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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마음치유] 청소는 훌륭한 항우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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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2-17 23:33:50 수정 : 2025-12-17 23: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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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지만 정신 깨우고 각성 높이는 도구
집 깨끗해지고 성취감 얻게 되니 ‘일거양득’

지금 이 글도 집안 곳곳의 먼지를 무선청소기 안으로 몰아넣은 뒤, 내 서재 책상에 앉아 쓰고 있다. 물론 지금 내가 말하는 청소기는 로봇청소기가 아니다. 손으로 직접 들고 움직여야 하는 청소기다. 진료가 없는 날이나 주말 중 하루쯤은 나는 청소기를 돌린다.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먼지 모으는 일을 은근히 즐기는 편이다. 이 단순한 활동에서 얻은 깨달음을 진료실에서도 종종 활용한다.

무기력에 짓눌려 하루를 시작하기 어려워하는 환자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청소기를 잡고, 집안을 돌아다녀 보세요.” 이 이야기를 들은 한 중년 여성 환자는 눈을 흘기며 되물었다. “선생님은 청소하는 걸 좋아하시나 봐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는 않다. 내 책상은 늘 책으로 어지럽고, 연필과 볼펜은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책장 구석에는 먼지가 쌓여 있기도 하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그럼에도 나는 우울증 환자에게 아침 루틴으로 청소를 적극 권한다. 이 단순한 행위가 정신을 깨우고 각성도를 높이는 훌륭한 치료 도구이기 때문이다.

아침이 되면 우리 몸에서는 코티졸(cortisol)이라는 호르몬이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이를 코티졸 급상승(cortisol surge)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몸과 마음이 시동을 거는 생리적 과정이다. 하지만 무기력이 심한 우울증 환자에게서는 이런 상승 현상이 둔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떴다고 해도 활동을 바로 시작하기가 어렵다. 심신이 깨어나지 못한 채 하루의 시작이 미뤄진다. 겉으로 보기엔 늦잠처럼 보여도, 사실은 생체 리듬이 아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시작할 엄두조차 나지 않고, 이불 속에서 버티다가 베개 옆에 두었던 핸드폰으로 쇼츠 영상을 보기 시작하면 어느새 삽십 분, 아니 한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린다. 이렇게 하고 나면 기운은 더 안 생긴다. 일은 밀리고 시간은 없으니 초조해진다. 남들은 벌써 하루를 시작했는데 ‘나만 세상에서 낙오된 것 같다’는 자괴감이 밀려온다.

‘내일 아침엔 달라져야지’라고 다짐해도 비슷한 패턴이 다음 날도 반복된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무용할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자동적으로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습관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나서 우울증은 전반적으로 좋아졌는데도, 아침의 무기력은 사라지지 않는 사례가 흔하다. 의학적인 치료만으로 이런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이럴 때 청소기를 항우울제처럼 활용해 보라는 것이다.

활동 루틴을 개발하고, 일상에서 꾸준히 실천해야 우울증이 낫는다. 해가 뜨면 의식적으로 “움직여 보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몸을 써야 한다. 이런 움직임이 코티졸 분비를 자극한다. 침대 근처에 놔뒀다가 기상하자마자 청소기를 잡고 집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마음은 저절로 일과를 시작하기 위한 태세를 갖춘다. 몸에서 뇌로 ‘심신이 깨어났구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반쯤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헤드폰 끼고 음악을 들으며 청소하면 청각적 기쁨도 얻을 수 있다. 집이 깨끗해지고, 청소를 통해 자신과 가족을 도왔다는 성취감까지 얻게 되니 일거양득이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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