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간병·손녀 부양 얘기 뭉클
한밤 연로한 부모 숨소리에 안도
우리는 서로 돌보며 살아간다
조이 윌리엄스 ‘돌봄 Taking Care’(‘조이 윌리엄스 단편선’에 수록, 서민아 옮김, 기이프레스)
단편소설 쓰기에 관해 내가 아는 선에서, 장면을 그릴 때는 진술과 묘사 모두 필요하다. 진술은 이야기나 시간을 짧게 요약하기 위해서, 묘사는 시간을 정지시킨 채 순간의 느낌과 감각을 독자에게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가끔 장면도 없는 듯하고 묘사에도 관심 없어 보이는 소설을 만날 때가 있다. 한데 다 읽고 나면 머릿속에 이야기가 영화처럼 남는 듯한. 좋은 문장을 구사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좋은 문장을 쓴다는 건 멋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게 아니라 작가가 인물의 내면 깊숙한 데까지 들어갔다 나와 거기서 건져 온 걸 독자에게 내보이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여기, 오십 대 후반으로 짐작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34년째 설교를 해 오고 있는 목사이며 믿음으로 인해 야위었고, 평생 사랑에 빠져 살았지만 그건 너무나 확연하게 드러나서 오히려 무시당하는 사랑에 가까웠다. 아내는 혈액에 이상이 생겨 요양 병동에 입원해 검사와 치료를 받는 중이다. 스물세 살인 딸도 있다. 만우절이면 그의 담뱃갑에 콘플레이크를 채워 넣던 장난꾸러기. 그러나 지금 존스는 딸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딸이 만난 남자들은 다 어디서 왔고 왜 떠났을까. 어느 날 딸이 존스를 찾아왔다. 사랑 없이 낳은 아기와 함께. 불안으로 자신의 눈썹마저 다 뽑아버린 딸은 멕시코의 어느 산속으로 떠날 거란다.
몇 가지 이유로 그는 자신을 “늘 올바르게 행동해 왔지만, 그것은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딸에게 자신이 아기를 돌보겠다고 선뜻 동의한 이유는 “이것만이 그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개. 딸은 개 한 마리도 데리고 왔다. 그래서 지금 존스의 상황은 이렇다. 아내는 요양 병동에 있고 혼자 있던 집에 6개월 된 손녀딸과 개 한 마리가 새로 들어왔다. 설교 준비도 해야 하고, 빨래도 청소도 해야 하고, 병원에서는 더 이상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상황”이 되어 여기저기 이송되는 아내를 보러 가기도 해야 하는데.
아기는 몇 주 사이에 존스를 부쩍 의지하게 되었다. 우유를 먹이고 채소즙을 만들어주고 잠들 때까지 업고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전등을 껐다 켰다 하고, 첫눈이 내린 날 희고 깨끗한 세상을 보여주고 세례를 해주었던 그를. 개도 마찬가지다. 아내도 그렇다. 존스는 조금 분주해 보인다. 자신을 위해서, 마음을 돌보느라 어느 밤 존스는 딸이 가져왔던 음반을 틀어 노래를 듣는다. 이런 가사를 주의 깊게 듣는다. “나는 자주 생각하네, 아이들은 그저 잠시 밖에 놀러 나갔을 뿐이라고, 곧 다시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여기까지 ‘돌봄’의 줄거리를 쓰고 있자니 문득 이것이 전부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작가가 공들여 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깊은 감정과 의미를 전달할 방법이 내겐 부족해서.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졌을 때 존스는 그저 아기가 아니라 “자신의 작은 여행자”처럼 느껴지는 손녀딸을 아기띠에 메곤 눈길을 터벅터벅 걷는다. 자기 안의 뭔가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에는 그도 아내의 돌봄을 받았겠지. 예전에 부모의 돌봄을 받았던 것처럼. 냉장고에는 신도들이 가져다준 음식들이 가득 차 있다.
돌봄. 가끔 나는 이 단어를 쓰고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부모를 돌보고 있다고 말할 때. 여든이 넘은 아버지는 아버지 자신을 돌보며 새벽에 일어나 일을 나가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돌보고, 실은 나는 나 자신만 돌보는지도 모르는데. 깊은 밤 거실에 우두커니 서서 양쪽 방 부모의 숨소리를 확인하곤 가만히 듣고 있을 때가 있다. 숨소리. 그러면 알게 된다. 내가 저 소리에 지금은 돌봄 받고 있는 거라고. 내가 돌보는 존재보다 지금의 나를 돌봐준, 안 보이는 존재에 대해 떠올려 본 적이 있는지. 우리는 모두 어떤 것을 돌보고 돌봄 받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크리스마스 날, 휠체어에 탄 아내가 병원 직원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존스가 세심하게 정돈해 둔 집으로. 아기, 개, 아내, 존스. 그들은 마침내 “함께 환하게 빛나는 방들로 들어선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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