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권 위기 딛고 극적 금메달
한국 스포츠 역사의 새 장을 연 최가온(세화여고)이 자신이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며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던 비결을 ‘승부욕’으로 꼽았다.
최가온은 지난 12일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1차 시기 찾기 과정에서 치명적인 추락을 경험하며 중도 포기의 위기에 몰렸지만 마지막 3차 시기에 대역전극을 펼치며 대한민국 스키·스노보드 최초의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의 여운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14일 최가온은 밀라노에 개설된 코리아하우스를 찾아 기자회견을 갖고 그때의 감격을 다시 드러냈다.
최가온은 금메달 이후 “가족들한테 가장 많은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친구뿐 아니라 친구 부모님들께서도 다 저한테 축하 메시지를 많이 보내주셨다”고 운을 뗀 그는 “아직도 꿈 갖고 너무 행복하고 실감이 안 나는데 지금 잘 즐기는 중이다. 일단 한국에 가서 쉬면서 좀 어떤 걸 할지 생각해볼 것 같다”고 금메달 이후 이틀간 있었던 일들을 전했다.
금메달 당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역시 우상이었던 클로이 김이 먼저 다가와 최가온을 안아주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최가온은 당시를 떠올리며 “클로이 언니가 꽉 안아주는데 그때 정말 행복함과 뭔가 큰 우상을 넘어섰다는 그런 느낌도 들면서 좀 뭉클함이 딱 와 닿았다. 클로이 언니가 항상 저에게 좋은 말씀과 멘토 역할을 많이 해주셨기에 그래서 그때 또 눈물이 다시 터져 나왔다”고 감격했음을 드러냈다.
최가온은 또 “경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저도 모르게 클로이 언니가 또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계속 엇갈렸던 것 같다. 너무 존경하는 분이라 제가 그분을 뛰어넘으면서 되게 기쁘기도 하지만 조금 서운한 마음도 들었던 것 같다. 그 서운함은 어디서 오는 모르겠다”고 우상에 대한 존경과 그를 넘어서야 했던 양면적 감정이 교차했음을 드러냈다.
역시 1차 시기 추락한 뒤 파이프에 한참 쓰러져 있었을 때의 상황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최가온은 당시의 상황을 묻자 “바로 든 생각은 ‘다시 일어나야지’였다. 그런데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의료진원이 내려와서 이제 들것에 실려 가면 아마 병원에 가야 될 거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때 여기서 포기하기면 진짜 너무 후회할 것 같아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다음 선수가 내려와야 해서 빨리 지금 결정을 해야 된다는 독촉에 최대한 발가락부터 움직이기 시작해서 다시 일어나 내려왔던 것 같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덤덤하게 말했다.
사실 다시 일어섰지만 위기는 계속됐었다. 최가온은 당시 2차 시기 기권을 선언했다가 자신의 순번 직전에 다시 도전을 선언하기도 했다. 최가온은 “난 무조건 뛸 거라고 했지만 코치님이 ‘안 된다. 너는 지금 걸을 수도 없으니까 기권하자’고 해 기권을 신청했는데 걸어보면서 다리가 조금 나아져서 그때 다시 직전에 기권을 철회했다”고 그때의 긴박했던 상황도 알려줬다. 지금 몸 상태에 대해선 “무릎이 많이 아팠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진 상태다. 올림픽 전에 손목에 다쳤는데 그 부분은 한국 가서 체크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렇게 다시 일어서 파이프를 타며 극적인 우승을 일군 최가온이 이런 공포를 이겨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원래 겁이 없기도 하고 저는 승부욕이 겁을 이기는 것 같다. 언니 오빠들이랑 자라오면서 승부욕이 너무 세진 것 같다”고 말해 주위를 웃게 했다.
특히 그는 “1차, 2차 다 넘어지면서 몸도 많이 아팠지만 3차를 앞두고 긴장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계속 기술 생각만 했다. 코치님이 아프면 그냥 내려가라 했지만 끝까지 한번 타보자, 올림픽인데 그래도 다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임했다. 그리로 3차 런을 성공하니까 울음이 나왔다”라고 승부욕이 일궈낸 도전의 과정도 설명했다.
그렇다면 높이 도약해 허공을 가를 때 최가온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는 “공중에서는 일단 다른 생각은 없고 기술의 생각만 계속하는 것 같다. 랜딩에서는 내가 자주 이렇게 넘어지니까 허리를 펴야겠다 그런 기술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밝혀 어린 나이답지 않은 프로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 최가온은 클로이 김이라는 우상을 넘어서 스스로 우상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 스노보드 꿈나무들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스노보드라는 종목은 즐기면서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나도 어릴 때는 즐기면서 탔지만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앞두고는 부담을 갖기도 했다. 그래도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메달을 목에 건 최가온은 잠시나마 승부의 세계를 떠나 편안한 일상을 되찾을 예정이다. 밀라노에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느냐는 질문에 “밀라노도 좋지만 일단 15일 저녁 비행기로 한국에 간다. 할머니가 해주는 맛있는 밥이 먹고 싶다. 또한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를 하기로 했다. 스노보드 말고는 취미는 스케이트보드 타는 것”이라며 해맑은 10대의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최가온은 이번 올림픽에서 선보인 기술에 만족하고 있을까. 그는 “일단 제가 이번 올림픽 때 최고의 런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좀 더 완벽하게 기술을 완성도 높이고 싶고 멘탈적으로는 좀 시합을 많이 뛰면서 긴장하는 걸 좀 없애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자세다.
이날이 있기까지 최가온의 곁을 지킨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아버지 최인영씨가 있다. 최가온은 “어릴 때부터 아빠가 일을 그만두고 저랑 같이 이 길 걸어왔는데 많이 싸우고 그만둘 뻔할 때도 잦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아빠가 같이 와줘서 제가 이 자리에 지금 있는 거 같다. 정말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어릴 때부터 호흡을 맞춰온 벤 위스너(코치)의 공도 잊을 수 없다. 최가온은 시상식 후 자신의 SNS에 위스너 코치에게 금메달을 걸어주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오랜 기간 지도를 받았지만 그동안 고마움을 잘 표시하지 못해 이번에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를 든든히 후원해 준 기업들이 최가온의 금메달을 만든 숨은 공로자들이다. 최가온은 “CJ 비비고에서 해외에 나갈 때마다 항상 캐리어 한 짐씩 한국 음식을 싸주셔서 컨디션 조절이 어렵지 않았다. 또한 롯데에서는 가장 힘들었을 때 후원을 해주셔서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또한 신한은행도 항상 묵묵히 뒤에서 열심히 응원해주셔서 항상 감사하다”고 말했다. 특히 롯데 신동빈 회장은 2024년 최가온이 스위스 대회 중 허리 골절상을 입고 현지에서 수술을 받는 비용 8000만원 전액을 부담하기도 했다.
금메달의 영광이 있었지만 다시 현실로 고개를 돌리면 대한민국 스노보드 훈련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최가온은 “선수들이 노력으로 스노보드가 이번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 같다”라면서도 “한국에 하프파이프가 딱 하나 있지만 그것도 제대로 된 시설은 아니다. 일본은 여름에도 훈련할 수 있는 에어매트 시설도 있어 항상 일본에서 훈련하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좀 오랫동안 훈련하고 싶어서 그런 게 좀 생겼으면 좋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큰 위업을 이뤘지만 앞으로 갈 길이 더 많다. 이에 대해 최가온은 “빨리 꿈을 이룬 편이라 영광이다. 나는 목표를 멀리 잡지 않고 당장 내일 이렇게 하자는 생각이다. 더 열심히 해서 지금 나보다 더 잘 타는 스노보드 선수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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