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남정훈 기자] 대만 일부 언론과 대만 일부 팬들의 ‘한국야구의 보물’ 문보경(LG)을 향한 ‘억까’(억지로 까다)와 SNS 테러가 너무나 추하고 비상식적이고 괘씸하기까지 한데, 일본 현지 취재를 다녀와 보니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대만 국민 전체가 야구에 진심이라는 게 이번 도쿄돔 현지 대만 팬들의 응원 열기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문보경은 지난 9일 일본 도쿄도 분쿄구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 1라운드 호주와 C조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5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해 5타수 3안타(1홈런) 4타점 1득점의 ‘원맨쇼’로 한국 야구대표팀의 7-2 승리를 이끌며 17년 만의 WBC 본선 1라운드 통과의 일등공신이 됐다.
이날 한국은 바늘구멍 같은 경우의 수와 싸워야 했다. 승리는 당연하고, 그 승리에도 어려운 조건이 붙었다. 정규이닝 기준 2실점 이하, 5점차 이상의 승리가 필요했다. 2실점 이하를 내주더라도 콜드게임으로 이겨선 안됐다. 수비이닝이 필요하기 때문. 게다가 5회, 7회 콜드게임 승리를 하지 않더라도 8,9회에 설사 100점을 내도 3실점을 하는 순간 조 2위는 물 건너가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보경은 2회 선제 결승 투런포를 시작으로 3회 적시 2루타, 5회 펜스 직격 적시타를 때려내며 이날 한국이 낸 7점 중 4점을 책임졌다. 물론 이날 경기에서 수훈갑은 너무나 많았다. 선발 손주영(LG)의 1이닝 만의 갑작스런 강판 속에 부랴부랴 마운드에 올라 2이닝을 삭제시켜준 투수진 최고참 노경은(SSG)을 비롯해 8회 1사에 올라와 9회말까지 아웃카운트 5개를 책임져준 조병현(SSG), 9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우중간을 가르는 타구를 멋진 슬라이딩 캐치로 잡아낸 주장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까지. 정말 그라운드에 선 모든 선수들이 힘을 모아 바늘구멍 같은 경우의 수를 뚫어냈지만, 역시 일등공신은 경기 초반 점수를 뽑아내주며 일찌감치 승기를 굳혀준 문보경을 꼽을 수 있다.
대만 팬들이 문보경에게 뿔이 나고, 대만 언론이 ‘승부조작’까지 운운하는 건 문보경의 미친 타격감 때문이 아니다. 한국이 7-2로 선 9회초 2사 1루에서 문보경이 당한 3구 만에 당한 ‘루킹 삼진’ 때문이다. 대회 내내 한국 타선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았던 문보경이 그 상황에서 3구 만에 그것도 방망이를 내지도 않고 삼진을 당한 건 고의로 삼진을 당한 게 아니냐는 게 문보경의 SNS 게시글에 악플 세례를 퍼붓는 대만 팬들의 주장이다.
문보경이 그 타석에서 안타나 홈런을 쳐서 한국이 8점 이상을 내고, 한국이 9회말 수비에서 1실점 이상을 하면 대만이 8강에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대만 팬과 대만 언론은 마치 문보경이 대만이 올라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일부러 삼진을 당했다는 생각하는 듯 하다. 대만 매체 ‘NOWnews’는 지난 9일 “한국이 9회초 일부러 공격하지 않았아 7-2로 호주를 꺾고 8강에 진출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몰지각한 대만 팬들은 이런 주장을 넘어 인신공격적인, 인격 모독성의 악플도 쏟아냈다.
문보경이 일부러 삼진을 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설령 일부러 당했다고 한들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안현민의 희생플라이로 7점째를 뽑은 한국으로선 이후 타선이 8점을 내든, 100점을 내든 상황은 달라지는 게 없다. 이미 두 점을 내준 상황에서는 9회말 수비에서 한 점도 내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8회 1사부터 올라온 조병현에게 9회 마운드를 맡기는 게 정해져있었다면 조병현의 어깨가 식기 전에 빨리 삼진을 당하는 게 문보경에겐 승리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지극히 합리적인 플레이다. 강우콜드 상황이 나올 것 같을 때 이기고 있는 팀에선 초구에 배트를 내서 일부러 빨리 아웃을 당해 5회를 넘기려고 하는 모습도 나오지 않나. 본인 팀의 승리 확률을 높이려는 플레이에 대해 대만 팬들이나 대만 언론이 비난할 권리도 없거니와 논리조차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대만 팬들과 대만 언론이 들끊고 난리라도 난 것 마냥 행동하는 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이번 도쿄돔 본선 1라운드 현장 취재에서 가장 놀란 것 중 하나는 대만 팬들의 열성적인, 아니 광기에 가까울 정도의 응원 열기였다. 일본에 사는 대만 현지 교민팬들도 있었겠지만, 대다수는 대만에서 일본으로 넘어온 원정 팬들이었다고 한다. 이번 3월 대만의 일본 여행객이 역대 최대라는 얘기도 들린다.
대만 팬들은 이번 WBC C조 조별리그의 ‘진 주인공’이라고 할 만큼, 매 경기 구름떼 같은 관중 동원력과 폭발력 있는 응원전을 펼쳤다. 심지어 개최국인 일본과 대만이 맞붙을 때도 관중 비율이 거의 5대5로 비슷할 정도였다. 한국과 대만의 맞대결에선 좋게 봐야 8대2 정도, 실제로는 9대1이나 9.5대0.5 정도로 도쿄돔을 가득 채운 관중 중 대만 팬들이 압도적인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한국이 대만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4-5로 패한건 투타에서 밀린 것도 있지만,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을 때마다, 땅볼이나 플라이가 나와도, 대만 야구의 일거수 일투족에 무조건적인 열광을 보낸 대만 팬들의 응원전 영향도 있을 것이다. 도쿄돔이 아닌 마치 타이베이돔에서 한국과 대만이 맞대결을 펼치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9일 한국의 기적이 완성된 한국-호주전에서도 대만 팬들을 다수 볼 수 있었다. 대만에게도 8강 진출의 경우의 수가 남아있으니 한국-호주전을 직접 보려는 대만 팬들이 꽤 많았다. 이 정도로 대만 팬들은 열성적이었다. 그러니 문보경을 향한 과도한 악플 세례와 ‘억까’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다만 이 기사를 쓰는 시점에서 문보경의 인스타그램 최근 게시물의 최근 댓글에선 일부 몰지각한 대만 팬들의 악플 세례에 대해 사과하는 대만 팬들의 댓글도 눈에 띈다. 이제 그들도 진정되기 시작한 모양이다.
한국은 KBO리그가 2024년 1000만 관중, 지난해엔 1200만 관중까지 넘어섰지만, 앞선 세 차례 WBC의 연이은 참사, 2020 도쿄 올림픽 ‘노메달’, 프리미어12 2024 조별리그 탈락 등 국제경쟁력 약화로 대표팀에 대한 기대가 떨어져서일까. 현지 응원 열기는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이번 WBC 기적의 8강 진출로 다시 한 번 대표팀을 향한 인기와 현지 응원 열기가 살아날 수 있을까. 2029 WBC 본선 1라운드가 혹시 또 도쿄돔에서 열리고, 대만과 한 조가 된다면, 그때는 대만과의 응원전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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