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존중돼야” 의미 퇴색하고
극단적 편가르기 정치 득세에
사회 갈등·미래 세대 불안 커져
광복 80주년인 2025년이 저물고 있다. 본지를 비롯해 광복 80주년 의미를 짚는 기획시리즈물이 적잖았다. 국가 운명을 결정진 역사적 사건을 되새기는 일은 앞선 세대의 헌신과 수고로움을 기억하고 함께 역사를 만들어갈 현재와 미래 세대 연대감을 높이려는 데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80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음수사원(飮水思源·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기원을 생각한다) 뜻대로 지난 역사를 잊지 않는 건 대한민국이라는 강물을 유구하게 흐르도록 하는 동력이 된다.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는 제목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쓴 김인섭 태평양 명예대표변호사. 역사학자도 아닌 법조인이 오랜 기간 석학들을 모시고 공부한 끝에 책을 내놓은 이유는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대한민국 영욕을 겪은 세대로서 한쪽은 ‘기적의 역사’라 자랑하고, 다른 한쪽은 ‘부끄러운 역사’로 비하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나라는 세워졌는데 국가공동체에 대한 국민의 자부심, 일체감이 떨어지는 건 역사공부, 역사관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비교적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역대 정권 공과를 다루려 애쓴 그는 지금 대한민국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했다. 광복절 즈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건강 문제로 성사되지는 못했다.
6·25전쟁 기간 발생한 사실만을 기록한 ‘6·25전쟁 1129일’의 저자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개인 돈으로 1000만부 넘게 찍어 전국 군부대·도서관·학교는 물론 해외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책을 보냈다. 유엔군 참전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다면서 유엔 창설을 기념하는 ‘유엔데이’(10월24일)를 국가 공휴일로 재지정해달라고 줄곧 요청했다. 그는 11월11일 부산에서 열린 ‘제19회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 기념식에 국민대표 4인 중 한 명으로 참석해 같은 제안을 했다.
광복 80년 역사 한복판을 거친 두 사람의 메시지는 다르지 않다. 역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지난 4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포럼에서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 존재 자체가 기적 아니냐”면서 “미래를 위해 역사는 중요하다”고 했다. 김한길 전 국민통합위원장이 들려준 에피소드다. 대한노인회 초청 특강에서 대한민국이 일군 여러 성과를 얘기하다가 “여기 계신 어르신들 덕분이다. 나라를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눈물바다가 됐다고 한다. 자신도 눈물이 흘러 특강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존중한다는 건 그들의 기여를 알아주고 인정하는 일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나듯 이념·세대 간 갈등은 국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한국병’이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국론 분열 수준은 깊어졌다. 진보·보수 정권을 막론하고 민주적 절차를 통해 탄생한 역대 정권의 성과를 축적해 가기는커녕 끊어내고 단죄하는 단절의 정치가 되풀이된 탓이다. 지금도 ‘제2의 적폐청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12·3 계엄 진상은 반드시 밝혀지고 관련자 모두의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그 정권 전부를 콘크리트 쏟아붓듯 묻어버릴 수는 없다. 문재인정부 적폐청산이 ‘반(反)정치주의자’ 윤석열을 키운 것처럼 이재명정부 적폐청산 시즌2 또한 반작용을 가져올 공산이 크다.
대표적인 한국 민주주의 연구자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계간지 ‘철학과현실’(2025년 가을)에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양극화되고, 상대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극단화된 시민사회가 있을 뿐”이라고 썼다. 그 중심에는 대한민국 정치를 움직이고 주류 세력이 된 운동권 ‘86세대’가 있다. 최 교수는 “그들(386 진보파) 스스로가 친일파와 분단의 책임을 징벌하는 심판관임을 자임했다”고 했는데 ‘내란 전선’으로 단죄 대상은 더 넓어졌다. 정치적 난장(亂場) 속에 ‘각자도생’이 생존 원칙이 된 지 오래다. 진짜 우려스러운 것은 2030세대가 대한민국 미래를 가장 비관적으로 보는 집단이며, 정치·경제적 소외감을 시한폭탄처럼 조용히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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