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4년 노샘프턴, 어린 소녀의 기도
1734년 매사추세츠주 노샘프턴은 깊은 영적 침체에 빠져 있었다. 청교도 후손들이 세속주의와 이신론에 물들어 신앙의 열정을 잃어가고 있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가 회개를 촉구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굳어 있었다.
그런데 한 어린 소녀가 매일 골방에서 “주님, 저를 구원해 주세요”라고 눈물로 기도했다. 한참 울던 아이가 “엄마, 천국이 제게 다가오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한 소녀의 회심이 가족과 이웃으로 확산되어 마을 전체가 영적 각성의 열기로 뜨거워졌고, 곧 미국 대륙 전체를 뒤바꿀 거대한 영적 대각성의 첫 불꽃이 되었다.
◆제1차 대각성: 청교도 정신의 부활과 민족 의식의 형성
하늘부모님은 제1차, 제2차 종교개혁에 이어 제3차 종교개혁으로 영적 대각성운동을 일으키셨다. 루터와 칼뱅이 진리를 회복하고, 경건주의자들이 영성을 되살렸다면, 이제는 성령의 실천적 역사를 통해 독생녀를 맞을 수 있는 순수한 신부된 교회를 세우시려는 섭리였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교회는 오직 “참으로 선택된 자들만이 모이는 공동체”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신자들에게 직접적인 성령체험과 진솔한 신앙고백을 요구했다. 내적이며 깊은 영적 체험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강조했다. 그의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죄인」이라는 제목의 설교가 청중들에게 강렬한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조지 휫필드의 순회 설교를 통해 교파를 초월한 연대가 형성되었고, 집회 중에 강렬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
이 영적 체험이 서로 다른 배경의 식민지인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중부의 독일계 이민자들, 남부의 스코틀랜드계 장로교도들이 모두 같은 성령을 경험하며 선민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는 후일 미국 독립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이 운동으로 장로교는 성령 체험을 중시하는 신파(New Side)와 정통 교리를 고수하는 구파(Old Side)로, 회중교회는 부흥 찬성파인 뉴라이트(New Light)와 반대파인 올드라이트(Old Light)로, 침례교회는 분리침례교와 정규침례교로 분화했다. 분립은 혼란이 아니라 더 순수한 교회를 향한 하늘부모님의 섭리였다.
◆두 혁명의 갈림길: 종교의 자유 vs 종교로부터의 자유
제1차 대각성운동이 확산되면서 식민지 교회들은 영국 성공회의 간섭에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가 주교 파견과 교회 통제를 시도하자 식민지인들은 신교의 자유를 외치며 저항했다. 이것이 후일 정치적 독립 의지로 발전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같은 시기에 미국 독립혁명(1776년)과 프랑스 시민혁명(1789년)이 일어났지만, 두 혁명의 종교적 성격은 정반대였다. 미국 독립혁명은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이었다. 식민지인들은 영국 성공회의 간섭 없이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할 권리를 요구했다. 이들에게 자유란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따라 신앙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했다.
반면 프랑스 시민혁명은 ‘종교로부터의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이었다.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부르주아지들은 가톨릭교회의 막대한 특권과 십일조 징수에 강하게 반발했다. 혁명 정부는 루이 16세를 처형했고, 수많은 성직자들을 학살했으며, 교회와 수도원을 파괴하거나 세속 건물로 전용했다. 이들에게 자유란 종교적 권위와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이성에 따라 살아갈 자유를 의미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로 “연방의회는 국교를 수립하거나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고 명시하여 더 순수한 신앙을 추구할 자유를 보장했다. 반면 프랑스는 종교 자체를 억압하며 무신론 국가를 지향했다.
◆제2차 대각성: 완전 성화와 사회 개혁의 물결
독립전쟁 후 미국은 서부 개척 시대를 맞았다. 하지만 급격한 사회 변화와 이민자 증가로 혼란이 가중되고, 교회에는 자유주의 신학이 침투하여 불신앙이 만연했다. 이때 제2차 대각성운동이 일어났다.
1821년 변호사 찰스 피니는 법정에서 성서를 인용하다가 “돈을 위해 불의한 자를 변호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날 저녁 기도하던 중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체험했다. 그는 “거대한 전기의 파도가 나를 관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을 완전히 녹여버렸다”며 눈물로 고백하고 복음 전도자의 길로 나섰다. 피니는 ‘성령이 도우시면 온전하고 완전한 성화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교했다.
피비 팔머는 성결을 제단 위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전에는 내면의 성결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고 묵상하는 것을 중시했다면, 이제는 성령의 능력으로 병을 고치고, 방언을 말하며, 적극적으로 전도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것을 성화의 증거로 여기게 되었다.
◆노예제 폐지 운동과 남북전쟁의 종교적 배경
제2차 대각성운동으로 사회 개혁이 확산되었다. 피니를 중심한 부흥사들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며 노예제를 죄악으로 규정하고 적극 폐지 운동에 나섰다. 오벌린 대학은 피니의 영향으로 미국 최초로 흑인과 여성에게 입학을 허용한 대학이 되었다. 이 대학 출신들은 ‘지하철도’라 불리는 비밀조직을 운영하며 노예들의 탈출을 도왔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도 이러한 종교적 각성의 산물이었다. 이 소설은 북부 주민들의 반노예제 감정을 크게 자극했다.
남부에서는 노예 소유주들이 성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노예제를 정당화했지만, 북부 교회들은 대각성운동의 영향으로 노예제를 강력히 반대했다. 감리교회, 침례교회, 장로교회 등이 노예제 문제로 남북으로 분열했다. 이러한 종교적 갈등이 정치적 대립과 결합되어 결국 남북전쟁(1861~1865년)으로 이어졌다.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선언(1863년)도 이러한 종교적 각성의 정치적 표현이었다.
동방으로 향하는 성령의 바람
2차례에 걸친 대각성운동은 미국에서 청교도 정신을 되살리고 완전 성화를 추구하는 영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는 하늘부모님이 독생녀 출현을 준비하시는 섭리적 과정이었다.
이제 성령의 바람은 더욱 강력한 3차 대각성운동으로 발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디와 토레이의 재림 신앙, 성결운동의 사중복음, 오순절운동의 은사가 하나로 합쳐져 거대한 영적 물결을 형성하여 마침내 태평양을 넘어 한반도를 향해 밀려왔다.
양순석 역사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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