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장터의 공기는 유독 향긋하다. 얼어붙은 땅을 뚫고 올라온 냉이와 달래의 알싸한 향은 겨우내 잠들었던 감각을 깨운다. 이맘때면 식탁 위에 오른 초록빛 나물들을 마주하며 ‘가장 우리다운 봄의 맛’을 즐기곤 한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가 이토록 친숙하게 여기는 ‘우리 맛’의 뿌리는 과연 어디까지 닿아 있을까.
사실 우리가 ‘전통’이라 믿는 식탁의 풍경은 수많은 ‘이주’가 빚어낸 합작품이다. 한국인의 정체성과도 같은 김치의 매운맛을 내는 고추는 실은 16~17세기가 되어서야 이 땅에 도착한 이방인이었다. 그 이전 조상들이 먹던 김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하얀 모습이었다. 낯선 곳에서 온 고추가 토종 배추와 만나 비로소 오늘날 붉은 빛깔의 김치가 완성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잔칫날의 주인공인 잡채 속 당면은 18세기 중반에 들어온 고구마에서 왔고, 이름부터 ‘오랑캐가 전해준 박’이라는 뜻을 가진 호박 또한 먼 길을 거쳐 이 땅에 안착했다. 대대손손 이어온 맛들은 사실 낯선 씨앗들이 이 땅의 기후와 사람을 만나 천천히 식탁의 주인공으로 스며든 결과물이다.
고추의 매운맛을 처음 접했던 조상들도 처음에는 그 생소함에 고개를 저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낯섦이 익숙함으로 변하는 시간 동안, 우리의 식탁은 이전보다 훨씬 풍성하고 다채로워졌다.
3월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낯선 것들이 뿌리를 내리는 계절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새 학년을 맞아 처음 만난 친구와 짝꿍이 되고, 봄 이사철에 새로 이사한 사람들은 옆집 이웃과 조심스레 첫인사를 나눈다.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다른 모습의 이웃이나 서툰 한국말로 말을 건네는 이들도 이 3월의 풍경 속에 함께 있다.
식물은 뿌리 내릴 땅을 미리 가리지 않는다. 바람을 타고 날아왔든 누군가의 손에 들려왔든, 3월의 대지는 제 품에 닿은 씨앗들을 가만히 보듬어 안는다. 대지에게는 씨앗의 고향이 어디인지보다, 이 씨앗이 틔워낼 새로운 싹이 올봄의 풍경을 얼마나 더 아름답게 만들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즐겨 먹는 된장찌개 속 호박이, 어제 먹은 떡볶이 속 고추가 사실은 머나먼 길을 거쳐 우리 곁에 안착한 존재들이었음을 기억해 보면 어떨까. 낯선 존재가 우리 곁에 뿌리를 내려 익숙한 풍경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삶의 폭을 더 넓혀주기도 한다.
전통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변해가는 흐름이다. 가장 한국적인 맛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어쩌면 낯선 향기조차 한국적으로 융합해 낸 유연함에 있었을 것이다.
올봄, 식사 자리에서 마주하는 소박한 재료들의 긴 여행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3월 장터의 봄의 향기는 우리가 모두 이 긴 여행을 함께하는 귀한 인연임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듯하다.
양경은 성공회대 사회융합학부 사회복지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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