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쟁으로 이달 국제 원유 가격이 43년만에 최대폭으로 상승하면서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환율마저 심리적 지지선인 1480원선을 넘보고 있어 수입물가마저 들썩일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 원유 수입의 약 70%가 중동산인 상황에서 국제유가 상승이 장기화되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인 2.0% 달성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중동 사태로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9일 오전 11시 ‘경제 및 물가 상황 점검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기로 했다.
◆국제 유가 90달러선… 43년래 최고
8일 금융권에 따르면,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지난 한 주간 35.63% 급등했다. 집계가 시작된 1983년 이후 역대 최대폭이다. 6일(현지시간) WTI는 전장 대비 12.21% 폭등한 배럴당 90.90달러에 마감하면서 90달러선을 돌파했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5월물도 주간 기준 28% 뛰었는데, 2020년 4월 이후 최대 상승률이다. 6일 종가는 92.96달러를 기록했다.
중동 사태에 따른 원유 수급 불안 우려가 커지면서 당초 낙관적인 전망치가 제시됐던 한국경제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앞서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로 지난해(1.0%)의 두 배인 2.0%를 제시했다. 메모리 반도체의 호조 속에 내수회복이 성장률을 끌어올릴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중동발 원유 수급 불안이 물가를 자극하고, 더 나아가 성장률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원유 수입의 70%를 중동에 의지하는 만큼, 그 충격이 더 클 것이란 관측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중동 사태로 호르무즈해협이 수개월간 봉쇄되는 경우 연평균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내외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한국 경제성장률이 0.3%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1%포인트 더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사태가 심각해져 연평균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뛰는 경우 경제성장률은 0.8%포인트 하락하고 물가상승률은 2.9%포인트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시티는 유가가 배럴당 112달러 수준을 유지한다면 한국 경제성장률이 1.07%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제시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2.0%)는 배럴당 62달러를 전제로 한 것이다.
정부는 중동 사태 이전부터 밀가루·설탕·계란 등 민생물가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유가가 오름세를 유지할 경우 시장에 전이되는 충격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2022년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로 치솟았다. 당시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이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를 취하면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선을 넘어서고 물가가 연쇄적으로 치솟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지수는 전년 대비 2.0% 오르며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치에 준했지만, 중동 사태에 따른 영향은 이달부터 본격 반영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란전쟁으로 경제 전반에 대한 우려가 커짐에 따라 9일 오전 11시 ‘경제 및 물가 상황 점검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한다. 회의에는 재정경제부와 산업통상부, 기후에너지부, 기획예산처, 농림축산식품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중동발 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국제 금융시장과 유가 등의 변동 상황, 증시와 환율 등 국내 경제 상황과 석유류 등 물가에 미치는 영향 등을 두루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중동 상황이 금융·에너지·실물경제 등 핵심적인 민생 영역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원·달러 환율도 고공행진… 1500원 넘보나
이란전쟁으로 인한 고환율도 물가와 경제성장률에 복병이다. 지난주 원·달러 환율이 1480원에 육박한 채 장을 마감한 가운데 이란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당분간 원화 약세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달 원·달러 환율 일일 변동성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금융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
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이란전쟁 발발 후 첫 거래일인 3일 26.4원 뛰어오른 뒤 이달 첫 주 내내 1460∼1470원대를 오갔다. 한국이 중동산 원유 등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다 보니 외환시장에서 원화 가치가 급락했다.
이달 들어 6일까지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 일일 변동폭(오전 9시∼오후 3시30분 주간거래 기준)은 평균 13.2원에 달한다. 이는 코로나19 공포가 고조됐던 2020년 3월의 13.8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환율의 월별 일평균 변동폭은 그간 드물게 10원을 넘겼다. 미국 관세 충격에 환율이 급등락했던 지난해 4월에도 변동폭은 9.7원이었다.
금융권에서는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환율이 1500원을 넘을 수 있다고 내다본다. 상단을 1600원까지 열어둬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직전 거래일인 6일 원·달러 환율은 주간거래에서 1476.40원에 거래를 마쳤다. 그러나 야간거래에서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1495원까지 치솟다가 2월 미국 비농업 부문 고용 급감 소식이 알려지며 다소 내린 1481.60원에 마감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중동 문제 장기화와 무력 충돌 확대, 호르무즈해협 봉쇄 현실화 땐 1530∼1600원까지도 열어둬야 한다”며 “조기 봉합되면 환율이 1430∼1470원 정도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란 사태가 2∼3개월 지속되면 달러인덱스 108, 환율 상단 1540원을 예상한다”며 “일주일 이내 종료되면 달러인덱스가 97∼99로 안정되면서 환율이 1440∼1470원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전자산 수요 증가에 따른 달러 강세도 원화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ICE선물거래소에서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의 가치를 반영한 달러인덱스는 5일(현지시간) 99.32까지 올랐다가 6일 미국 고용지표 부진에 전날보다 0.33% 내린 98.99를 기록했다. 전쟁 발발 전인 지난달 27일(97.61)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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