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안 개정을 추진 중이다. 대형마트가 규제에 묶인 사이 쿠팡이 새벽배송 시장을 독점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은 외면한다는 비판이 커지자, 정부·여당이 대형마트의 시장 진입을 길을 열어 쿠팡의 독주에 견제구를 날린 모양새다.
이는 새벽배송에 익숙해진 맞벌이 부부와 청년 세대의 표심을 공략하려는 외연 확장 정책으로도 풀이된다. 다만 새벽배송 인력의 건강권 위협과 소상공인의 생존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 입법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쿠팡 전횡 막고, 국내 기업 역차별 해소해야”
민주당은 그간 ‘고객정보 유출’, ‘과로사 논란’, ‘입점업체 갑질’ 등 각종 구설 속에서도 몸집을 불려온 쿠팡을 정조준하고 있다. 특히 김범석 의장 등 경영진이 국회 청문회에 불출석하며 비협조적 태도를 보이자, 규제 완화를 통한 경쟁 촉진으로 쿠팡의 독점 체제를 깨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지난 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해외 기업들의 독점으로 인해서 시장의 독점으로 인해서 국내 기업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외국 온라인 유통기업의, 사실상 국내 새벽 배송시장의 독점이 이번에 우리가 쿠팡 사건으로 우리가 톡톡히 목격을 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 최고위원은 이어 “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이번 쿠팡 사태에서 온갖 전횡을 하면서도 전혀 성찰하지 않고, 국내에 여러 조사 과정에 대한 협조조차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오만한 태도로 일관하는, 국내 소비자를 무시하는 이런 태도를 해결할 수 없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며 대형마트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본래 대형마트 새벽배송 금지 규제는 2012년 전통시장 보호와 근로자의 휴식권 보장을 위해 도입됐다. 당시 정치권은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제한함으로써 노동권과 소상공인 상생에 힘을 실었다.
본래 대형마트 새벽배송 금지는 2012년 전통시장 보호와 근로자 휴식권 보장을 위해 도입됐다. 당시 정치권은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제한하며 노동권과 상생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이 규제가 도리어 쿠팡의 독주를 방치했다는 역설적 분석이 나오며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지난 8일 고위 당정협의회에서는 새벽배송 허용을 포함한 대형마트 규제 합리화 방안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고, 일각에선 마트 의무휴업 제도 폐지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쿠팡·대형마트 속도경쟁에 피해는 소상공인 몫
골목상권은 즉각 반발했다. 대형마트 규제 완화가 쿠팡을 잡기보다 새벽배송 시장 전체를 키워 ‘제2, 제3의 쿠팡’만 양산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인태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은 이러한 상황을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인 이사장은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정책을 할 때는 항상 의도가 있는데 결과물이 엉뚱할 수 있다”며 “쿠팡과 대기업을 경쟁하게 만들면 중간에서 자영업자가 터진다”고 강조했다. 소상공인연합회·전국상인연합회·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공동성명을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은 소상공인을 사지로 내모는 처사”라며 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제도가 골목상권의 최후의 안전망임을 재확인했다.
노동권 보호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거세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과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지난 1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유통 생태계를 교란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쿠팡 독과점 문제의 핵심은 모두가 합의한 규칙을 무시하고 시장을 장악한 일방적 지배력에 있다”며 “거대 플랫폼이 가격과 배송 조건, 거래 질서를 좌우하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대형마트까지 밤샘 배송을 허용하면, 노동자를 갈아 넣는 경쟁 방식이 유통 산업 전체로 퍼지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우철 마트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소비자 편의와 기업 이윤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며 “심야 노동에 대한 안전망 논의조차 없는 상태에서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민욱 전국택배노동조합 쿠팡본부 본부장은 “정부는 ‘택배노조 과로사 방지를 위한 3차 사회적 대화’ 합의안을 마트 새벽배송에도 준용하겠다고 하지만, 실제 논의에서는 야간노동 제한 원칙이 후퇴하고 있다”며 “허용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에서 46시간, 현재는 50시간까지 논의되고 있는데, 주 50시간은 기준상 과로사로 인정되는 시간”이라고 성토했다.
◆‘설익은 입법’ 비판에 당정 “상생안 마련할 것”
이번 방침이 민주당이 견지해온 택배 노동자 보호 기조와 충돌하며 ‘설익은 입법’이라는 내부 비판도 나온다.
그간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택배 분야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택배 분류 전담인력 투입 △택배기사 사회보험료 원청 택배사 부담 △주 60시간·하루 12시간 초과 노동 금지 등을 점검하며 이에 참여하지 않는 쿠팡을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민주당 소속 한 초선 의원은 “대형마트 규제 완화는 기존에 당이 추진하던 정책 방향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며 “쿠팡 견제를 위해 성급히 추진된 측면이 없지 않다”고 했다.
당내서도 공개적 반발이 나왔다. 민주당 오세희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 견제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이 논의가 현실화된다면 골목 상권과 전통시장을 회복하기 어려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오 의원은 “정작 문제를 일으킨 쿠팡의 불공정 행위를 방치한 채 사회적 합의로 지켜온 유통산업발전법의 구조만 흔들어서는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며 “민생과 지역 경제에 직결되는 사안을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추진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상공인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했다.
노동계와 충분한 대화 없었음에도 정부가 앞장서 대형마트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여론의 지지가 높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9~10일 실시한 조사에서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에 대해 찬성한다는 응답은 62.5%로 나타났다.
당정은 거센 반발을 고려해 상생안 마련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소상공인이 소외되지 않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온·오프라인 시장이 공존할 수 있는 상생 방안도 빈틈없이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형마트가 새벽배송을 통해 얻는 추가적인 영업이익의 0.5~1% 수준을 상생협력기금으로 추가 출연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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