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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찍고 4년 만에 돌아온 레베카+요시하라 매직...‘배구여제’ 없는 흥국생명, 봄 배구 넘어 대권도 노릴 수 있다 [남정훈의 오버 더 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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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1-15 11:53:52 수정 : 2026-01-15 11:53:51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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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은 지난 1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로공사와의 2025~2026 V리그 4라운드 홈경기에서 리시브가 낙제점이었다. 이날 흥국생명의 리시브 효율은 20%(21/85, 서브 득점 4개 허용)으로 도로공사(41.94%, 44/93, 서브득점 5개 허용)에 비해 2배 이상 낮았다.

높은 리시브 효율이 반드시 승리를 담보하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인다. 리시브가 세터 머리 위에 정확히 올라와야만 속공이나 외발 이동공격, 시간차, 퀵오픈 등 세트 플레이를 구사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리시브가 잘 올라오면 블로커들도 상대 세터가 어떤 공격 패턴을 가져갈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블로킹 봉쇄도 어렵다. 그래서 감독들이 리시브, 리시브 타령을 하는 것이다.

 

흥국생명의 리시브 효율이 2배 이상 낮았으니 세트 스코어 0-3 혹은 1-3 완패를 당해야 정상이지만, 이날 경기는 달랐다. 오히려 흥국생명이 세트 스코어 3-1 승리를 거뒀다.

이유는 간단했다. 흥국생명의 레베카 라셈(미국, 등록명 레베카)이 흔들린 리시브로 인한, 혹은 수비로 걷어져서 어렵게 올라오는 오픈 공격을 50% 이상의 확률로 득점을 연결시켜줬기 때문이다. 이날 레베카는 58번의 공격을 시도했는데, 그중 오픈 공격이 무려 33번에 달했다.(게다가 후위 공격 14개 중에도 상당수는 오픈성의 공격이 많았다. KOVO 기록 집계 시스템에서는 후위에서 시도하는 공격은 잘 세팅된 볼이건, 오픈성의 볼이건 모두 후위 공격으로 집계한다) 레베카는 33번의 오픈 공격 중 19개를 성공시켰다. 무려 57.57%의 확률이다. 레베카가 소위 말해 ‘긁히는 날’이었기에 흥국생명은 낮은 리시브 효율에도 3세트까지 접전 승부 끝에 2-1로 앞서나갔고, 4세트는 원사이드하게 끝내면서 승점 3을 온전히 챙길 수 있었다.

 

V리그에서 외국인 선수의 제1의 임무는 오픈 공격 처리다. 잘 세팅된 볼은 국내 선수들도 잘 처리할 수 있다. 외국인 선수는 흔들린 리시브나 디그로 걷어올려 어쩔 수 없이 높게 올려줄 수밖에 없는 오픈 공격을 도맡아 처리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으로 보면 레베카는 2025~2026시즌 여자부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일 기준 올 시즌 오픈 공격 성공률 부문 1위(41.87%)가 레베카이기 때문이다. 레베카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는 실바(GS칼텍스, 40.16%)나 모마(도로공사, 40.08%)도 오픈 공격에선 레베카 앞에선 한 수 접어야 한다.

그야말로 상전벽해와 같은 일이다. 레베카는 4년 전 V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다. 2021~2022시즌 IBK기업은행 소속으로 V리그에 첫 입성했던 레베카는 당시 등록명은 라셈이었다. 라셈 시절엔 기량 미달로 시즌 도중 퇴출됐다. 이후 4년 간 절치부심하며 그리스리그, 푸에르토리코리그에서 뛰며 기량을 갈고닦은 레베카는 다시 V리그의 문을 두드렸다.

 

과거의 전적 때문에 그리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고, 트라이아웃에서 마지막인 7순위로 흥국생명의 선택을 받았다. 시즌 전 레베카는 “나는 달라졌다. 이를 증명해보이겠다”라고 선언했지만, 시즌을 앞둔 선수의 호기로만 보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레베카의 호언장담은 그저 허장성세가 아니었다. 마치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점 하나를 찍고 돌아와 다른 사람처럼 연기했던 민소희(장서희 분)처럼 4년 뒤 돌아와 등록명을 레베카로 바꾼 그는 딴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폭발적인 점프력이나 압도적인 파워를 가진 건 아닌데, 기술적 완성도와 좀처럼 범실을 하지 않는 안정성을 갖추고 돌아와 단숨에 최고 수준 외국인 선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물론 레베카 개인의 기량 향상도 있지만, 레베카에게 오픈 상황에서도 잘 때릴 수 있게 예쁘게 연결해줄 수 있는 팀을 만들어낸 요시하라 토모코 감독의 공도 크다. 올 시즌 흥국생명의 지휘봉을 잡은 요시하라 감독은 불과 1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팀 컬러를 확 바꾸어 놓았다. 부임 후 공 하나 다루는 법부터 다시 가르쳤다는 요시하라 감독의 훈련 아래 흥국생명은 어느 팀보다 끈끈한 팀으로 변모했다. 연결 작업이나 블로킹 커버 등 디테일도 놓치지 않은 요시하라 감독의 흥국생명은 팀 지표는 평범한 수준이지만, 경기에서는 승리할 수 있는 ‘위닝팀’으로 거듭났다. 그야말로 ‘요시하라 매직’이라고 불러야할 듯하다.

요시하라 감독의 진가는 고정된 주전 없이 상황마다 다르게 가져가는 용병술에서도 빛이 난다. 지난 시즌 김연경의 아웃사이드 히터 대각 파트너로 뛰며 주목을 받았던 정윤주는 최근 주전을 뺏겼다. 리시브 약점이 도드라진 정윤주를 더블 체인지의 아포짓 자리에 기용하고, 아웃사이드 히터 한 자리는 안정성이 장점인 베테랑 최은지를 기용하고 있다. 여기에 원포인트 서버 역할에만 몇 년간 머물렀던 세터 김다솔을 더블 체인지의 세터에도 쓰는 등 선수단 전원을 고르게 활용하는 요시하라 감독이다. 프로 무대에서 은퇴했다가 다시 돌아온 이나연을 당당히 주전 세터로 만들어낸 것도 요시하라의 작품이다. 구단들이 외국인 감독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선수들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 없이, 현재의 기량과 장점만으로 팀을 만들어가길 바라는 것이다. 요시하라 감독은 이런 의도에 100% 부합하는 팀 운영을 가져가고 있다.

‘배구여제’ 김연경의 현역 은퇴로 인해 ‘디펜딩 챔피언’임에도 올 시즌 봄 배구 진출은 힘들 것이란 평가를 받았던 흥국생명이지만, 180도 달라져 돌아온 레베카와 ‘요시하라 매직’ 덕분에 흥국생명은 승점 39(12승10패)로 2위 현대건설(승점 39, 13승9패)와 승점 동률, 승패에서 뒤진 3위에 랭크되어 있다. 선두 도로공사(승점 46, 17승5패)와의 정면승부에서 압도해버렸으니 이제 봄 배구는 당연하고, 대권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 흥국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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