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역사에 ‘생도 1기’와 ‘생도 2기’라는 기수가 있다. 1950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터졌을 때 육사에선 두 기수 약 540명의 생도가 군사 교육을 받고 있었다. 1기생들은 소위 임관까지 보름이 남았고, 후배인 2기생들은 입교 후 불과 25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전세가 기울자 육군 지휘부는 이들 생도까지 최전선에 투입했다. 목숨을 건진 이들은 약식으로 장교 임관을 했으나, 3년의 전쟁 기간 생도 1기와 2기를 더해 무려 245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전후 생도 1기는 육사 10기로 공인됐지만, 생도 2기는 그들보다 늦게 입교하고 전투 경험도 적은 육사 11기의 반대로 끝내 육사 정식 기수에 편입되지 못했다. 1996년 육사 명예 졸업장을 받은 게 전부였다.
1965년 10월4일 강원 홍천에서 육군 맹호부대(현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1연대 3대대 예하 중대의 훈련이 한창이었다. 그들은 베트남 전쟁 파병을 앞두고 있었다. 육사 16기 출신의 중대장 강재구 대위(당시 28세·사후 소령으로 추서)는 병사들의 수류탄 투척 연습을 감독했다. 어느 이등병이 실수로 그만 수류탄을 땅에 떨어뜨렸고, 강 대위는 순식간에 자기 몸을 날려 수류탄 위를 덮쳤다. 비록 그는 부인과 생후 14개월 된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으나, 중대원들은 모두 목숨을 건지고 5명이 경상을 입는 데 그쳤다. 강 소령의 살신성인 정신을 기리고자 맹호부대 1연대 3대대에 고인의 이름을 딴 ‘재구(在求)대대’라는 명칭이 부여됐다. 재구대대 초대 대대장을 지낸 이가 육사 생도 2기 출신인 박경석(93) 예비역 준장이다.
영웅의 후예들은 달라도 뭐가 다른 걸까. 베트남에 상륙한 재구대대는 맹호부대 중에서도 선봉에 서서 숱한 전공을 세웠다. 1966년 2월 치호아 전투가 대표적이다. 당시 재구대대 중대장 이재태(1937∼2020) 대위는 중대원들을 지휘해 베트콩과의 교전을 독려하던 중 관통상, 갈비뼈 골절상 등을 입었다. 당장 야전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이 대위는 후송을 거부했다. 심지어 주월(駐越)한국군 사령부 채명신 사령관(당시 육군 소장)에게 “후송 중단을 지시해 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병원에 가서도 군의관에게 “다친 부하들부터 먼저 치료하라”고 당부한 뒤 부상 중대원들이 모두 수술실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참으로 불굴의 군인 정신이 아닐 수 없다.
‘치호아의 영웅’ 이재태 대위는 월남전 후에도 육군에 남아 별 둘, 소장까지 진급하고 전역했다. 그가 고(故) 강재구 소령과 1937년생 동갑내기이자 육사 16기 동기생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뜻밖의 사고로 일찍 유명을 달리한 동기생 이름을 딴 재구대대에서 중대장으로 복무하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군 생활에 임했을 지 가히 짐작이 간다. 새해 들어 ‘1월의 호국 인물’로 선정된 고 이재태 장군의 현양(顯揚) 행사가 지난 8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렸다. 고인의 부인 배광자씨, 성일종 국회 국방위원장, 김권형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부사단장, 윤각규 맹호전우회 회장 등 주요 참석자들 사이에 재구대대 초대 대대장 박경석 장군도 눈에 띄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치호아 전투 현장에서 고인을 부하로 데리고 싸운 박 장군의 심경이 어떨 지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숙연해진다.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전업자녀](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1/11/128/20260111509892.jpg
)
![[특파원리포트] 21세기 ‘흑선’ 함대에 마주선 한·일](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1/11/128/20260111509858.jpg
)
![[박영준 칼럼] 美 국방전략 변화와 한·미 동맹 과제](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1/11/128/20260111509810.jpg
)
![[심호섭의전쟁이야기] 과감한 결단이 얻어낸 ‘전장의 운’](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1/11/128/20260111509814.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