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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이슬람 ‘8대 전투’ 서구 역사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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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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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드’ 신성시한 이슬람 교리
두 종교의 1400년 충돌 초래

‘야르무크전’ 초기 이슬람 팽창
투르전으로 서유럽 확장 막혀
십자군·빈전투… 흥망 반복돼
“美·이란전도 역사적 선택 대가”

기독교-이슬람 전쟁사/레이먼드 이브라힘/이재황 옮김/책과함께/3만3000원

 

동로마제국의 쇠퇴를 부른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왼쪽 사진)와 동로마제국의 종말을 가져온 1453년 콘스탄티노폴 함락.
동로마제국의 쇠퇴를 부른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왼쪽 사진)와 동로마제국의 종말을 가져온 1453년 콘스탄티노폴 함락.

기독교와 이슬람은 세계 역사에서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격렬하게 충돌해 온 두 종교 문명이다. 두 세계의 충돌은 문명과 제국의 흥망을 바꿔 온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라 할 수 있다. 7세기 아라비아사막에서 시작된 작은 종교 이슬람은 지하드(성전·聖戰)로 끊임없이 기독교 영토를 공격하고 이에 맞선 유럽 세계의 대응은 약 1400년에 걸쳐 이어졌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와 분쟁 전문 저술가인 저자는 이러한 장기적 충돌의 배경을 이슬람의 종교적 교리에서 찾는다.

“‘코란’의 여러 구절과 정전(正典) ‘하디스’는 지하드를 가장 고귀한 행위로 묘사한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길에서 전투 대열에 참여하는 것은 60년 동안 예배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슬람 이전 부족사회의 습격은 보상이 현세적인 전리품에 제한됐고 죽음의 위험이 따랐던 데 반해, 신성화된 습격인 지하드는 현세와 내세에서 보상을 제공했다. 이교도들에 대한 습격이 성공하면 생존자들은 약탈품과 노예(첩으로 삼을 수 있는 여성 포함) 등 전리품을 보장받았다. 지하드 도중 전사한 사람은 내세에서 비슷하거나 더 큰 보상을 약속받았다. 어느 경우든 그들에게는 이득이었다.”(33∼34쪽)

저자는 책 서론에서 이같이 이슬람이 지속적으로 지하드를 펼치는 이유를 설명하며, 약 1400년에 걸쳐 두 세계가 패권을 두고 격돌한 여덟 차례의 결정적 전투를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낸다.

 

레이먼드 이브라힘/이재황 옮김/책과함께/3만3000원
레이먼드 이브라힘/이재황 옮김/책과함께/3만3000원

첫 번째로 제시되는 전투는 636년 벌어진 야르무크 전투다. 이 전투는 이슬람제국의 대확장 시대를 연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갓 등장한 이슬람 세력은 당시 강대국이었던 동로마제국 군대를 격파하며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장악했다. 아라비아반도에서 시작된 이슬람 세력의 팽창은 이후 이집트와 북아프리카까지 이어졌고, 수세기 동안 기독교 중심지였던 중동지역의 종교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두 번째 전환점은 717년의 콘스탄티노폴 포위전이다. 이 전투는 유럽 문명의 동쪽 관문을 지켜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아랍의 이슬람 세력은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을 공격해 유럽 진출을 노렸다. 그러나 황제 레오 3세가 이끄는 동로마제국은 해상전에서 비밀 무기 ‘그리스 화염’을 활용해 적 함대를 격파했다. 혹독한 겨울과 보급 부족까지 겹치면서 이슬람군은 결국 철수했다. 이 승리는 단순한 도시 방어를 넘어 유럽 전체를 지켜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732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투르 전투는 서유럽의 운명을 가른 전투로 꼽힌다.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한 뒤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크왕국으로 진격했다. 이때 프랑크왕국의 장군 샤를 마르텔이 군대를 이끌고 맞섰다. 격전 끝에 프랑크군이 승리하면서 이슬람 세력의 서유럽 확장은 사실상 멈추게 된다. 많은 역사학자는 이 전투가 없었다면 유럽의 종교 지형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11세기 만지케르트 전투(1071년)는 동로마제국의 운명을 바꿔 놓은 사건이었다. 셀주크 투르크의 술탄 알프 아르슬란은 동로마 황제 로마노스 4세 디오게네스의 군대를 격파하고 황제를 포로로 잡았다. 이 패배로 동로마 제국은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잃었고, 결국 서유럽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이는 훗날 십자군전쟁이 시작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사건은 십자군전쟁이다. 이 십자군 세력의 몰락을 가져온 전투가 바로 하틴 전투(1187년)다. 이슬람군을 이끈 인물은 전설적인 지도자 살라딘이었다. 그는 십자군 군대를 포위해 거의 전멸시키고 예루살렘을 탈환했다. 이 사건은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를 되찾기 위한 제3차 십자군 원정이 시작됐다. 그러나 십자군 국가들의 운명은 이미 기울고 있었다.

 

이슬람 세력이 수세로 몰리기 시작한 전환점은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1212년)였다. 스페인의 기독교 왕국들이 연합해 북아프리카의 알모하드 군대를 격파한 이 전투 이후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은 급격히 약화된다. 이 승리는 이후 수세기에 걸친 레콩키스타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고, 결국 1492년 그라나다 함락으로 이어진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 함락으로 동로마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거대한 대포와 병력을 동원해 난공불락의 도시를 무너뜨렸다. 이후 유럽에서는 오스만제국에 대한 공포가 확산됐다. 동시에 많은 학자가 서유럽으로 이동하면서 르네상스 문화 확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스만제국의 유럽 팽창을 막은 1683년 빈 전투. 책과함께 제공
오스만제국의 유럽 팽창을 막은 1683년 빈 전투. 책과함께 제공

수세에 몰린 유럽을 구한 결정적 전환점은 빈 전투(1683년)였다. 오스만제국은 대군을 이끌고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포위했다. 그러나 폴란드 왕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이끄는 기독교 연합군이 구원군으로 도착하면서 전세가 뒤집혔다. 이 전투 이후 오스만제국의 유럽 팽창은 사실상 멈추게 되었고, 역사의 주도권은 점차 유럽 국가들로 넘어가게 된다. 이처럼 어떤 시대에는 이슬람 세력이 압도적으로 확장했고, 또 다른 시대에는 기독교 세력 반격하며 균형이 뒤집혔다.

저자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신의 이름’으로 벌였던 전투들을 통해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야망이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는지를 보여주며 “기독교와 이슬람은 본질적으로 화해가 불가능한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더불어 최근의 미국과 이란 전쟁 역시 이러한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 사이에 축적된 역사적 불신과 갈등 구조 속에서 해석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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