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이 역사가 되는 현실…"학계와 언론이 제 역할 해야"
조선 왕조 500년사에서 '패륜'은 왕의 숙명 같은 그림자였다. 형제를 죽이는 것은 다반사였고 아버지의 여인을 죽이고 가둔 기록도 적지 않다. 그런데 유독 세조(수양대군)에게만 가혹한 악평이 따라붙는다.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죽였다는 원죄 때문이다.
세조를 향한 후세의 손가락질은 광해군과 비교하면 과한 측면이 있다. 광해군은 친형 임해군을 죽이고 의붓어머니 인목대비를 유폐했으며, 8살짜리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방에 불을 때어 죽였다. 역모 혐의를 조작해 숙청한 신하만 수천 명에 달하니, 그 잔혹함의 강도와 살상 규모만 놓고 보면 세조를 능가하고도 남는다.
그런데도 지금의 광해군은 백성을 아낀 자비로운 군주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폭군의 낙인을 지우고 그를 비운의 현군으로 탈바꿈시킨 결정적 분기점이 됐다.
영화 속 광해는 살해 위협 속에서도 기득권에 맞서며 궁녀의 끼니까지 챙기는 인간적인 지도자로 묘사된다. 광해군의 무자비한 숙청을 대의를 위한 결단이나 반정 세력에 의한 왜곡으로 치부하는 음모론적 시각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예술적 가공이 역사적 평가를 뒤바꾼 가장 극적인 사례는 명성황후, 중전 민자영이다. 역사 속 민씨는 세도정치로 국정을 농단하고 무속에 빠져 국고를 탕진한 인물이었다. 외척의 배를 불려 민생을 도탄에 빠뜨린 것도 모자라 권력 유지를 위해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민중을 도륙 내고 국격을 무너트렸다.
그러나 오늘날 대중이 기억하는 민씨의 모습은 역사적 실체와 거리가 멀다. 1995년 초연된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와 KBS 대하드라마를 거치며 그는 학정의 여왕에서 나라를 지켜려다 순국한 비운의 국모가 됐다. 일본 자객들의 칼날 앞에서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외치며 최후를 맞는 극의 설정은 과거의 모든 실정을 단숨에 덮어버렸다.
반면 세조는 국가 통치 규범을 확립한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카를 죽인 악인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영화 <관상>은 그를 잔인한 이리에 비유했지만, 세조가 처음부터 단종을 죽이려 했다는 사료나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친동생 금성대군의 복위 시도 전까지는 단종을 죽이라는 신숙주 등 공신들의 압박을 물리치며 갈등을 빚기도 했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으로 세조에 대한 비난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극적 긴장을 위해 영화 속 등장 인물과 정치 상황을 단선적으로 그린 결과, 이번에도 한쪽은 미화되고 다른 한쪽은 악마화되고 있다. 창작물은 어디까지나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영상 매체를 통해 반복 노출되면 허구가 사실처럼 인식되는 게 현실이다.
세조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영화 한 편에 광해군이 기득권에 저항하다 스러진 비운의 군주가 되고 뮤지컬 한 편에 민자영이 외세에 끝까지 맞선 의연한 국모로 굳어진 현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서 더욱 학계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창작과 사료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화려한 은막 뒤에 가려진 역사적 사실을 짚어내 알리는 일이다. 가짜가 진짜가 되지 않도록 흥행의 뒤편에서 진실을 수호하는 책임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연합>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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