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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벌던 손으로 고기 썰고 호객”…연예인 자존심 던진 ‘지독한 제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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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기자 s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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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더미에 냄비 잡은 김수영, 30개 지점 CEO 김혜선, 아픈 아들 위해 ‘5000억원’ 판 문천식

지상파 황금시간대, 그들이 마이크를 잡으면 전국이 들썩였다. 한해 수입만 수십억을 찍으며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던 이들이다. 하지만 2026년 현재, 전 국민을 웃기던 그 주인공들의 모습은 180도 달라졌다. 누군가는 마트 앞치마를 두르고 냄비를 잡고, 누군가는 탄탄한 근육을 입은 사업가가 됐으며, 누군가는 5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신화를 썼다. 화려한 박수 소리가 잦아든 뒤 시작된 이들의 처절한 ‘생존 서사’, 엇갈린 운명이 교차하는 그 뜨거운 현장을 들여다봤다.

화려한 조명을 뒤로하고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일궈낸 김수영, 김혜선, 문천식의 현재 모습. MBN ‘특종세상’, 김혜선 SNS, MBC ‘코미디대상’
화려한 조명을 뒤로하고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일궈낸 김수영, 김혜선, 문천식의 현재 모습. MBN ‘특종세상’, 김혜선 SNS, MBC ‘코미디대상’

 

2011년 KBS 26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김수영은 등장과 동시에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당시 키 171cm에 몸무게 168kg이라는 압도적인 피지컬은 그 자체로 강력한 웃음 도구였다. 특히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였던 ‘아빠와 아들’에서 유민상과 함께 보여준 뚱보 캐릭터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큰 사랑을 받았다. 당시 그는 쏟아지는 광고와 행사 섭외로 연간 억대 수입을 기록하며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19세부터 쓰레기 수거와 고물상 일을 하며 개그맨의 꿈을 키웠던 그에게는 기적 같은 시간이었다.

168kg의 피지컬로 억대 연수입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개그맨 김수영. KBS ‘개그콘서트’
168kg의 피지컬로 억대 연수입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개그맨 김수영. KBS ‘개그콘서트’

 

하지만 2015년 ‘라스트 헬스보이’를 통해 70kg 이상을 감량하며 건강을 얻은 대신, 아이러니하게도 대중이 사랑했던 ‘뚱보’ 캐릭터를 잃었다. 외모가 변하자 거짓말처럼 섭외는 끊겼고 야심 차게 시작한 바나나 유통 사업마저 코로나 여파로 실패하며 수억원의 빚더미에 앉았다. 그는 결국 톱스타의 자존심을 과감히 내려놓고 대형 마트 앞치마를 둘렀다. 새벽 5시 모두가 잠든 시간 그는 마트 셔터를 올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화려한 무대 조명 대신 형광등 아래서 고기를 썰고 채소를 다듬는 그의 손에는 이제 분장 가루 대신 신선도를 체크하는 검수용 장갑이 끼워져 있다.

연예인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전국 마트를 누비며 주방용품 판매원으로 거듭난 김수영. MBN ‘특종세상’
연예인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전국 마트를 누비며 주방용품 판매원으로 거듭난 김수영. MBN ‘특종세상’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가장 힘든 시기 곁을 지켜준 아내였다. 그는 자존심을 버리고 주방용품 판매원이 되어 전국 마트를 누비기 시작했다. “부르면 부산이든 제주도든 간다”는 그는 5시간을 달려 도착한 지방 마트에서도 능숙하게 호객에 나선다. 판매가 쉽지 않을 땐 개그맨 시절의 개인기까지 꺼내 들며 분위기를 띄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불편했지만, 지금은 알아봐 주시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활력이자 감사함”이라고 고백한다. 아내에게 받은 사랑을 몇 배로 돌려주기 위해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그의 미소에는, 과거의 인기보다 더 단단한 가장의 행복이 서려 있다.

 

웃음을 위해 외모 비하를 감내하며 우울증과 싸워야 했던 김혜선의 개그맨 시절. MBN ‘특종세상’

 

2011년 KBS 26기 공채로 데뷔한 김혜선 역시 지독한 노력파였다. 그녀의 이름 석 자를 알린 것은 ‘개그콘서트’의 ‘최종병기 그녀’였다. 예쁜 여배우를 대신해 거친 액션과 몸개그를 도맡아 하던 그녀는 전 국민에게 누구보다 강한 여자로 각인됐다. 하지만 화면 밖의 삶은 고통이었다. 오직 웃음을 위해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고 거친 분장을 감내해야 했던 시간은 그녀를 깊은 우울증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직업적 회의감이 겹치며 그녀는 한때 방송 중단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민해야 했다.

독일 유학 후 근육이라는 ‘진짜 자존감’을 찾아 전국 30개 지점의 CEO가 된 김혜선. 김혜선 SNS
독일 유학 후 근육이라는 ‘진짜 자존감’을 찾아 전국 30개 지점의 CEO가 된 김혜선. 김혜선 SNS

 

결국 그녀는 돌연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타국에서의 외로움과 막막함을 견디기 위해 무작정 잡았던 바벨은 그녀에게 새로운 생존의 도구가 됐다. 거친 분장을 지운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은 그녀에게 잃어버렸던 자존감을 되찾아주었다. 단순히 몸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전국에 30개 이상의 지점을 둔 점핑 피트니스 기업의 수장으로 우뚝 섰다. 연예인 시절보다 훨씬 높은 억대 매출을 올리는 성공한 사업가가 된 그녀는, 넷플릭스 ‘피지컬: 100’ 등 글로벌 무대에서도 압도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과거의 인기라는 신기루 대신 스스로 일궈낸 근육이라는 실체를 선택한 그녀의 변신은 이제 수많은 이들에게 건강한 영감을 주는 독보적인 브랜드가 됐다. 여기에 독일인 남편 스테판 지겔과의 행복한 가정생활은 그녀가 찾은 또 하나의 보물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운동 브랜드를 세계로 확장하겠다는 그녀의 꿈은 매일 아침 단단해지는 근육만큼이나 견고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녀에게 운동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고 경제적 독립까지 일궈낸 인생의 가장 확실한 무기가 됐다.

 

2003년 “맞다고 봐”로 방송가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문천식의 전성기. MBC ‘코미디하우스 노브레인 서바이벌’
2003년 “맞다고 봐”로 방송가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문천식의 전성기. MBC ‘코미디하우스 노브레인 서바이벌’

 

1999년 MBC 10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문천식은 천재적인 연기력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2003년 ‘노브레인 서바이벌’에서 보여준 어리바리한 바보 연기는 “맞다고 봐”라는 전국적인 유행어를 낳으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당시 그는 드라마와 예능을 종횡무진하며 방송가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스타였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 뒤에는 남모를 슬픔이 있었다. 선천성 희귀질환을 안고 태어난 아들의 수술비와 치료비는 매달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났다.

아픈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쇼호스트로 변신해 일궈낸 눈부신 성과. MBC every1 ‘대한외국인’
아픈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쇼호스트로 변신해 일궈낸 눈부신 성과. MBC every1 ‘대한외국인’

 

그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화려한 예능 무대 대신 제품을 파는 전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처음 홈쇼핑 마이크를 잡았을 때 돌아온 것은 “연예인이 물건이나 판다”는 차가운 시선과 무시였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상품 설명서를 통째로 외우고 밤낮없이 제품을 공부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자존심을 버리고 판매 현장에서 10여 년을 버틴 결과, 5000억원에 달하는 누적 판매액은 그가 흘린 눈물과 책임감이 만든 승리의 증거가 됐다.

매일 생방송의 압박을 견뎌내며 아들의 건강과 가장의 자리를 지켜낸 문천식의 미소. SBS ‘백년손님’
매일 생방송의 압박을 견뎌내며 아들의 건강과 가장의 자리를 지켜낸 문천식의 미소. SBS ‘백년손님’

 

아빠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아들의 상태도 눈에 띄게 호전되어 이제는 건강한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아들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매일 생방송의 압박을 견뎌온 그의 시간은 이제 그를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현재 그는 홈쇼핑을 넘어 라디오와 각종 방송에서 신뢰감 있는 진행자로 활약하며 제3의 전성기를 살아가고 있다. 그의 삶은 유행어는 사라져도 진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하며,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정표가 되고 있다.

 

화려한 박수 소리 대신 선택한 삶의 도구들. 이들에게 노동은 단순한 생계가 아닌 자존의 증명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화려한 박수 소리 대신 선택한 삶의 도구들. 이들에게 노동은 단순한 생계가 아닌 자존의 증명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람들은 이들을 보고 한때 잘나갔던 연예인의 추락이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과거의 영광에 갇혀 오늘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실패라고. 마트 매대에서, 피트니스 센터에서, 혹은 홈쇼핑 스튜디오에서 이들이 묵묵히 흘리는 땀방울은 무대 위의 박수 소리보다 훨씬 뜨겁고 정직하다. 결국 삶의 진짜 주인공이 되는 비결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긍정하고 묵묵히 해내는 성실함에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한때의 인기를 뒤로하고 자신의 삶을 더 가치 있게 일궈냈다. 누군가에게는 초라해 보일 수 있는 마트 앞치마와 무거운 바벨이 이들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단단한 갑옷이자 날개가 됐다. 화려했던 시절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들의 미소는 진짜 인생은 조명 밖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가족의 행복과 개인의 성취를 위해 다시 뛰는 이들의 눈부신 제2막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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