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일교 본부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보관 중이던 현금 약 280억 원의 존재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 이 숫자는 그 자체로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왜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느냐”, “종교단체가 저 정도 자금을 보유하는 게 정상인가”, “혹시 정치자금으로 쓰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빠르게 확산됐다. 이러한 반응이 과연 사실과 맥락을 충분히 고려한 판단일까.
냉정하게 말해 280억 원이라는 금액은 종교단체의 재정 규모로 보았을 때 단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수치는 아니다. 세계 가톨릭 교회의 중앙 통치 기구인 교황청의 연간 재정 규모는 1조 원을 훌쩍 넘는다. 단순 비교가 적절하지 않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최대 불교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역시 종교계에서는 드물게 중앙종무기관의 예산 규모를 비교적 꾸준히 공개해 왔는데, 연간 사용 예산이 1000억 원 안팎에 이른다. 이들 종단의 재정은 ‘활동 규모에 비례한 필요’로 이해되지만, 유독 통일교의 재정 자산은 ‘과도하다’거나 ‘의심스럽다’는 프레임속에 놓인다.
왜 이런 인식의 차이가 생길까. 통일교의 실제 활동규모와 사회적 역할이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일교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소수 종파’, ‘사이비 교단’, ‘국내 한정 종교’라는 이미지로 소비된다. 이런 인식 속에서 280억 원은 단순한 운영·사업 자금이 아니라 ‘분에 넘치는 돈’으로 인식된다. “한낱 사이비 교단이 왜 이렇게 많은 자금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은, 이미 결론을 내린 채 던지는 질문에 가깝다.
현실의 통일교는 그러한 틀 안에 갇힌 종교가 아니다. 통일교는 많은 국가에서 종교·시민사회 단체로 활동하며, 종교 간 대화와 화해, 국제 평화 포럼, 국가 정상급 인사들이 참여하는 국제회의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왔다. 개발도상국과 오지 국가를 대상으로 한 교육·보건·인프라 지원, 소외계층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장학 및 복지 사업, 국제 평화상을 통한 평화 공로자 지원,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 포럼 운영 등 그 활동 영역은 종교의 울타리를 훌쩍 넘어선다. 이런 활동은 단년도 결산으로 감당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운용되는 재정과 기금을 전제로 한다.
통일교가 “예수를 믿고 개인의 구원만 챙기라”는 신앙에 머물렀다면, 이와 같은 국제적·사회적 활동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이 개인의 신앙을 넘어 이웃과 사회, 그리고 세계를 향한 책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통일교는 그 공적 책임을 강하게 강조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종교가 사회 문제에 참여하면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참여하지 않으면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는 현실 속에서 통일교는 늘 ‘침묵’이라는 선택을 피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교의 재정은 ‘활동을 위한 자원’이 아니라 ‘의혹의 대상’으로 먼저 호명된다. 이는 재정의 사용 과정에 명백한 불법이 드러났을 때 비판받아야 할 문제와 단순히 보유 규모나 현금성 자산의 형태만으로 도덕적 판단을 받는 문제를 의도적으로 혼동하는 태도다. 중·장기 국제 사업과 다년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종교단체가 일정 규모의 현금성 자산과 종교 기금을 보유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통일교는 무엇이 문제인가. 특정한 위법 행위가 문제인가, 아니면 한국 사회가 아직도 자국에서 출발한 한 종교가 세계적 종교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식 자체가 문제인가. 통일교는 언제까지 사이비 교단으로, 소규모 종단으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종교의 공공성과 투명성은 중요하다. 그 기준은 공정해야 하며, 선입견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통일교의 재정이 문제라면, 그 문제는 ‘어떻게 조성되었고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로 따져야지, ‘왜 많은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가’로 재단되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그 재정이 교인들의 자발적인 헌금에 의해 조성된 것이라면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와 재산권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로서, 그 자체만으로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위법한 수입 구조나 불법적인 사용이 입증되지 않는 한, 종교단체가 어떤 규모의 기금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통일교를 둘러싼 논의가 감정과 이미지가 아니라, 사실과 활동의 규모, 그리고 그 비전 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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