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에서도 ‘특허괴물’ 힘 실어주면 곤란
최근 미국 상무부가 한국 반도체 기업에 무분별한 특허소송을 걸며 산업 발목을 잡아온 ‘특허전문관리기업(NPE)’의 힘을 대폭 실어주는 특허 정책을 추진하자, 미국 내부에서도 ‘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외국 기업뿐만 아니라 자국 혁신과 첨단산업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15일 반도체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특허무효심판(IPR) 제도의 신청 절차를 대폭 수정하고, 신청 시기와 방법을 엄격히 제한하는 제도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IPR은 무분별한 특허 소송 억제를 위해 2011년 도입된 제도로, 피소 기업이 특허심판원(PTAB)에서 특허 유효성을 신속히 다툴 수 있는 핵심 방어 수단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특허청이 IPR 신청을 재량적으로 거부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제도의 실효성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신임 특허청장 취임 이후 IPR 개시 거절률은 기존 30% 수준에서 90%대까지 치솟았다.
미국 정책 싱크탱크 ‘잭 켐프 재단’의 아이크 브래넌 선임연구원은 최근 워싱턴타임즈 기고문을 통해 이번 특허 정책 변경안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브래넌 연구원은 “미국의 현행 제도는 특허 발급 기준이 지나치게 낮고, 애초에 부여돼선 안 될 특허까지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다”며 “이번 변경안은 질 낮은 특허를 더 많이 보호하는 등 문제를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브래넌 연구원은 “불명확하거나 일관성 없는 기준으로 정당한 IPR 신청을 기각할 경우, 부실한 특허가 검증을 피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게 된다”며 “실제 제조기업들의 희생으로 특허괴물과 그들의 투자자들이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이른바 ‘3자 소송 자금 조달’ 구조가 빠르게 확산하며 사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제조나 연구개발을 수행하지 않는 헤지펀드 등 투자기관이 개입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채 소송 자금을 대고, 미국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막대한 합의금이나 배상금을 챙기는 구조다. 브래넌 연구원은 “외국 세력이 투자 사실을 숨긴 채 미국 안보에 필수적인 기업과 혁신 기업들에 피해를 주는 조직적 소송이 가능한 구조”라며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는 시기에 외국 자본이 미국 법체계를 악용할 수 있는 구조를 특히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무부의 변경안 추진은 ‘울트라 사이클’에 접어든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달갑지 않다. 최근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NPE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되고 있어서다. 특히 메모리와 첨단 패키징,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일수록 특허 분쟁의 표적이 되기 쉽다. 삼성전자는 NPE '넷리스트'와의 특허 소송에서 두 차례에 걸쳐 총 4억2115만 달러(약 6300억원)에 달하는 배심원 평결을 받았다. SK하이닉스도 중국계 NPE인 어드밴스드 메모리 테크놀로지(AMT)와 미국계 NPE 모노리식 3D로부터 잇달아 특허침해 소송을 당한 상태다. 이번 변경안이 추진되면 특허괴물이 더 기승을 부리는 구조가 된다. 수십조 원의 자금을 투입해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초격차 기술 확보에 집중해야 할 한국 기업들이 불필요한 소송 방어에 역량을 소모해야 하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특허 소송이 이어지면 기업 입장에서는 연구개발 투자 외에 법적 대응 비용까지 동시에 부담해야 한다”며 “결국 이런 소송이 반복되면 반도체 기술 전체적으로 혁신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 된다”고 우려했다.
브래넌 연구원은 “반도체 공장, 첨단 소재 생산시설, 바이오 제조 허브 등은 초기 투자 비용만 수십억 달러에 이른다”며 “특허 제도의 안전장치가 약화되면 불확실성만 커지고, 투자자들은 소송 위험과 지식재산권의 안정성을 중요한 고려 요소로 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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