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사실과 다른 의혹 제기로 사건 관계인들의 명예훼손 피해가 상당히 증폭됐다”
서울동부지검 검경 합동수사단(합수단)은 9일 백해룡 경정이 제기한 ‘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리며 이같이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백 경정을 합수단에 파견하고 “실체적 진실을 철저히 밝히라”고 직접 지시했지만, 백 경정의 주장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백 경정 측은 “결론 지어 놓고 한 수사였으니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 “그냥 연기해”… 허위 진술한 밀수범들
백 경정은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었던 2023년 마약 밀수 사건을 수사하면서 말레이시아인 운반책 3명에게서 “인천공항 세관 공무원들이 마약 밀수 과정에서 도움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세관 공무원 7명이 2023년 1월27일 말레이시아 국적 마약 밀수범들과 공모해 이들이 농림축산부 검역대를 거치지 않고 세관 4·5번 검색대를 통과하게 하는 방법으로 필로폰 약 24㎏을 밀수하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합수단이 2023년 9월22일 경찰 인천공항 실황조사 영상을 분석한 결과, 밀수범들이 경찰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레이시아어로 서로 허위 진술을 종용하는 장면이 확인됐다. 당시 경찰은 말레이시아 국적 밀수범 두 명(A, B)을 분리하지 않고 중국어 통역 1명만 대동했다. 밀수범 B는 중국어를 할 줄 몰랐고, 경찰은 밀수범 A에게 통역을 맡겼다.
밀수범 A는 B에게 말레이시아어로 “그냥 연기해. 솔직하게 말하지 말고 나 따라서 이쪽으로 나갔다고 해”라고 지시했다. 실황조사 영상에는 밀수범 A가 “지금 우리 진술이 엇갈린다고 생각하지 않냐. 내가 하는 말 이해 없었냐?”라고 묻자, 밀수범 B가 “알겠어”라고 답하는 장면도 담겼다. 밀수범 A는 이어 “너 여기(4번 검색대) 아니면 여기(5번 검색대)에 서있던거야. 알았지?”라며 구체적인 진술 내용까지 지시했다.
밀수범 A가 처음에는 농림축산부 검역대를 통과했다고 진술하자 경찰이 “여긴 의미가 없다”며 제지했고, 밀수범 A는 진술을 바꿔 세관 4·5번 검색대를 지목했다. 2023년 1월27일은 농림축산부 일제검역이 있어 모든 탑승객이 동식물 검역대를 통과해야 했으므로 밀수범의 첫 진술이 오히려 사실에 가까웠던 셈이다.
합수단 조사 과정에서 밀수범 A는 “당시 어디로 나갔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며 “경찰관이 그쪽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해서 조사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지나가다가 열려 있는 것으로 보이는 4~5번을 지목했다”고 실토했다.
밀수범 A는 지난해 3월 수감 중 밀수범 B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경찰 조사에서 세관 관련해서 이미 기억이 안 난다고 말을 했는데, 경찰관이 이미 진술한 내용이 있어서 진술을 바꿀 수 없다고 해서 세관 직원이 연루돼 있다고 진술했다”고 적었다. 합수단 조사 과정에서도 밀수범 전원이 “세관 직원의 도움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 “용산에서 외압”…실상은 보고도 안 된 상태였다
세관 공무원으로 수사를 확대하던 백 경정은 윤석열정부의 대통령실·검찰·경찰의 외압을 받았고 서울 강서경찰서 지구대장으로 좌천당했다고 주장해왔다. 김찬수 당시 영등포서장이 브리핑 연기를 지시하면서 “용산에서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내란 자금을 마련하려고 ‘마약 수입 사업’을 했다는 주장도 했다.
합수단 조사 결과는 달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서 대통령실 국정상황실로 영등포서 마약사건을 최초 보고한 시점은 2023년 10월10일 오전 8시36분경으로, 영등포서 브리핑 당일이었다. 백 경정이 브리핑 연기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시점은 이보다 앞선 9월 말이었다. 대통령실이 사건을 알기도 전에 ‘용산의 지시’로 외압이 있었다는 주장은 성립하기 어려운 셈이다.
백 경정은 김 서장이 2023년 10월6일 서울청의 사건이첩 지시를 받고도 이를 막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합수단이 확보한 김 서장과 백 경정 간 2023년 10월16일 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보면, 김 서장이 이날 백 경정으로부터 사건이첩 검토에 관한 내용을 처음 보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화 내역에서 백 경정은 ‘형사2과 마약사건(세관 관련) 자체 회의 심의 의결서’를 김 서장에게 보내며 “수사진행의사관련 전담팀 직원들 의견 서명해서 보내라고 해서 11일 10시 전원 서명해서 보낸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 서장이 “네, 알겠습니다. 힘들고 지치셨겠지만, 다시금 시작하시죠”라고 답했고, 백 경정이 “네 감사합니다 서장님”이라고 했다.
◆ 백 경정 “검찰 셀프수사” vs 검찰 “셀프수사 배제했다”
백 경정은 이날 합수단의 무혐의 처분에 직접적인 반박 입장을 내지 않고 인천지검·서울중앙지검·대검찰청 등 검찰청 3곳과 인천공항세관·김해세관·서울본부세관 등 관세청 3곳을 대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백 경정은 “세관이 말레이시아 마약조직 필로폰 밀수에 가담한 정황 증거가 차고 넘치며, 검찰은 세관 가담사실을 인지하고 사건을 덮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백 경정의 법률대리인 이창민 변호사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결론 지어 놓고 한 수사였다”며 “이 사안은 결국 검찰 부실수사나 수사 무마 의혹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 처음부터 검찰 셀프수사하지 말고 특검 해달라고 주장해왔다”고 말했다.
서울동부지검은 이날 추가 보도자료를 내고 “세관 직원들의 마약밀수 연루 의혹은 백 경정이 고발한 수사외압 사건의 외압 대상이 되는 관련 사건이라서 백 경정의 셀프수사가 부적절하다고 보아 기존 합수팀에서 수사를 계속해왔다”며 “서울동부지검장은 이를 백 경정에게도 명확하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백 경정을 수사에서 배제했고, 수사결과도 백 경정팀의 관여 없이 발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합수단은 “대통령실 및 김건희 일가의 마약밀수 의혹과 검찰 수사 무마·은폐 의혹에 대해서는 백 경정팀을 통해 수사를 계속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여지를 남기는 것일 뿐”이라며 “앞으로는 수사가 미진했지만 고의로 무마한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나올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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