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천안을 지나다 보면 조선 전기 권력가 한명회의 묘가 자리 잡은 곳이 있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속창리. 지금은 비닐하우스와 농가가 이어진 평범한 농촌 풍경이지만, 이곳에는 한때 조선 정치의 중심에 섰던 인물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조선 왕실 권력의 핵심에 있던 인물의 무덤이 서울이나 한양 근교가 아닌 천안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조의 왕위 찬탈을 설계한 ‘킹메이커’
한명회(1415~1487)는 조선 전기 정치사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1453년 수양대군이 권력을 장악한 계유정난에서 핵심 책사 역할을 하며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당시 어린 왕 단종의 권력을 빼앗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 즉 세조의 정권 장악 과정에서 한명회는 전략을 설계한 브레인으로 평가된다. 후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한명회가 없었다면 수양대군의 왕위 등극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그는 정변의 핵심 인물이었다.
◇두 왕의 장인이 된 조선 최강 외척
세조 정권에서 공신으로 올라선 한명회는 이후 조선 정치의 중심에 섰다. 특히 두 딸을 왕실에 시집보내며 권력 기반을 더욱 강화했다. 큰딸은 예종의 왕비 장순왕후, 작은딸은 성종의 왕비 공혜왕후가 됐다.결국 그는 예종과 성종 두 왕의 장인이 되는 보기 드문 정치적 위치에 올랐다. 조선시대 외척 세력이 정치 권력의 핵심으로 작용했던 점을 고려하면, 한명회는 사실상 왕실과 직접 연결된 최강 권력 가문을 형성한 셈이었다.
◇권력의 정점, 그리고 엇갈린 역사 평가
한명회는 세조·예종·성종 시기를 거치며 조선 초기 정치의 중심 인물로 군림했다. 그러나 후대 역사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세조의 왕위 찬탈 과정과 단종 폐위에 깊이 관여했다는 이유로, 사육신 사건과 단종 죽음의 배후 인물로 비판받기도 했다. 연산군은 단종과 관련된 인물들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한명회의 죄를 문제 삼아 묘를 파헤치는 ‘부관참시’를 명령하기도 했다. 이후 중종반정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명예가 회복됐지만, 한명회는 조선 역사에서 능력 있는 정치가이자 냉혹한 권력가라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인물로 남았다.
◇왜 천안에 묘가 있을까
한명회의 묘소가 천안에 자리 잡은 데에는 조선시대 묘지 문화와 가문의 기반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풍수와 가문의 토지 기반을 고려해 묘지를 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명회 역시 가문과 연고가 있는 충청 지역에 묘역을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천안은 당시 한양과 남부 지방을 연결하는 삼남대로가 지나던 교통 요충지였다. 행정과 군사 이동의 중요한 길목이었던 만큼 여러 명문가의 묘역이 이 일대에 자리 잡기도 했다. 실제로 ‘죽어서 고속도로 1열 직관 중인 조선 제일의 권력자 근황’이라는 제목의 숏츠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여러차례 한명회 묘소를 둘러본 천안시청 공무원들은 “정말로 묘 위치가 좋은 곳에 있고 보존관리도 잘 돼 있으며, 전망이 탁 틔여 있어, 한 눈에 딱 명당으로 느껴졌다”고 입을 모았다.
◇고속도로 옆 ‘조선 권력자의 무덤’
오늘날 한명회의 묘소는 천안 동남구 수신면 속창리에 남아 있으며 봉분과 석물 등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묘역이 현재 경부고속도로와 가까운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백 년 전 삼남대로가 지나던 교통 요충지였던 곳이, 오늘날에는 대한민국 대표 고속도로 옆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최근 천안시가 한명회 묘소를 소개하는 숏츠 영상을 공개하면서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조선 권력자의 무덤”이라는 점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선 왕권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의 묘소가 오늘날 고속도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과거와 현재가 같은 공간 위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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