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이라크 파병 때도 반대론 거세
청해부대, 과거 호르무즈 호위 경험
파병 땐 국회 비준 동의 거쳐야
항로 좁아 아덴만보다 여건 열악
이란 미사일·자폭 드론 위험 요소
정치권 “의도 불분명” “여론 나빠”
시민단체 “침략범죄 동참 안 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5개 국가에 호르무즈해협에 군함을 파견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재명정부의 전략·안보 대응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민 안보 청구서를 무시할 수도 없지만 국제사회에 참전으로 비칠 소지가 있는 만큼 실제 군함 파견을 하기도 난감하다 보니 청와대와 정부·국회 모두 곤혹스러워하는 모양새다. 국내에서는 과거 노무현정부 시절 이라크 파병을 둘러싸고 진보 진영에서 벌어졌던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靑 “공식 요청 없어”… 정치권도 신중
청와대는 15일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해협 군함 파견 요구와 관련해 미국 측과 긴밀히 소통하고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으며 조심스러운 기조를 유지했다. 청와대는 “국제 해상교통로의 안전과 항행의 자유는 모든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며 국제법의 보호 대상으로, 이에 기반해 글로벌 해상 물류망이 조속히 정상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우리 정부는 중동 정세와 관련한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며 우리 국민 보호와 에너지 수송로 안전 확보를 위한 방안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공식적인 요청이 오지 않은 상황이라 본격적인 내부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미국 측의 공식 요청은 없었다”며 “아직 파병에 관한 논의나 검토를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군함 파견 요구 관련 직접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조심스러운 사안이라 아직 심도 있는 논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이 청해부대 보낼 때보다 더 난감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고 진단했다.
다른 외통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치밀하게 계획하고 요구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며 “동맹국들을 전쟁에 동원하는 차원은 아닌 것 같다. 당분간 질서 유지 차원의 요구인지가 불분명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 전쟁은 과거 미국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 다툴 때와 달리 출발부터 국제 여론이 나쁘다”며 “한국이 끌려들어 가선 안 될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논의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3년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이라크전쟁 파병을 요청받았고 치열한 찬·반 논의 끝에 국회는 ‘국군부대의 이라크전쟁 파병동의안’을 통과시켜 건설공병단과 의료지원단 등의 병력을 이라크로 파병한 바 있다. 현 상황은 당시와는 전쟁의 성격이나 국제사회의 여론 등 여러 측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결국 미국과의 관계 설정이 달린 일인 만큼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미국을 방문 중인 김민석 국무총리가 귀국하는 대로 방미 결과를 공유받고 대응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대응을 지켜본 뒤 관련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해적 대응 청해부대 파병 시 국회동의 필요
호르무즈해협 군함 파견 요청이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한국 정부에 전달된 후 파병을 결정하면, 아덴만에서 활동하는 청해부대가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을 중심으로 해적 퇴치 및 안전 항해 지원 등 임무를 수행하는 청해부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2009년 1진이 파병됐다. 현재 47진 구축함 대조영함(4400t급)이 임무를 수행 중이며, 오만 동방 해상에서 활동하고 있다. 청해부대는 아덴만 일대에서의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2020년 1월 미군이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제거하면서 미국·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자, 작전 구역을 오만만과 호르무즈해협, 아라비아만 인근까지 넓힌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우리 군의 독자적 작전 수행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란 전쟁은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호르무즈해협 파병이 성사된다면, 청해부대는 다국적군에 참여해서 공동작전을 펼치는 형태로 활동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청해부대의 임무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만큼 별도의 국회 비준동의가 필요할 수 있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매우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해부대는 넓은 바다인 아덴만에서 활동하는 해적 대응이 주요 임무다. 임무 수행에 쓰는 장비도 해상 대테러 등에 필요한 것 위주로 구성됐다. 하지만 호르무즈해협 일대는 아덴만보다 지리적 여건이 훨씬 열악하고 분쟁의 강도도 훨씬 높다.
호르무즈해협의 전체 폭은 평균 50㎞지만, 유조선 등 대형 선박이 실제로 항해할 수 있는 항로의 폭은 6㎞에 불과하다. 해협 인근 아부 무사 등의 섬들은 이란이 실효 지배 중이다. 항해 도중 이란군이 해안에서 지대함미사일이나 자폭드론으로 기습 공격을 감행해도 이를 회피할 시간적·공간적 여유가 거의 없다.
◆시민단체는 줄줄이 반대 성명
이런 가운데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들은 반대 성명을 내고 정부의 단호한 대응을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정당화할 수 없는 불법행위이자 국제법상 침략범죄”라며 “대이란 군사작전에 동맹국을 끌어들이려는 한국군 파견 요청을 단호히 거절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헌법 제5조 1항에서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선언하고 있고 2항 국군은 ‘국가의 안전 보장과 국토방위’로 국군의 의무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며 “침략 전쟁에 개입하는 것은 헌법과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했다.
민주노총도 성명을 내고 “호르무즈해협 파병은 해상 안전을 위한 국제적 협력으로 포장된 미국의 전쟁 확대 전략에 편입되는 길”이라고 비판했다. 시민평화포럼은 성명에서 “청해부대 이동은 검토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아덴만 이외의 분쟁지역 파견, 특히 미군 등과의 연합작전 수행을 위한 호르무즈해협 파견은 국회가 동의한 임무 범위를 벗어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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