 모습. 연합뉴스
2025년 8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국민임명식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악수하는 이해찬 전 총리 모습. 연합뉴스

운동권으로 대표되는 정통 민주당 출신이 아닌 이 대통령이 민주당 중심으로 파고들어 당권을 쥘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 전 총리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다. 문 전 대통령 집권 2년차인 2018년은 친문 진영이 이 대통령에게 출당 압박을 가할 때다. 그러나 이 전 총리는 ‘정치적 판단을 할 단계가 아니’라는 취지로 제동을 걸고 이 대통령을 “당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표현하며 출당 요구에 선을 그었다.

 

2021년에는 이 대통령이 처음 대선에 출마할 때 이재명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으며 이해찬계 의원들도 이 대통령 선대위 업무를 도왔다. 민주당 원로가 지지하는 것을 넘어서 이 전 총리의 인적 네트워크가 움직이면서 민주당 변방에서 출발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 주류로 안착하는 길을 터줬다. 민주당 한 전직 재선의원은 “이 전 총리는 민주당 원로 중 유일하게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 모두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던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했던 이 전 총리는 2024년 총선 당시 친명계가 살아남고 비명계·친문계 일부는 공천 받지 못하는 ‘비명횡사’ 국면에서도 당대표이던 이 대통령을 만났다. 이후 민주당은 “공정하게 공천을 심사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A의원은 “이 전 총리가 있어서 당시 일부 중진 의원이 살아남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창환 장안대 특임교수는 “이 대통령은 당 주류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비명횡사 공천이 있었고 부동산에 발목 잡혔던 문재인정부의 임기 말 모습을 넘어서야 하는 숙명을 가져 문 전 대통령 역할은 자연스럽게 축소된 상황”이라며 “민주당 내에 어떤 잡음이 들릴 때 ‘지금은 여기에 집중할 때’라고 설득력 있게 말할 중재자가 현재로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혜경 여사(앞줄 왼쪽 세 번째)가 14일 서울 동작구 원불교 소태산기념관 대각전에서 열린 이해찬 전 국무총리 49재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김혜경 여사(앞줄 왼쪽 세 번째)가 14일 서울 동작구 원불교 소태산기념관 대각전에서 열린 이해찬 전 국무총리 49재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해찬 이후 민주당의 세대 교체

 

이 전 총리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이 불거졌던 2020년 피해자에게 ‘피해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쓰고 박 전 시장이 사망한 뒤 장례 과정에서도 피해자 문제를 둘러싸고 민주당 지도부가 비판받기도 했다. 그는 당시 민주당 대표였다. 당 외부에서는 이처럼 상반된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당 내부로는 늘 충실했다는 평이 나온다.

 

다만 그가 민주당에서 차지하던 존재감은 커도 그의 부재가 현재 민주당에 큰 변화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 전 총리는 사망하기 전에도 수년째 현역 정치인으로서 활동은 접은 상태였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해찬 세대’도 끝나는 것이지만, 그런 시대도 끝났다”며 “시대가 다양화며 어른으로서 하는 정치는 사실상 끝났다”고 풀이했다. 박 평론가는 “더 이상 민주화 운동 세대가 당 운영을 이끌 수 없다”며 “진보라는 스펙트럼 안에서도 의제별로 다원화한 여러 목소리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민주당은 군사독재 시절에는 군사독재정권, 1980년대 후반부터 자본주의·제국주의, 이후 안기부·하나회 같은 권력기관, 현재는 검찰·사법개혁으로 상징하는 우리 사회 기득권처럼, 가상의 적을 설정하고 싸우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지만 점점 과거의 선악 구도는 효력을 다해가는 과정 같다”며 “그래서 이 대통령도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증시 부양, 부동산 인식 변화 같은 긍정 어젠다를 꺼낸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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