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의 선아 엄마 ‘현남’, ‘마스크걸’의 오남 엄마 ‘경자’,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 엄마 ‘광례’…. 수많은 ‘엄마’의 얼굴로 관객을 울고 웃게 한 배우 염혜란이 첫 영화 주연작 ‘매드 댄스 오피스’(4일 개봉)로 스크린 중심에 섰다. 이번에 맡은 인물은 ‘일하는 엄마’ 국희다.
핏덩이 딸을 둔 채 남편과 사별한 국희는 홀로 아이를 키우며 쉼 없이 달려온 공무원이다. 늘 단단히 조여 맨 삶,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듯한 냉철함을 무기로 구청 기획과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런 엄마가 설계한 인생 궤도에 따라 딸 ‘해리’(아린)가 임용시험 합격 통보를 받은 날, 딸은 엄마의 숨막히는 통제와 일방적 삶의 방식에 반발해 가출을 감행한다. 국희의 완벽한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국희는 악성 민원인을 달래러 찾은 플라멩코 연습실에서 뜻밖의 해방감을 경험한다. 매 순간 갑옷을 입은 듯 힘을 주고 살아온 몸에 ‘힘을 빼는 법’을 처음으로 배우는 공간. 국희를 롤모델로 따르는 어리버리한 기획과 막내 직원 ‘연경‘(최성은)은 함께 춤을 배우며 점점 국희의 삶에 스며든다. 딸, 춤, 연경. 세 갈래의 바람이 국희의 경직된 일상을 뒤흔든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염혜란은 조현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중년 여성이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를 다룬 시나리오를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데, 평범한 인물이 변화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 ‘쉘 위 댄스’처럼 춤을 통해 해방감을 전하는 작품을 오래 좋아해왔다”고 덧붙였다.
십대 딸을 기르는 엄마이기도 한 그는 국희의 심리에 깊이 공감했다고 했다. 염혜란은 “많은 부모가 ‘내가 이 아이를 잘 안다’는 믿음으로, 또 ‘나와 닮은 이 아이의 시행착오를 줄여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자신의 잣대로 바라보지 않느냐”며 “아이에게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를 질리게 하는 충고를 멈추지 못할 때가 있다. 국희의 (통제적) 면모가 낯설지 않았다”고 말했다.
약 3개월간 플라멩코 연습에 매달렸지만, 춤을 통한 인물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일은 어려운 과제였다. 저예산 영화 특성상 촬영 회차를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도 쉽지 않았다. 특히 영화의 절정인 야외 플라멩코 공연 장면은 장마전선이 오락가락하는 찜통더위 속에서 햇볕이 드는 틈을 타 사흘간 몰아 촬영했다고.
첫 주연작이라는 부담도 적지 않았다. 그는 “연기만 충실히 해낸다고 끝이 아니더라”며 “현장에서 무엇이 막히고 있는지, 누가 고생하고 있는지까지 살피는 게 주연의 몫이라는 걸 배웠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도 “주연이라고 해서 모든 장면을 혼자 책임지는 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고, 내가 조금 아쉬운 부분은 다른 배우들이 채워줬다”고 강조했다. “조연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어요. ‘그간 (조연으로) 내가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구나. 주인공만 중요한 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었다.
극 중 국희는 ‘힘 빼는 법’을 모르는 인물이다. 염혜란은 자신에게도 그런 면모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극단 생활을 돌아보면, 혼자 과하게 열심히 해서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기도 했다”며 “힘을 빼면 모든 게 무너질 것 같다는 불안 때문에 늘 죽을 힘을 다하고, 불필요한 긴장을 안고 사는 편”이라고 했다. 이어 “그래서 이 작품이 내게 주는 메시지가 유독 컸다”며 “국희가 플라멩코를 통해 숨을 고르듯,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요즘의 화두”라고 말했다.
‘매드 댄스 오피스’는 사회 생활에서 충분한 성취를 이룬 경험 탓에 자신의 방식을 타인에게도 강요하던 중년 여성의 성장담이다. 직장 내 갈등과 모녀 갈등을 현실적으로 그리며, 일과 가정의 무게를 동시에 짊어진 여성의 고민을 비춘다.
염혜란은 “경력을 쌓고 성취를 이뤄낸 중년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 정말 많은데, 이들을 비추는 영화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며 “아래로는 내 마음 같지 않은 후배를, 위로는 바꿀 수 없는 상사를 상대해야 하는 ‘춤추는 공무원’ 캐릭터를 연기한 것만으로 보람차다”고 말했다.
“중년 여자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요. 더 다양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아직 다뤄지지 않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주연이든 조연이든 중요하지 않아요. 새로운 역할을 만난다면 기쁜 마음으로 뛰어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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