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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참부모, 세계를 품다 [역사와 신학에서 본 한민족 선민 대서사시 -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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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1-05 10:51:11 수정 : 2026-01-05 10: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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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9월 18일, 워싱턴 D.C. 숨이 막힐 듯한 더위 속에서 워싱턴 기념탑 앞 광장은 인파로 가득 찼다. 공식 추산 30만 명. 폭염에 대비해 30대의 구급차가 대기했지만, 5시간이 넘는 집회 동안 자리를 뜬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날 사람들을 붙잡아 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이벤트가 아니었다. 연단에 선 한 한국인 목사의 외침이 미국 사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질문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워싱턴 모뉴먼트 대회(1976년 9월 18일)’.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해 문선명 목사는 미국 시민 30만여 명 모인 자리에서 건국 정신의 회복을 외쳤다.

“신은 미국을 사랑하십니다! 미국은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베트남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고, 히피 문화와 도덕적 혼란이 사회 전반을 흔들던 시기였다. 건국의 신앙적 이상은 퇴색되었고,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면서도 방향을 잃은 영혼처럼 방황하고 있었다. 미국 건국 200주년에, 이름조차 낯선 한국인 목사가 던진 질문은 예언자적 경고처럼 울려 퍼졌다. 이 집회는 미국 종교사상 최대 규모의 야외 종교집회로 기록되었고, 그해 말 『뉴스위크』는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혈통의 전환: 양자에서 직계 자녀로

 

1961년 4월 16일, 서울 청파동 교회. 36쌍의 부부가 함께 축복결혼식을 올렸다. 수로만 보면 미미했지만, 그날 일어난 일은 양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감람나무 비유를 들었다. 돌감람나무 가지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이면 참 진액을 받아 참열매를 맺는다. 구약시대 인류는 율법 아래 ‘종’이었고, 신약시대에는 영적인 예수님과 성령을 통해 ‘양자’가 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고백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9). 양자는 법적으로는 자녀지만, 혈통은 여전히 다른 곳에서 온 것이다.

 

이제 실체 참부모를 통해 ‘직계 자녀’가 되는 길이 열렸다. 혈통의 근원 자체가 바뀌는 것. 축복받은 부부들은 타락한 혈통을 끊고 하늘부모님의 직계 자녀로 거듭나겠다고 엄숙히 서약했다.

 

36가정은 씨앗이었다. 1962년 72가정, 1968년 430가정, 1982년 2,075쌍. 축복결혼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1988년, 역사의 가장 깊은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결단이 내려졌다. 한일 교차·교체 축복결혼. 불과 40여 년 전까지 식민 지배와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로 맞서 있던 두 민족. 한국 청년과 일본 청년은 국경을 넘어 서로의 나라로 시집가고 장가갔다. 수만 쌍의 결혼. 정치 협상이나 사과 성명으로는 풀 수 없던 원한이, 참사랑으로 녹아내렸다.

 

1992년 3만 쌍 축복식. 30여 년간 세계 곳곳에서 쌓아온 실천. 그 위에서 참부모는 선언했다. “나는 인류의 구세주, 참부모, 메시아입니다.” 1999년, 4억 쌍. 초인종·초종교·초국가의 장벽을 넘은 결혼. '전쟁을 할 수 없는 인류'를 만들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평화 전략이었다.

 

미국을 깨우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1971년 참부모는 세계선교본부를 미국으로 옮겼다. 군사·경제적으로는 최강국이었지만, 영적으로는 황무지에 가까운 땅이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과 1968년을 전후해 서구 사회 전반에서 전개된 학생·청년 중심의 반전·반권위 운동인 68혁명의 여파로 젊은이들은 마약과 프리섹스에 빠졌다. 대학가는 무신론과 허무주의에 잠식되어 있었다. 참부모는 스스로를 “미국을 살리러 온 소방관이자 의사”라고 했다.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 양키스타디움, 그리고 워싱턴 모뉴먼트로 이어진 세 차례의 종교집회는 미국의 양심을 뒤흔들었다. 

 

“미국은 하나님이 세우신 ‘섭리적 장자 국가’입니다.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이 땅에 왔을 때, 그들의 꿈은 ‘언덕 위의 도시’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종교의 자유, 하나님 중심의 국가. 그러나 지금 미국은 그 꿈을 잃어버렸습니다. 돌아오십시오! 하나님께로!” 

 

1975년 4월, 베트남 공산화. 같은 해 6월 7일, 서울 여의도에 120만 명이 모인 구국세계대회가 열렸다. 냉전 최전선 한반도에서 울린 자유와 애국의 함성이었다. 1980년대, 참부모는 워싱턴 타임스를 창간하여 레이건 대통령의 핵전쟁을 억제하려는 전략방위구상(SDI), 이른바 스타워즈 계획을 지지했다. 소련은 핵무기 경쟁을 포기했다. 냉전의 균열이 시작되었다.

 

평화를 위한 큰 발걸음: 크렘린에서 평양까지

 

참부모의 사랑은 이념의 적대선도 넘었다. 공산주의는 그에게 추상적인 대상이 아니다. 평양 대동보안서의 고문, 흥남 수용소의 혹독한 노동, 처형 직전의 소름 돋는 기억이 몸 마디마디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원수를 심판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1990년 크렘린궁에서 고르바초프를 만났고, 1991년에는 흥남 마전 주석궁에서 김일성을 만났다. 

 

“이산가족을 만나게 하십시오. 핵을 버리십시오. 함께 번영합시다.” 

 

피해자가 먼저 손을 내미는 탕감복귀의 원리가 현실 정치의 한복판에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냉전의 붕괴는 단지 체제의 변화가 아니라, 참사랑이 통하기 시작한 징표로 읽을 수 있다.

 

참부모는 미래 문명까지 내다보았다. 태평양 시대를 향한 국제하이웨이 구상, 한일해저터널과 베링해협터널, 그리고 분단의 상징 비무장지대(DMZ)를 평화의 중심으로 바꾸려는 제5 UN사무국 유치 비전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공간 자체를 섭리의 무대로 전환하려는 시도였다.

 

1994년 5월 1일.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성약시대가 열렸다. 구원의 단위가 개인에서 가정으로 바뀐 것이다. 참사랑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자녀를 참사랑으로 양육한다. 이 사랑이 이웃으로 확산되고, 지역사회로 퍼져나가며, 나라와 세계로 번져간다. 

 

2001년, 하나님 왕권 즉위식. 천일국을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천일국. 하늘부모님의 나라.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이 하나 된 평화의 세계. 축복가정들은 천일국의 시민이 되었다. 

 

2012년 9월 3일, 문선명 총재는 성화했다. 그러나 섭리는 멈추지 않았다. 한학자 총재는 “중단 없는 전진”을 선언하며 역사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양순석 역사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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