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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고마워, 앞으로 잘지내자” ‘학폭 갈등’ 대화로 푼다 [심층기획-화해 돕는 ‘학폭 관계회복 숙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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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1-15 06:00:00 수정 : 2026-01-14 18:29:07
김유나·차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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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경미한 학폭 사안 대화로 해결
서울시교육청, 지난해부터 시범 운영
당사자 동의 있으면 학폭위 심의 안 해
처벌 위주 벗어나 관계 회복에 ‘중점’

북부교육청, 170여건 조정… 80% 성공
아이들 대화 통해 갈등 해결 방법 배워
2026년, 서울 전체 초등학교로 확대 예정
학폭 대응 전환점·대화 문화 형성 기대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은 교사 A씨는 작년 초 학부모로부터 “같은 반 아이가 우리 아이를 괴롭힌다”는 연락을 받았다. 학부모는 “물건을 빼앗고 공을 던졌다고 한다. 학교폭력 아니냐”고 따졌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시작은 사소한 오해였다. 지우개를 떨어뜨렸는데 다른 아이가 주웠고, 주운 아이는 주인이 없는 지우개라 생각해 ‘내가 주웠는데 왜 달라고 하냐’며 돌려주지 않았던 것. 공에 맞은 것도 강당에서 수업 중 실수로 벌어진 일이었지만 상대방에 기분이 상해 일부러 던졌다고 오해한 상황이었다. A씨는 “아이들이 학교생활이 처음이라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데 집에 자신의 감정만 전하다 보니 학부모도 오해가 쌓였다”며 “잘 설명해 넘어갔지만 주변에선 비슷한 수준의 사안으로 학교폭력 신고가 됐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씁쓸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급식 줄 새치기’, ‘째려봄’….

실제 학교 현장에서 학교폭력으로 신고되는 사안들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과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대화로 충분히 풀 수 있는 경미한 사안까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에 올라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학교가 사법화됐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처벌 중심’의 사안 처리를 벗어나 ‘관계회복’에 중점을 두는 ‘학교폭력 관계회복 숙려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미한 신고↑… ‘교육적 해결’ 필요

14일 교육부에 따르면 2024학년도에 전국에서 접수된 학교폭력은 5만8502건으로 전년도(6만1445건)보다 줄었지만, 학교에서 해결되지 않아 학폭위에 넘어간 사안은 2만3579건에서 2만7835건으로 오히려 늘었다.

언뜻 보면 폭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는 통계처럼 보이나 실상은 다르다. 심의 사안 중 학교폭력이 아닌 것으로 판단돼 ‘조치 없음’으로 끝난 비중은 2021년 11%에서 최근 약 20%까지 올랐다. 예전 같으면 학교폭력으로 접수도 하지 않았을 사안도 신고가 들어가고, 학폭위까지 열린다는 의미다. 교육부 관계자는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은 ‘조치 없음’ 비율이 타 학년보다 압도적으로 많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선 ‘교육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소한 사안도 학폭위에 가면서 아이들끼리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은 반성 대신 신고 학생을 맞신고하는 등 학폭위가 오히려 사안을 악화한다는 것이다.

학교폭력 관계회복 숙려제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관계회복 숙려제는 잘잘못을 따지는 심의보다, 피해 회복을 위한 교육·상담을 통해 화해와 회복을 돕는 제도다. 교육부가 올해 3월부터 초 1·2학년을 대상으로 제도를 도입할 계획인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2학기부터 북부 등 6개 교육지원청에서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북부교육지원청의 경우 2023년 10월부터 조정을 돕는 ‘학부모 관계가꿈 지원단’을 자체 운영 중인데, 시범사업으로 활동이 더욱 늘었다. 현재 심사를 거쳐 선발된 학부모 지원단 조정가 19명이 활동 중이며, 지난해 11월에는 전·현직 교원 중 24명도 지원단에 합류했다. 이들은 일대일 예비상담과 가·피해 학생이 함께 만나는 본상담을 통해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가해 학생들은 사과문이나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약속문을 쓰기도 한다.

북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관계회복 숙려제는 학교폭력을 덮으려는 것이 아니다. 엄중히 다뤄야 할 사안은 엄중히 처리하고, 대화로 풀 수 있는 갈등은 해결하려는 것”이라며 “조정 과정에서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관계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진다. 단순히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요한 교육활동”이라고 밝혔다.

◆대화로 조정… 학생·학부모도 만족

현장 반응은 좋다. 북부교육지원청 지원단은 2024년 61건, 지난해 110건의 조정을 진행했으며, 약 80%의 조정에 성공했다. 초등학교에서 학급 단위 관계회복 수업을 진행해 지난해 관내 초등학교의 학교폭력 접수가 30% 이상 줄기도 했다. 북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교가 갈등을 중재하려 하면 ‘상대방 편을 든다’, ‘사안을 덮으려 한다’는 오해를 할 수 있지만, 교육지원청에서 진행하니 학부모 신뢰가 높고, 학교도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조사 결과 학생·학부모의 만족도는 97%에 달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아이들의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질 때도 많지만, 조정가들의 상담은 학부모가 안정을 찾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성나리 조정가는 “아이들은 금세 화해했는데 학부모 감정이 격해져 학폭위 절차가 계속 진행되기도 한다”며 “학폭위에 가면 ‘변호사 선임 안 하면 우리가 손해 본다’는 생각을 해 젤리 하나를 가져간 사안으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부모들은 속상한 마음을 제대로 말할 곳이 없어 감정이 풀리지 않을 때가 많은데 조정 과정에서 충분히 이야기를 듣고 대화하면 사안이 해결되기도 한다”며 “사태가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정 과정에서 학생도 성장한다. 자신의 감정을 차분히 표현하고, 대화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며 사과하는 경험은 학생들이 성장하면서 마주할 또 다른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조정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한 초등학생은 “친구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고, 사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한 중학생은 “프로그램 참여 전에는 내가 힘든 것만 보였지만 대화를 하다 보니 친구의 힘든 점도 보였다”고 말했다. 교원 지원단으로 활동 중인 이광섭 정의여중 교장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라며 “갈등 해결 과정에서 제도에만 의존하면 갈등 해결 능력은 현저히 줄어든다. 어른들이 대리 싸움하듯 다투기보단 아이들 스스로 갈등을 풀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교생 B양도 여러 명을 상대로 학교폭력 신고를 했다가 얼마 전 조정으로 사안을 마무리했다. 상담 결과 B양이 원하는 것은 처벌보다 가해자들이 가해 행동을 멈춰 다시 학교에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것이었고, 조정을 통해 가해 학생들로부터 남은 학교생활 동안 가해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지원단의 ‘삼고초려’ 끝에 참여했다는 B양은 “학교폭력 신고 뒤에도 해결되는 것 없이 시간만 흘러가 힘들었지만 조정 프로그램에서 상대 아이들에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하니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B양의 어머니는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할 정도로 힘들어했고, 경찰서와 학교에서 몇 번이나 똑같은 진술을 해 지쳐 있었는데 지원단에서 ‘앞으로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가해 아이들이 가해 행동을 멈출 방법이 뭔지 확인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겠다’고 해 고마웠다”며 “조정가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됐고 덕분에 아이도 잘 이겨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관계회복 숙려제를 관내 전체 초등학교에서 시행하는 등 제도를 더욱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초등학교에서의 관계회복 경험이 중·고교로 이어져 관계회복 문화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는 당사자 동의가 있어야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지만, 향후 교육적 개입이 절실한 사안에 대해선 학교장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학교폭력예방법·시행령 개정에도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동기획: 세계일보·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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