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개정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케이 택소노미)를 반영해 한국형 녹색채권 및 녹색자산유동화증권 발행 지원사업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단순히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간 자본이 녹색경제로 유입될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번 정책의 핵심은 채권시장 접근성이 낮았던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데 있다. 발행 비용과 행정적 부담을 완화함으로써 녹색금융의 시장 저변을 넓히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이를 통해 녹색 전환 영역을 몇몇 대기업 중심에서 중소·중견기업까지 보다 폭넓게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녹색채권은 온실가스 감축,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 개선 등 환경 분야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금융 수단으로, 자금 사용 목적이 명확히 제한된다는 점에서 일반 채권과 구별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 구조와 함께 정책적 지원까지 결합한 상품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유인을 제공한다.
미국 금융·미디어 기업인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 기후 대응 정책과 규제가 일부 후퇴하는 흐름에도 올해 글로벌 녹색채권 및 관련 대출 규모는 사상 최고치인 9470억달러(약 1374조8546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적인 신용평가사 피치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문기업인 서스테이너블 피치(Sustainable Fitch)의 멜리사 척 ESG 투자 리서치 부문 부이사는 “친환경 투자가 더는 틈새 ESG 상품이 아니라, 핵심 인프라와 산업 투자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러한 글로벌 흐름이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녹색채권 시장은 최근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인다. 지난해 발행액은 6조5990억원으로 전년 대비 20.1% 감소했는데, 경기 둔화와 투자환경 악화에 기업들이 친환경 사업의 추진 속도를 조절한 결과로 해석된다.
그렇다고 투자 수요 자체가 위축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건설은 지난 21일 녹색채권 수요예측에서 목표액의 5배가 넘는 자금이 몰리자 발행 규모를 확대했고, 국내 건설사 최초로 K-택소노미 기준을 충족한 채권을 발행했다. 시장의 일시적 위축과 별개로 기준이 명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녹색 프로젝트에는 여전히 자본 유입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녹색채권 시장은 단기적으로 변동성을 겪을 수 있으나, 탈탄소 투자를 유도하는 실효성 있는 정책이 강화된다면 중장기적 성장 가능성은 크다. 전동화 확산과 함께 전력망 고도화, 재생에너지 확대 등 구조적 수요가 뚜렷한 분야를 중심으로 자본 유입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녹색채권 시장의 성패는 발행 규모를 얼마나 늘리느냐보다 조달된 자금이 녹색 전환에 제대로 사용되는지에 달려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를 기반으로 한 정책 지원 강화가 녹색 프로젝트의 정의를 명확하게 하고 있고, 또 그린워싱 논란을 완화함으로써 투자자 신뢰 회복과 민간 자본의 지속적인 투자를 기대하게 한다. 전 세계 흐름을 보더라도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인한 데이터센터 확대 및 냉방 수요 증가, 전기화 가속화가 에너지 인프라 투자 수요를 키우면서 기후 관련 자본 유입이 지속될 전망이다.
지금처럼 정부의 정책 일관성 의지와 시장 신뢰가 유지된다면 향후 녹색채권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목표와 민간 자본을 연결하는 핵심 금융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선정민 UN SDGs 협회 연구원 unsdgs.jeongm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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